작지만 강한 장비업체, 반도체 품질 좌우하는 '포토마스크 애셔' 등 제조

㈜엘티케이, '반도체 한국'의 든든한 초석
작지만 강한 장비업체, 반도체 품질 좌우하는 '포토마스크 애셔' 등 제조

반도체 산업은 한국 경제를 이끌어 가는 주역 중 하나다. 품목별 수출 규모에서 1990년대 초 이후 줄곧 선두권을 유지할 만큼 반도체는 국내 경제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삼성전자 등이 주도하는 ‘반도체 한국’의 위상 역시 세계인들이 인정하는 바다.

그런데 반도체 산업이 수출 못지않게 일본 등지로부터의 수입 물량도 많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특히 반도체 제조 공정에 사용되는 각종 장비들은 아직 상당 부분 수입품에 의존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산업 전체로 보면 반도체를 팔아 벌어들인 금쪽 같은 외화로 다시 반도체 장비를 사들이는 저수익 구조인 것이다.

이런 구조를 타개하기 위해 반도체 장비 분야에 뛰어든 기업과 기업가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반도체 장비의 국산화를 위해 밤낮없이 노력하는 중인데, 특정 분야에서는 이미 탁월한 경쟁력을 갖춘 기업도 나오고 있다. 반도체 전(前)공정 장비 업체인 ㈜엘티케이(대표이사 정태용)도 그런 점에서 주목할 만한 회사다.

엘티케이가 제조하는 주력 제품은 ‘애셔’(Asher)라는 장비다. 애셔는 반도체 칩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전공정 장비로서, 반도체 웨이퍼 표면의 감광제와 부산물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다른 반도체 장비들의 국산화율이 30% 이하에 머물고 있는 데 비해, 애셔 분야는 이미 70~80%의 국산화를 이룬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엘티케이의 애셔는 몇 가지 부분에서 상당히 앞선 기술을 가졌다는 평가다. 세계 반도체 시장의 리더인 삼성전자도 엘티케이의 기술력을 인정해 제품을 공급 받았을 정도다. 엘티케이가 삼성전자에 납품한 장비는 포토마스크(Photo-mask) 애셔로, 국내 기업으로서는 최초다.

포토마스크는 반도체 칩을 만들기 위한 일종의 사진 원판인데, 투명 기판 위에 반도체 집적 회로를 형상화한 것이다.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포토마스크는 사진을 찍는 원리와 유사하게 반도체 웨이퍼 위에 미세한 패턴을 형성시키는 역할을 한다. 매우 복잡한 반도체 집적 회로를 똑같이 대량으로 찍어내게끔 하는 기본 틀이 되는 것이다.

엘티케이의 포토마스크 애셔는 바로 이 포토마스크 제조 공정에 쓰인 감광제 및 그 부산물을 제거하는 장비다. 통상 포토마스크의 정확도와 패턴 형성 능력에 따라 반도체의 집적도와 품질이 좌우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포토마스크 애셔가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작지 않다는 지적이다.

정태용 엘티케이 사장은 “포토마스크 애셔는 반도체 완성품의 품질을 높이는 데 꽤 기여를 할 것으로 본다”며 “자체적으로는 국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300㎜용 애셔 시장에 도전장
엘티케이의 포토마스크 애셔는 관련 업계에서도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국내의 유수 반도체 회사들을 방문해 제품 설명회를 가졌는가 하면, 해외 업체들로부터도 “삼성전자가 사용하는 장비라면 경쟁력이 있는 것 아닌가”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는 것이다.

2001년에 설립된 엘티케이는 사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신참 회사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기간에 경쟁력을 갖춘 제품을 생산해낸 비결은 뭘까. 우선 회사 설립 초창기에 미국의 유력한 반도체 장비 업체인 LTI사와 손을 잡고 공동으로 기술 개발에 나섰던 것이 주효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세계 유수의 전공정 장비 업체인 베리안, 어플라이드 등에서 기술을 익힌 엔지니어들이 합류해 연구 개발에 매달려 온 것도 큰 원동력이 됐다.

엘티케이는 포토마스크 애셔로 시장의 호평을 받아냈지만 향후 목표는 더욱 야심차다. 반도체 생산 라인이 200mm 웨이퍼에서 300mm 웨이퍼로 옮겨가는 세계적 추세에 맞춰 300mm용 애셔를 미래의 주력 제품으로 내세우겠다는 것이다. 이미 1년 6개월여의 연구 개발 기간을 거쳐 제품은 완성된 단계다.

‘Archn300@’로 명명된 300mm용 애셔에 대해 엘티케이 측은 “애싱 과정에서 반도체 웨이퍼에 영향이 안 가도록 세심한 배려를 했고, 시간당 웨이퍼 처리량도 기존 장비들보다 많은 135장에 달해 공정 효율을 한층 높였다”며 상당한 자부심을 나타냈다. ‘Archn300@’은 300mm 애셔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통치자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Archn(아르칸 혹은 아르콘)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정 사장의 설명이다.

엘티케이는 올해 매출 목표를 80억원으로 잡을 만큼 아직은 작은 기업이다. 하지만 300mm 애셔 시장에 던진 도전장이 먹힌다면 조만간 반도체 업계를 놀라게 할 수도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 삼성전자가 이 회사의 ‘Archn300@’ 장비를 시험 평가하고 있는 것은 그런 기대를 걸 만한 청신호다.

정태용 사장 인터뷰
"품질과 신뢰로 승부"
정태용 엘티케이 사장은 삼성전자에서 18년 동안 근무한 삼성맨 출신이다. 생산ㆍ개발ㆍ영업 등 분야에서 두루 업무를 익힌 뒤 러시아 모스크바 서비스 법인장까지 지냈다.

그의 이런 경력 때문에 엘티케이가 삼성전자의 협력업체가 된 것은 인맥 덕분이 아니냐는 시선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정 사장은 “삼성의 깐깐한 거래 방식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품질과 신뢰성을 최우선시 했다”며 고개를 저었다. 삼성전자는 사업 파트너가 될 만하다는 판단이 서지 않으면 거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엘티케이는 삼성물산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삼성물산이 해외 마케팅 분야에도 조언을 해주고 있는 것.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정 사장은 직접 연구 개발 방향의 큰 그림을 그리며 엔지니어들을 독려한다고 한다. 물론 업체들을 찾아 다니며 영업을 하는 것도 온전히 그의 몫이다. 정 사장은 “직원들에게도 다양한 임무를 부여하면서 멀티 플레이어가 되라고 당부한다”며 “소기업에서 누릴 수 있는 장점은 바로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갖고 스스로 성취해 나가는 데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5-03-17 15:12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