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활성화' 강한 의지벤처 회생·중소기업 육성 등 정책 일관성 강조, 합리적 성품의 통상 전문가

한국경제 '한덕수 호' 출범
'자본시장 활성화' 강한 의지
벤처 회생·중소기업 육성 등 정책 일관성 강조, 합리적 성품의 통상 전문가


‘일주일 여 난산 끝에 옥동자(?)를 얻었다.’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불명예 퇴진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의 후임 인선이 여론 검증이라는 난항 끝에 3월 14일 한덕수 신임 부총리로 낙착됐다. 다양한 인물들이 물망에 올랐지만 청와대가 선택한 카드는 가장 막판에 급부상한 한덕수 전 국무조정실장이었다. 한 신임 부총리 인선에 대한 정치권과 시장의 반응은 일단 “대체로 무난하다”는 평이다.

경제 수장의 자리가 일주일 동안이나 비워져 있었던 것은 후임 인선 기준으로 능력과 자질 못지않게 도덕성이 중시되면서 이를 충족할 만한 인물을 찾기가 그만큼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이 주시한 것은 따로 있었다. 과연 경제 정책의 안정 기조가 후임 부총리에 의해서 유지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바로 그것이었다.

시장에 ‘안심하라’ 시그널
그런 점에서 한 부총리의 취임 첫 행보는 시장의 불안감을 씻어내는 데 주안점을 뒀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한 부총리는 15일 취임식 후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참여정부는 지난 2년간 국가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법과 제도를 많이 만들었다”며 “새 경제 수장으로서 이를 고치는 것보다는 일관성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 같은 한 부총리의 발언은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 모처럼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경제 기조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신임 부총리로서 괜한 의욕을 부리다 정책의 일관성을 해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한 부총리는 심지어 “색깔 없는 부총리가 되겠다”고 말하며 더욱 몸을 낮추는 자세를 보이기도 했다.

그는 한 발 더 나아가 17일 증권선물거래소를 찾은 자리에서는 시장을 향해 확실한 ‘미소 작전’을 펼쳤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데는 자본 시장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며, 이를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취임 후 첫 방문 기관으로 증권선물거래소를 택했다”고 말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부총리가 현장 방문의 첫 번째 장소로 거래소를 선택한 것은 최근 하락 장세를 연출하고 있는 증시를 다독이기 위한 계산이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한 부총리는 아울러 “벤처 등 기술집약적 중소기업 육성 대책을 이전과 마찬가지로 일관되게 추진할 것”이라고 말해, 지난해 이헌재 전 부총리가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한 벤처 회생 정책을 확인하기도 했다.

꼼꼼한 일 솜씨, 부처 조율은 과제로
한 부총리는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이력에서도 알 수 있듯, 대표적인 통상 전문가이자 개방주의자로 통한다. 경제기획원에서 관료 생활을 시작했지만 잔뼈가 굵은 곳은 부처 교류를 통해 옮겨간 상공부(통상산업부, 산업자원부 등의 전신)에서였다. 그가 통상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것은 모두가 인정하지만, 바로 이 때문에 거시 경제를 다루는 재경부 사령탑으로는 좀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한 부총리는 이에 대해 “거시 경제 분야를 꾸준히 연구해 온 데다 국무조정실장을 하면서도 재경부 업무를 챙겨 봤기 때문에 별 문제 없다”고 반박한다. 실제로 그를 겪어본 주변 인사들의 평가는 상당히 우호적이다. 평소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데다 꼼꼼한 일 처리로 정평이 난 한 부총리 정도라면 경제 수장으로서 손색이 없다는 것이다. 이해찬 총리가 그를 경제부총리로 제청한 것도 함께 일을 하면서 합리적이고 무난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솜씨를 겪어봤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한덕수 경제부총리(왼쪽)가 취임 후 첫 현장 방문 장소로 증권거래선물거래소를 택해 눈길을 끌었다.

한 부총리는 벌써부터 부처 장악에 나섰다. 그가 재경부의 업무 혁신과 직제 개편을 언급하자 ‘모피아’(정통 재무부 관료를 지칭하는 말)들도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그의 합리적이고 온화한 성품막?미뤄 칼바람이 불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와, 미국ㆍ중국 등과의 통상 협상 때 보여준 강단을 봤을 때 안심할 수 없다는 불안이 교차하고 있다.

다른 부처들도 한 부총리와의 손발 맞추기에 한동안 ‘동원’될 것 같다. 한 부총리가 매주 한 차례씩 타 부처와의 정책 토론회를 가지겠다는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물론 부처 간에 원활한 정책 조율을 하기 위해 자유 토론 형식으로 상호 이해를 증진하자는 취지다.

첫 번째 토론회는 18일 농림부와 가졌다. 농림부는 지난 2000년 한 부총리가 신념을 갖고 밀어붙인 한ㆍ중 마늘 협상으로 다소 상처를 입었던 농민들의 주무 부처여서 눈길을 끈다. 재경부 측은 경제 관련 부처 외에도 필요하다면 사회ㆍ문화 부처 등과 토론회를 가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경제 정책을 조율하는 수장으로서 한 부총리의 의욕이 읽혀지는 대목이다.

한편 올해는 자유무역협정(FTA)의 해로 불러도 좋을 만큼 많은 국가들과 동시다발적인 FTA 협상이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노무현 대통령의 의지도 확고하다. 개방 전도사에서 경제 수장으로 자리를 옮긴 한 부총리에 더욱 힘이 실릴 수 있는 대목이다. ‘한덕수 호’의 향후 항로에 귀추가 주목된다.

막강 인맥, 경기고 63회가 떴다

‘KS’(경기고-서울대 출신)는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엘리트 그룹이다. 3대 명문 고교 중 하나인 경기고와 서울대를 거친 이들 인맥은 우리 사회 요직의 상당수를 꿰차고 있다. 상고 출신 대통령이 집권한 참여정부에서도 이 같은 ‘진리’는 변함이 없다.

최근 한덕수 경제부총리가 취임하면서 KS 중에서도 경기고 63회 인맥이 단연 주목을 받고 있다. 한 부총리와 청와대의 정문수 경제보좌관, 정우성 외교보좌관 등을 아울러 경기고 63회 실세 3인방이라는 말도 나돈다. 한 부총리는 나라 살림을 총괄하는 경제 사령탑인 데다 정문수ㆍ정우성 보좌관은 노 대통령의 측근 브레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경기고 63회 출신 KS맨은 정치권에서도 눈에 띈다. 유인태 열린우리당 의원과 이철 전 의원이 대표적이다. 두 사람은 모두 노 대통령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정치적 동지로 분류된다. 이 전 의원은 지난 총선에서 부산에 출마해 낙선했지만 언젠가 ‘역할’이 주어질 것으로 점쳐진다. 재계 등 다른 분야에서는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조동성 서울대 교수(한국경영학회장), 이상철 전 정통부 장관 등이 ‘명사’로 꼽힌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5-03-23 16:29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