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자릿수대로 수출기업에 큰 부담, 고유가 악재 상쇄 등으로 '약' 될수도

환율하락이 경기회복 발목잡나
세 자릿수대로 수출기업에 큰 부담, 고유가 악재 상쇄 등으로 '약' 될수도

넘치는 달러, 추락하는 환율. 우리나라의 외한보유액이 1,500억 달러를 돌파한 가운데 외환은행 직원이 달러더미를 정리하고 있다.

지난 1998년 IMF 외환 위기 이후 처음으로 환율 세 자릿수 시대가 눈 앞에 다가 오고 있다. 이 달 들어 원 - 달러 환율이 장중 1,000원선을 여러 차례 깨고 있어 세 자릿수대 정착은 시간 문제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환율은 지난 달 23일 7년 여 만에 처음으로 장중 1,000원선을 깨고 내려와 세 자릿수 시대를 예고했던 바 있다.

그러나 환율이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어 모처럼 만에 살아나는 경기 회복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가 있다. 증권 시장도 환율 등의 악재가 부각되면서 사흘 만에 1,000선 고지를 내주는 등 이 같은 우려는 현실화되고 있다.

원화 절상률 세계에서 ‘으뜸’
원 - 달러 환율이 최근 급격히 하락하고 있는 데는 경상 수지 적자폭 확대에 따른 미국의 달러화 약세 정책과 수출 경기의 호황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특히 무역 수지가 지난 1998년 390억 달러 흑자를 기록한 이후 7년째 흑자 행진을 계속해 옴에 따라 수급적으로 환율 하락을 불렀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무역 수지 흑자폭과 외환 보유액 현황(세계 4위) 등을 볼 때 환율 하락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평가가 많다.

원 - 달러 환율이 하락한다는 것은 곧 원화 가치의 상승을 의미한다. 한국 돈의 가치가 올라간다는 것은 한국 경제가 그만큼 좋아지고 있다는 징표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환율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하락 속도가 매우 가파르다는 데 있다. 원화 가치는 아시아는 물론, 세계 주요국 가운데 가장 빠르게 절상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들어 15일 현재까지 원화는 지난해 말 대비 3.4% 절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대만 달러(2.9%), 태국 바트화(1.6%), 싱가포르 달러화(0.7%)의 절상률 보다 높다. 유로화와 엔화는 오히려 2.2%, 2.0% 절하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1년 말을 기준으로 해도 마찬가지다. 원화 가치는 미 달러화에 비해 31.3% 절상된 것으로 나타나 아시아 주요국 통화수준을 크게 앞질렀다.

환율이 ‘고유가’ 악재에 약(?)
이 같이 가파른 원화 절상으로 인해 기업들의 채산성에 비상이 걸렸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지난 2001년 말 1,313.50원 정도였던 원 - 달러 환율이 3년 여 만에 313원가량이 떨어지면서 1,000원선을 넘나들고 있다. 대다수 외환 전문가들은 올해 환율이 900원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 수출 기업들의 순이익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환차손이 2조원에 달할 것으로 업계에 알려져 있다. 특히 환율 방어 대책을 마련해 놓은 대기업에 비해 중소 기업은 그 위험성에 무방비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실제로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2월 25일부터 3월 3일까지 수출 중소기업 13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6%가 최근 환율로 인해 채산성이 나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채산성이 매우 악화됐다는 견해도 43%나 나왔다.

그러나 이 같은 악영향에도 불구하고, 환율 하락을 오히려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특히 기업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또 다른 암초인 고유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이 환율로 인해 상당 부분 상쇄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한 하다.

박병원 재정경제부 차관보는 2월 11일 정례 기자브리핑에서 “환율 하락이 수출에 부담이 된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물가 안정과 내수 회복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말했다. 우리 나라는 원자재 부품 소재에 대한 대외 의존도가 높아 환율 하락이 이를 상당 부분 상쇄시키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박 차관보는 특히 “국제 유가가 가파르게 올라도 국내 가격에 큰 변동이 없는 것은 상당 부분 환율 하락으로 상쇄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환율 하락압력 계속될 듯..문제는 속도
물론 한국 경제의 수출 규모가 원자재 매출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이 같은 상쇄 효과가 다소 반감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고 경제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그러나 이 같은 점에도 불구하고, 경제 전문가들은 환율 절상이 예견됐던 것이고 기업들이 대부분 방어 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어 충격이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IMF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강화됐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란 의견이 많다. 박정우 대신경제연구소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수출 경쟁력은 이제 더 이상 가격 요인으로만 지탱되지 않는다”며 “지난 외환 위기 이후 실질 환율의 절하로 인해 제조업의 노동 생산성은 비제조업에 비해 크게 향상되었으며, 이것은 결국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환율이 얼마나 한국 경제에 ‘독’이 될 지 ‘약’이 될 지는 속도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일단 환율의 대세는 ‘하락’쪽이 우세할 것으로 경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외환 시장에 개입하고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하락 요인이 여전히 우세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주요 전문가들은 원 - 달러 전망치를 계속 하향 조정하고 있다. 3월 16일 UBS증권의 경우, 올해 원 - 달러 환율 전망치를 925원으로, 내년은 875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국내 증권사 및 경제 조사 기관 역시 대체로 900원대 중반 내외를 올 연말 전망치로 제시하고 있다.

현재 외환 당국의 시장 개입으로 환율 네 자릿수를 간신히 지켜내고 있지만, 조만간 세 자릿수 시대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에 따라 기업이 살아 남기 위해서는 철저히 환율 하락에 대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주문하고 있다.

정영화 객원 기자


입력시간 : 2005-03-23 17:13


정영화 객원 기자 hollyjeo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