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조원에 이를 사상 최대 배당금, 성장 발목잡을 악재 가능성도

증시, 돈 잔치의 빛과 그림자
10조원에 이를 사상 최대 배당금, 성장 발목잡을 악재 가능성도

사상 최대 규모의 배당금 잔치가 시작됐다. 지난해 주식을 투자했던 사람들은 주가 상승에 따른 차익에다 배당까지 받아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은’ 셈이 됐다.

3월 24일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21일 태평양을 시작으로 4월말까지 유가 증권 시장에 상장된 12월 결산 법인들이 2004 회계 연도 배당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현금 배당금 총액은 10조1,409억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10조원을 넘어 섰다. 이는 전년도 7조2,266억원에 비해 40% 증가한 것이다.

국내 대표 기업들 대부분이 이번 배당금 잔치에 동참했다. 삼성전자는 1조5,638억원으로 가장 많은 배당금을 지급하고, SK텔레콤이 7,582억원, 한국전력이 7,241억원, POSCO와 KT도 각각 6,443억원과 6,322억원의 배당금 보따리를 풀게 된다. 지난 2003 회계 연도에 배당 총액이 5,000억원을 넘어 선 기업이 삼성전자와 한국전력 2개사에 그쳤던 것에 비교할 때 올해 배당 잔치는 상당히 성대하다고 할 수 있다.

배당이 증시를 되살린다?
수조원대의 배당금이 종잣돈이 돼 다시 증시의 투자 자금으로 이어질 경우, 수급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배당금으로 유입된 10조원 가운데 절반 가까이만 증시에 유입되더라도 수급 개선에 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국내 투자자와 기관의 경우, 국내 증시에 대해 최근 매수 기조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재투자 가능성을 높게 보는 시각도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외국인의 매도세로 지친 증시에 생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문제는 외국인 투자자들이다. 배당금의 절반 가까이를 가져가게 되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최근 한국 증시에 대해 매도 기조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의 배당총액은 4조8,322억원으로 전년의 2조7,044억원에서 78% 가량 증가했다. 전체 배당 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48%로 전년(38%)에 비해 10% 포인트 가량 높아졌다.

외국인이 한국 뿐만 아니라 이머징 마켓 전체에 대해 차익 실현을 하는 분위기여서 배당금을 밑천으로 단기간 내 재투자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정훈석 동원증권 애널리스트는 “개인 투자자나 국내 기관의 경우, 배당금을 주식으로 재투자할 가능성이 높아 증시 수급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우리 증시에서 지분율 4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최근 국내 증시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어, 전체적인 수급 개선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배당, 달콤하지만 오히려 독?
올해 사상 최대 배당금이 지급되는 등 배당금이 해마다 늘어나 재테크의 수단으로써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12월 결산 법인들의 배당액은 지난 2001년 3조8,477억원에서 지난 2002년 5조8,846억원, 지난 2003년 7조2,266억원, 올해 10조1,409억원 등으로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배당을 많이 주는 기업들은 주가도 강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나 고배당주들의 관심은 갈수록 높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대우증권에 따르면 고배당주 상위 20종목들의 지?2000년 이후 수익률이 시장(종합 주가 지수) 수익률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해 하반기 이후에도 고배당주들이 주가 상승을 주도해 온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결과는 고배당주가 대부분 기업 가치가 높고 성장률도 높아 외국인 투자가나 국내 기관 투자가 등 장기 투자가들에게 높은 관심을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대우증권은 분석했다.홍성국 대우증권 투자분석부장은 “시중 예금 금리보다 배당 수익률이 높은 종목들이 많고 시간이 지날수록 기업들의 배당률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며 “배당 투자는 지금과 같은 저금리 구조 하에서 재테크 대안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배당이 늘어 나고 있는 만큼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주주 입장에서는 당장 손 안으로 현금이 들어오는 것이지만, 기업의 입장에서는 성장에 필요한 재투자 자금이 줄어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주 중시 차원에서 기업 형편에 맞게 배당금을 지급하는 경우도 있지만, 외국인 주주 등 일부 주주들의 압력에 의해 과도한 배당금을 지급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이 최근 해외 투자자들에게 배당 압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SK텔레콤이 2004 회계연도에 순이익의 절반 이상에 해당되는 7,582억원을 배당금으로 지급한 데는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SK텔레콤은 이 가운데 54%에 해당하는 4102억원을 외국인에게 내주게 됐다.

외국계인 오펜하이머펀드와 JF에셋 등이 5% 이상 주요 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의 경우도 2004 회계 연도에 지난해 순이익 367억원 보다 2배 이상 많은 809억원을 배당금으로 지급했다. 또 삼성전자는 외국인에게 전체 배당금의 63%인 9,824억원을, POSCO는 75%인 4,833억원, KT는 66%인 4,178억원을 지급하는 등 배당금의 절반 이상을 외국인 몫으로 내 줬다. 정훈석 애널리스트는 “정유업체, 유틸리티 등 성숙기에 접어든 저성장 업체들은 고배당이 주주중시 차원에서 좋다고 할 수 있지만, 성장성이 높은 기업들이 주주의 압력에 의해 배당금을 과도하게 지급하는 것은 성장기반 확대에 부담이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선진국들과 달리 기본적으로 높은 성장성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라는 점을 감안할 때 배당보다는 투자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업계와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외국인 투자자들이나 일부 주주들이 선진국과 같은 고배당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무리이며, 기업 성장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주 입장에서도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 같은 측면에서 당장의 과실에만 연연하기 보다는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정영화 객원 기자


입력시간 : 2005-03-29 15:22


정영화 객원 기자 hollyjeo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