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의 기내서비스와 저비용 사업구조로 항공시장에 도전장, 양대 민항 긴장

항공료 '가격파괴' 국내서도 뜬다?!
최소의 기내서비스와 저비용 사업구조로
항공시장에 도전장, 양대 민항 긴장


한성항공이 도입할 ATR 기종.

국내 민간 항공업계에 ‘가격 파괴’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저가(低價) 항공사들이 주도하는 이 흐름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존 양대 민항 체제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저가 항공사들의 최대 무기는 무엇보다 대형 항공사들에 비해 30% 가량 저렴한 운임이다. 운용 비용이 적게 드는 중소형 항공기를 주력 기종으로 하고 불요불급한 기내 서비스를 배제하는 등 저비용 사업 구조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국내서는 저가 항공의 싹이 이제야 트고 있지만 세계는 오래 전부터 저가 열풍에 휩싸여 있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한 저가 항공사들의 시장 공략은 대형 항공사들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세계는 지금 저가 항공 열풍
1,000여 개 항공사와 3,500여 개 공항을 아우르는 영국의 항공정보제공업체 ‘오피셜 에어라인 가이드’(OAG)에 따르면 4월 현재 전세계 비행 편수의 약 13%를 저가 항공사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번 달에 운항을 했거나 운항이 예정된 227만 개의 비행 편수 중 30만 개 가량이 저가 항공사들의 몫이다. 지구촌 하늘을 날아다니는 여객기 8대 중 1대는 저가 항공사 소속인 셈이다. 또 좌석 점유율에서도 저가 항공사들은 4월 기준 총 2억6,000만 석 가운데 3,800만 석을 차지해 15%의 비중을 보이고 있다.

저가 항공사들의 약진은 최근 들어 더욱 가속화하는 양상이다. 4년 전과 비교하면 시장 점유율이 거의 두 배나 신장했다. 2001년 4월만 하더라도 저가 항공사들의 비행 편수와 좌석 점유율은 각각 전체의 6%와 8%에 불과했다.

저가 항공사들의 성장세가 두드러진 지역은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 등이다. 특히 유럽의 저가 항공사 비행 편수는 지난해 대비 24% 늘었다. 저가 항공사의 원조 격인 미국도 상황은 비슷하다. 비행 편수가 지난해에 비해 12% 증가하면서 시장 점유율은 17% 선까지 올라갔다.

미국의 저가 항공사들은 초창기만 해도 주로 근거리 노선에 취항했으나 현재 웬만한 노선에는 모두 비행기를 띄우고 있다. 이처럼 저가 항공사들의 도전이 거세지면서 대형 항공사들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해 도산 위기로까지 내몰리고 있다. 반면 미국 최대의 저가 항공사인 사우스웨스트 에어라인은 지난해 3억1,3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등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도전장 던진 저가 항공사들
이 같은 저가 항공의 바람이 국내에도 본격 상륙하기 시작했다. 3월말 ‘부정기 항공운송 사업자’로 등록하면서 국내 최초의 저가 항공사로 출범한 한성항공이 신호탄이다. 청주국제공항에 본사를 둔 한성항공은 우선 6월 중 청주-제주 노선에 첫 취항한 뒤 순차적으로 국내 노선을 늘릴 계획이다. 김포-제주처럼 수요가 많은 노선뿐 아니라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이 철수를 고려하는 노선에도 취항한다는 방침이다.

ATR기종 내부.

단거리 국제 노선도 공략 대상이다. 이 회사 김재준 부사장은 “우리의 목표는 국내 시장에 국한되지 않는다.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도 포함된다”며 “국내 대형 항공사들이 취항하지 않는 노선에 들어간다면 충분한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제주도를 근거지로 설립된 제주에어도 눈길을 끄는 저가 항공사다. 애경 그룹과 제주도가 민관 합작 형태로 출범시킨 이 회사는 대기업이 직접 나섰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애경은 화학ㆍ화장품ㆍ유통 등에 치우친 사업 구조를 다각화하고 미래 성장사업을 발굴한다는 차원에서 항공사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한성항공과 달리 ‘정기 항공운송 사업자’ 면허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국내에 정기 항공운송 사업자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둘뿐이다. 때문에 양대 민항에 도전장을 던진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애경의 한 관계자는 “정?운송 사업자 면허를 받지 못하면 사업 자체를 안 한다고 말할 정도로 그룹 상층부의 의지가 강하다”고 전했다. 제주에어는 내년 상반기부터 서울ㆍ부산ㆍ대구ㆍ청주 등 4개 노선에 우선 취항한다는 계획이다.

12일 지역 민간 항공사 설립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경상북도의 움직임도 관심의 대상이다. 포항공항 등 지방공항을 활성화하고 도민의 항공 편의를 증진시킨다는 명분을 내세운 경상북도의 계획이 실행 단계로 들어서면 저가 항공 시대는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항공업계 격변 올까
국내 항공업계는 저가 항공사의 등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대 관심사는 물론 가격 경쟁이 미칠 영향이다.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은 최근 기자 간담회에서 “단거리 국제 노선에서 저가 경쟁이 심화할 것에 대비해 별도의 항공사를 설립, 저가 운항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국내 노선의 경우 저가 항공이 순항할 수 있을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여객 수요가 적은 데다 탑승률이 떨어지면서 수익 구조가 나빠지고 있는 게 요즘 국내 노선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건설교통부 항공정책과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아서 항공 수요 자체가 적고, 철도와 도로 등 육상 교통이 발달하면서 국내 항공산업 시장이 더욱 열악한 상황에 놓인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하지만 “중소형 비행기를 띄우는 저가 항공사들이 저렴한 운임을 무기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덧붙였다.

저가 항공사들이 노리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이 취항하지 않는 노선을 집중 공략하는 것도 그런 전략의 하나다. 틈새 시장 전략인 셈이다. 실제로 양대 민항은 수익성이 떨어지거나 적자를 내는 노선에서는 철수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김재준 한성항공 부사장은 “애초부터 우리는 양대 민항과 경쟁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면서 “이들이 취항하지 않거나 수요가 넘치는 노선이 공략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처럼 대형 항공사와 저가 항공사가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해 나가면 항공 시장의 규모를 키울 수 있을 뿐 아니라 국내 항공산업의 대외 경쟁력을 한층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5-04-21 16:58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