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야심찬 출블, IMF 이후 시련의 연속…2003년부터 재기 기틀 다져패자부활제 이용, 기술·시장에 대한 정확한 예측 바탕 다시 출발선으로

벤처기업인 박승창, 패자의 아름다운 부활 날갯짓
1996년 야심찬 출블, IMF 이후 시련의 연속…2003년부터 재기 기틀 다져
패자부활제 이용, 기술·시장에 대한 정확한 예측 바탕 다시 출발선으로


5월 19일 오후 2시께 서울 삼성동 코엑스 전시장. ICC(국제정보통신학술회의) 2005, KEPES(한국전자부품전) 2005 등 첨단 미래사회와 관련한 굵직굵직한 이벤트가 동시에 개최되는 주간이어서인지 이곳은 관람객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벤처 패자부활제’가 업계 안팎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는 가운데 전직 벤처기업 대표 박승창(42) 씨도 새로운 기술 동향과 제품 유형에 이목을 집중하는 수많은 인파 속에 섞여 있었다. 박 씨는 자신과 연관성이 많은 분야의 최신 기류를 한 눈에 파악하기 위해 안테나를 곤두세우고 한참을 돌아다녔다.

그와 함께 전시장 3층의 빈 회의실 앞 테이블로 잠시 자리를 옮겼다. 북적대는 아래 층과는 달리 이곳은 대화를 편안하게 진행할 수 있을 만큼 차분한 분위기다. 박 씨는 이곳을 자주 방문해 물정에 밝은 듯 “조금만 돌아다녀 보면 짧은 미팅이나 회의를 할 수 있는 자리가 눈에 띄곤 하죠”라고 말했다.

노트북 가방을 열어 제치던 박 씨는 잠깐 회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이 노트북이 참 고마운 놈입니다. 2003년 벤처기업협회에서 주최한 ‘벤처코리아 대회’에서 수기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었는데, 그때 부상으로 받은 노트북이죠. 회사를 접고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 이 놈이 그 동안 제 일을 썩 많이 도와줬습니다.”

정직한 벤처인의 희망 '패자부활제'
박 씨는 당시 대회 때 ‘특허 3장은 벤처의 불씨’라는 창작시를 응모했다. 심사 위원들은 한국 경제의 신 성장 엔진인 벤처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살아 있는 마지막 날까지 매진할 것이라는 작가의 굳은 의지가 잘 표현됐다는 평가를 내렸다.

박 씨는 전직 벤처 기업인이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그는 잘 나갔다. 자신의 업종에서 인정받는 기술과 제품, 특허도 보유했었다. 그렇지만 그의 사업은 실패했다. 그가 굵은 땀방울을 쏟아 가며 일군 회사인 액팀스도 폐업했다.

정부는 지난해 말 벤처 활성화 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그 중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이른바 ‘벤처 패자부활 제도’의 도입이었다. 한 번 실패한 벤처 기업인들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 제도의 골자다. 2000년 벤처 거품 붕괴 이후 줄줄이 생업 전선에서 밀려난 수많은 전직 벤처 기업인들은 환호했다. 그 후 구체적인 절차 등을 마련하는 데 몇 달 간의 우여곡절을 겪은 패자부활 제도는 5월 16일 출발 총성을 울렸다.

박 씨는 패자부활 제도에 적지 않은 기대를 걸고 있다. 이제 재기할 수 있다는 반가움에 그 동안의 마음 고생도 잊은 듯하다. 이번에 도입된 패자부활 제도는 모든 실패자에게 재기 기회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정직하게 기업을 경영했던’ 벤처인들에게만 문호가 열려 있다. 벤처 산업의 급성장 한가운데서 돈놀이, 한탕주의 등으로 거품을 만들고 물을 흐린 벤처인들은 철저하게 걸러내기 위해서다.

미래를 도모하기 위한 이 제도의 본격 시행에 즈음해 과거에 대한 반성은 두 번 세 번을 해도 지나치지 않다. 벤처 기업인들이 정직하게 회사를 경영했음에도 실패했던 까닭은 과연 무엇인지도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 그래야 사후약방문 격의 제도가 다음에는 나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 씨의 실패담은 정직한 벤처 기업인이 환경적 요인 때문에 어떻게 망가졌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박 씨가 창업을 결심한 것은 1996년 봄. 그는 이후 차세대 이동통신 IMT-2000용 스마트 안테나를 주력 사업 아이템으로 잡아 연구개발에 매진했다. 그러면서 안테나의 핵심 부품인 디지털 빔 성형 기술에 대한 특허도 따냈다.

2003년 이후 전환기 맞아
1997년 1월 ‘IMT-2000 민간협의체’에 참여하는 등 순항하던 그에게 예기치 못한 고난이 처음 찾아온 것은 그 해 말 한국 경제를 강타한 IMF 외환위기 때였다. 반 년이 넘도록 고작 한 건의 저가 용역만 수행할 정도로 일감이 뚝 떨어지자, 애써 키운 연구 인력이 떠나는 등 극심한 여파가 나타났다. 하지만 소규모 투자를 받고 어렵사리 긴축 경영을 하는 동안 반전이 일어났다. 기술 개발의 끈을 놓지 않은 덕에 삼성전자-ETRI와 함께 하는 스마트 안테나 상용화 컨소시엄에 초대된 것이다. 이 때가 2000년으로, 직원들은 다시 늘어나 22명에 달했고 매출도 8억5,000만원이나 올리는 등 흐뭇한 한 해를 보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이 때부터 박 씨의 앞길은 풀릴 만하면 뜻밖의 암초가 나타나기를 거듭했다. 든든한 파트너들과 함께 했던 스마트 안테나 컨소시엄은 정보통신부 입찰전에서 터무니없는 낮은 가격을 써낸 경쟁업체에 지는 바람에 무산됐다. 박 씨는 “업계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30억원 정도는 투입해야 한다고 본 사업을 정통부의 담당 사무관은 단지 싼 가격을 써냈다는 이유로 경쟁업체에 넘기더라”며 씁쓸하게 회고했다.

두 번째 주력 제품으로 삼았던 광선로 감시관리 시스템의 좌절은 더욱 가슴 아프다. 박 씨는 당초 이 제품에 대해 한전과 공동 특허를 가졌을 뿐 아니라, 한전이 전국 확산사업의 파트너로 삼겠다고 약속까지 했기 때문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2001년 말에는 한전이 지정하는 유망 전력벤처기업에도 포함됐다. 하지만 박 씨가 여기서도 실패를 맛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02년 7월께 한전의 자회사가 유사 장비를 팔고 있는 사실을 접한 것.

“뒤통수를 맞았다는 생각에 그 즉시 한전 본사의 담당 부서장을 찾아가 따졌죠. 하지만 우리 제품을 살 계획이 없다는 무심한 통보만 되돌아올 뿐이었습니다. 그곳을 나서 대전 집으로 내려오는데 하염없이 눈물만 쏟아지더군요.” 박 씨는 광선로 감시관리 시스템의 기술 개발에 기술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지원 받은 2억5,000만원을 몽땅 투입한 뒤였다.

이처럼 어렵사리 마련한 자금을 기반으로 개발한 기술과 제품이 매출로 이어지지 못하는 사태가 반복되면서 자연스레 박 씨의 채무는 감당하기 힘든 지경까지 불어났다. 이 때문에 사실상 사업을 잠정 중단하기로 결심한 그는 2002년 말 무렵 그 동안 동고동락 해왔던 직원들까지 모두 새로운 둥지로 떠나 보냈다. 가슴은 새까맣게 타 들어갔다. 이듬해에는 관할 세무서가 부가세 500만원 체납을 이유로 아무런 통보 없이 회사를 직권 폐업시켰다.

박 씨는 하지만 굴하지 않았다. 좌절감을 맛본 순간, 그에게는 재기의 자신감과 오기도 함께 솟아났다. 2002년 10월 28일 그는 자신의 이름 세 글자를 브랜드로 내걸고 ‘IT 비즈니스 닥터’라는 전문가 활동을 개시했다. 공교롭게도 그 날은 세계 IT업계의 거목 빌 게이츠의 생일이었고, 이에 박 씨는 기꺼이 자신이 새로 태어난 날로 삼았다.

2003년부터는 전환기의 토대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액팀스의 자회사 격인 폴리소프트의 IT 비즈니스 닥터 명함을 들고 더욱 정열적으로 재기를 모색했다. 틈나는 대로 관련 연구와 저술을 수행했고, 여기저기 강의를 다니며 자신의 이론과 기술을 전파했다. 이 와중에 돈도 조금씩 벌어 적잖은 채무를 갚아 나갔다. 신용 불량은 새로 시작하는 데 너무나 거추장스런 족쇄이기 때문이다.

유비쿼터스시대 도래는 그에겐 기회
그는 기자와 만난 날에도 대전 집에서 상경, KT 관계자와의 면담에 이어 전자거래진흥원이 주관하는 강의에 출강하는 등 시간을 무척 아껴 썼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준비 중인 미래 비전에 대해서는 거침없는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유비쿼터스 시대의 도래를 몇 년 전부터 읽고 여기에 맞는 연구와 사업 계획을 마련해 왔습니다. 이른바 유비쿼터스 시스템온칩(u-SoC)이 향후 IT업계의 최대 테마로 떠오를 텐데, 내년 이맘때쯤 저도 이 u-SoC를 새로운 무기로 삼아 액팀스를 되살려 놓을 계획입니다.” 실제로 u-SoC는 세계 유수의 전문가들이 IT산업의 미래로 제시하고 있는 키워드다. 지능이 칩에 내장된 u-SoC는 유비쿼터스 시대 통신기기의 핵심 부품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박 씨는 아픈 상처를 일찌감치 털고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는 있지만, 자신의 실패에서 큰 교훈도 얻었다. 경기와 시장에 대한 정확한 예측과 부채의 안정적인 관리가 그것이다. 외부의 탓으로만 돌리기엔 기업 환경이 너무나 냉정하고 살벌하기 때문에 스스로 이에 대한 대처 능력을 길러야겠다는 다짐이다. 정직한 경영에 영리한 경영을 더하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박 씨는 패자부활 제도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국가 경쟁력 강화라는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한 제도입니다. 요즘 같은 기술 중심 시대에 기술 벤처를 키우지 않으면 나라의 미래가 어둡습니다. 앞으로는 벤처들의 넉넉지 않은 자금 瑩ㅐ?충분히 반영해 기술 벤처 기업을 육성할 수 있는 금융 시스템을 갖추는 게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봅니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5-05-26 17:22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