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이상한 네자릿수 시대

그들만의 돈 잔치, 개미들은 찬밥
증시, 이상한 네자릿수 시대

얼마 전 증권선물거래소는 투자자별 매매평가손익 분석이라는 자료를 통해 일반인들이 올해 들어서만 1조1,000억 원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산된다고 발표하였다. 작년 12월 30일의 종합주가지수 종가가 895.92였으니 지금의 주가지수와 비교하면 한참이나 아래쪽이다.

웬만한 주식이라면 연초대비 현재의 주가가 모조리 상승해 있을 터. 단순무식하게 말하여, 그냥 아무 거래도 하지 않고, 작년 말부터 주식을 지금까지 보유하기만 하였어도 꽤 짭짤한 수익을 얻었을 법 한데…, 대체 이게 어쩐 일인가. 결국 일반인들은 딴에는 거래한다고 열심히 해보았지만 주식을 쌀 때 팔고, 비쌀 때 사들인 꼴이 되고 말았다. 주식은 선물이나 옵션 같은 파생상품과는 달리 제로 섬 게임이 아니다.

그러므로 거래소의 발표대로 일반인들이 현실적으로 손해를 본 것은 아니라는 것이 그나마 불행 중 다행. 여기서 나타난 손실이라는 것은 이를테면 “얻을 수 있는 수익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린” 기회손실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기회손실이건 실현손실이건 일반인들이 대체 어떻게 하였길래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주식시장은 전체적으로 상승하였는데 왜 일반인들은 거꾸로 손실만 입었을까.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말이 있다. 송나라의 저공(狙公)이란 사람이 원숭이를 많이 기르고 있었는데 먹이가 부족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원숭이들에게 "앞으로 너희들에게 주는 도토리를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로 제한하겠다"고 말하자 원숭이들은 화를 내며 아침에 3개를 먹고는 배가 고파 못 견딘다고 하였다.

그러자 저공이 "그렇다면 아침에 4개를 주고 저녁에 3개를 주겠노라"고 하자 원숭이들은 좋아하였다는 일화다. 이 이야기를 듣고 우리들 인간은 웃는다. 그러면서 원숭이들의 어리석음을 비웃는다. 하지만 어리석기로야 인간이나 원숭이나 매한가지일 때가 많다.

특히 돈이 걸린 주식투자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어리석은 일을 되풀이한다. 주식투자는 심리 전쟁이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의 심리가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그런데 위의 조삼모사와 유사한 사례가 주식투자에서도 많다. 이런 예를 생각해보자.

계절이 바뀌어서 벽장 속에 넣어 두었던 옷으로 갈아입으려고 한다. 무심코 주머니에 손을 넣었더니… 어? 주머니 속에서 1년 전에 넣어 두었던 1만 원짜리 지폐가 나왔다. 어떤 생각이 드는가.

분명히 공돈으로 여겨 냉큼 써버릴 것이다. 사실 그 1만 원이나 혹은 오늘 낮에 은행의 현금인출기에서 인출한 1만 원이나 모두 똑같은 은행 계좌에서 나온 돈이며, 그 돈을 벌려고 똑같이 노력하였었다. 하지만 되찾은 1만 원은 “잊어 버린” 돈으로 여겨져서 그 돈을 쓰면서도 아깝게 생각되지 않는다. 같은 돈이지만 “다른 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주식투자를 하였는데, 주가가 올랐다. 그래서 수익이 생겼다. 어떤 생각이 들까. 물론 그 수익은 위험을 담보로 하여 얻은 것이다. 하지만 직장에서 혹은 사업체에서 땀 흘려 얻은 대가와는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어찌 공돈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땀 흘려 얻은 돈은 “진짜 돈” 같지만, 주식으로 얻은 돈은 다른 돈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기에 냉큼 수익을 실현하고, 그 돈으로 무언가를 사버린다. 주식투자로 얻은 수익은 쉽사리 소비되기 쉽다. 반면에 주가가 내렸다. 그래서 당장 그 주식을 팔면 손해를 볼 형편이다.

어떤 생각이 들까. 똑같은 돈이지만 이제는 입장이 다르다. 주식투자로 손해를 본다는 것은 결국 다른 곳에서 땀 흘려 번 돈을 날려 보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용납할 수 없다. 그 돈이 어떤 돈인데… 내가 그 돈을 벌려고 얼마나 고생하였는데… 그 돈으로 자장면 몇 그릇을 사 먹을 수 있고, 고기를 몇 근이나 구울 수 있는데…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절대로(!) 손해를 앉아서 당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특히 주식투자 경험이 적은 일반인들일수록, 주식투자에서 손해를 보면 선뜻 팔아서 손실을 현실화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기보다는 일단 더 보유하는 길을 택하는 것이다. 혹시 기다리다 보면 수익이 날까 하여.

그러나 추세가 한번 형성되면 좀처럼 바뀌지 않는 법이다. 한번 상승세가 시작되면 계속 상승세가 이어지듯 하락세로 접어든 주가는 좀처럼 상승세로 돌아서기는 어렵다.

기다리는 사이에 주가는 내려가고 이제는 도무지 버틸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일반인들은 결국 눈물을 머금고 매도하는 길을 택한다. 그리고 그게 바닥이며, 주가는 바닥을 딛고 힘차게 솟구쳐 오른다.

주식투자는 불공정 게임이다. 공평한 것 같지만 주식시장만큼 불공정한 곳도 없다. 일반인들이나, 기관들이나, 외국인들 모두 같은 곳에서, 같은 종목을 놓고 자웅을 겨루지만 애시당초 일반인들이 승리하기는 상당히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다.

냉정하게 말하여 일반인들이 기관들이나 외국인들에 비하여 자금이 풍부한가, 분석력이 뛰어난가, 아니면 정보력이 우수한가, 어느 하나 열세일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일반인들은 기관 혹은 외국인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 그러면서도 또 심리적으로 엉뚱한 일을 반복하고 있으니 이게 대체 이기는 게임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일반인들로 하여금 주식투자를 그만두라는 말은 아니다. 그럴 의도도 전혀 없다. 어차피 기관이나 외국인들도 무슨 컴퓨터나 외계인이 아니라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 법. 그들이 성공한다면 우리라고, 일반인이라고 실패하라는 법도 없다. 결국 비결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자신만의 투자원칙을 수립하고, 하늘이 두 쪽이 나도 그 원칙을 지켜나가면 분명 승산이 있는 게임이다. 추세를 따르라… 손절을 주저하지 말라… 부화뇌동하지 말라… 여러 가지 지침은 많다. 그러나 단 하나의 원칙만을 말한다면 아마도 “장기적으로 투자하라”가 될 것이다.

글의 첫머리에 밝혔듯 작년 말부터 지금까지 주식을 그저 보유하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수익은 났었다. 단기적으로 매매를 반복하는 일보다 오히려 그게 더 나은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애시당초 기관이나 외국인들과 겨루어서 힘겨운 싸움이라면, 되도록 그 힘겨룸의 횟수를 줄이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닐까.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자신만은’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의사결정이 뛰어나다고 믿는다. 다른 사람은 손해를 볼지라도 자신은 손해를 보지 않으며, 자신만은 뉴스에 즉각 반응하고, 주가가 하락할 때 눈치를 채어 얼른 팔아서 빠져 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

그 결과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서둘러 팔아버리는 경향이 높다. 하지만 정작 상승추세에서 그런 단기반응은 오히려 해가 된다. 팔아버린 주식들의 주가가 다시 상승하여도 이들은 팔아버릴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재빨리 반응할 수 없고, 그만큼 기회를 놓치는 셈이 되는 것이다.

당분간 주식시장은 활황을 보이리라 예상된다. 꾸준한 상승세를 기대할 수 있다. 예컨대 예전 같았으면 종합주가지수 1,000포인트 이상에서 오래 머무르지도 못하였을 터인데 지금의 시장은 전혀 그렇지 않다.

증시로 자금이 엄청나게 몰려드는 기색이 없어도 주가는 꾸준히 오르고 있으며, 펀드에 의한 간접투자로 인하여 시장의 수요기반은 예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외국인들도 꾸준하다. 그만큼 아래가, 매수세가 탄탄하다는 뜻이다. 아울러 주식시장은 경기를 선행하는 법이다.

실물경제는 점차 나아지고 있지만 아직 경기정점 혹은 경기과열을 운위하기에는 턱도 없는 수준이다. 경기가 앞으로 좋아질 수 밖에 없다면 주가는 상승하는 것만이 올바른 방향이다. 그리고 그렇다면… 결론은 정해졌다. 장기투자가 정답이다.

입력시간 : 2005-08-18 14:41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