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멘소리에 가려진 '집값 안정'

8·31부동산 종합대책 시장반응
볼멘소리에 가려진 '집값 안정'

“10여년 전에 아파트 한 채 마련한 이 집이 유일한 재산인데 이제 갑작스런 세금 벼락을 맞게 돼 황당하네요. 퇴직 연금으로 노후를 보내야 하는 마당에 졸지에 투기꾼으로 몰리고 연금 모두를 세금으로 내야 할 판”이라고 깊은 탄식을 터뜨렸다.

서울 강남구 M아파트 45평형에 사는 김만재(65)씨는 “급등한 부동산 세금 때문에 퇴직 후 유일한 재산인 집 한 채 마저 소유하기 어렵게 됐다”며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부동산 투기꾼을 잡기 위한 것인지 선량한 주민들까지 잡으려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정부 대책에 대한 억울함을 나타냈다.

대다수 시민들은 이번 대책이 비정상적인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킬 것이란 기대감을 나타내면서도 이번 대책으로 투기 의도가 없는 강남 1주택자 등 선의의 피해자가 속출할 가능성도 있다며 우려했다.

-중개업계

"강남·북 같은 기준 적용 불합리"

이번 8ㆍ31 대책 변화를 가장 먼저 체감할 수 있는 중개업자들은 대체적으로 관망세가 이어질 것이란 견해가 우세하다.

강남권의 경우 대폭 늘어난 세부담으로 인해 주민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는 있지만, 당장 집을 팔고 떠나는 일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강북권은 커다란 변화를 예상하기 어렵다는 입장이 상당수다.

일부는 세부담 등으로 인해 서민들만 괴로워질 것이란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대치동 B공인 관계자는 “매물이 갑자기 쏟아지거나 집값 폭락으로 이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파동 E공인 관계자는 “늘어나는 양도소득세가 세입자들의 임대료에 전가될 경우 가격하락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고덕동 고일공인 관계자는 “이번 대책은 이미 시장에 알려졌던 내용을 재구성해 발표된 것이라 시장 충격이 그리 크진 않을 것”이라며 “세 부담이 늘어나겠지만 서둘러서 집을 팔겠다는 집주인들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노원구 중계동 G공인 관계자는 “세부담을 느낀 2주택자들이 우선적으로 가격이 싼 것부터 처분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강북지역 집값이 떨어질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주택담보대출 제한에 대한 불만도 많다. 도봉구 창동 A공인 관계자는 “대부분 서민들이 내집 마련을 위해 담보대출을 받는데, 지역별로 차별화하지않고 강북과 강남을 같은 기준으로 규제하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토로했다.

-주택업계

"건설경기 침체·집값 안정에 역효과"

주택업체들은는 당장 주택산업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반발하는 가운데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건설업체들은 분양가 규제와 공영개발 도입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또 투기 수요를 억제하는 정책이 자칫 시장기능을 마비시켜 집값 안정에 역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업계는 공영개발과 관련, “주택시장 자율화 기조에 역행하는 정책이며 민간 주택공급 기반이 무너져 주택산업 공동화 및 국가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초래할 것”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민간 주택업체가 창의성은 떨어지고 단순 하도급 업체로 전락, 공급이 위축되고 결국 수급 불안으로 가격의 불안전성이 확대될 것이라는 논리다.

김홍배 주택건설협회 부회장은 “주택 건설은 전체 경기를 이끄는 산업일 뿐 아니라 고용창출 등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면서 “이번 대책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를 더욱 침체에 빠뜨리고 실업자를 양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신 “25.7평 초과 중대형 아파트도 민간개발로 하되,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면 분양가 안정을 꾀하고 양질의 주택공급 목표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업계는 새로운 영업 전략을 마련하는 쪽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현대건설 주택사업부 관계자는 “일단 대책이 발표된 이상 건설경기가 일정기간 침체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그러나 과거 외환위기는 갑자기 닥쳤지만 이번 대책은 충분히 예고됨 만큼 충격이 예상만큼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쌍용건설 관계자는 “투자수요보다는 실수요 중심인 지방 분양시장은 이번 대책으로 큰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융계

새로운 자금운용처 개傷?고심

주택담보대출 시장 공략에 주력해 왔던 은행권은 새로운 자금 운용처를 발굴하기 위해 고심해야 할 처지다. 이번 대책 시행으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경우 주택담보대출 수요는 더욱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은행권은 대안으로 중소기업 대출, 소호 대출, 신용대출 등에 대한 자산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시장이 주택담보대출에 비해 리스크가 커 섣불리 뛰어들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위험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우량 고객 확보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되며 리스크 관리 능력과 위험을 흡수할 수 있는 재무안정성이 더욱 중요한 경쟁요소로 떠오를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이번 대책의 영향으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우려가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며 “또 부동산 가격이 폭락할 경우 ‘깡통’ 아파트가 등장할 소지도 있는 만큼 부실채권에 대한 관리 등에도 신경을 써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증권사들은 ‘8ㆍ31 대책’이 주식시장에 미칠 영향은 단기적으로 미미하지만 중장기적으론 긍정적이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시중 부동자금의 증시로의 본격적인 자금유입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부동산 시장을 떠난 부동자금은 실물이든 금융이든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시민단체

"개발이익 환수 등 근본대책 미흡"

시민단체들은 이번 대책이 당초 언론을 통해 알려졌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뿐 아니라 일부 시장론자 등의 ‘물타기’로 강도가 크게 떨어졌다며 정부 대책을 비난했다. 또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등의 근본적인 대책이 빠진 것은 아쉬운 점이라고 평가했다.

참여연대는 성명을 내고 “세제 강화를 통해 투기를 차단하고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면서도 “그러나 건설사의 무분별한 분양가 인상을 규제할 대책과 분양가 상승의 주범이었던 재건축ㆍ재개발 주택에 대한 개발이익 환수 대책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 김남근 변호사는 “민간택지의 경우 주상복합과 재건축 아파트가 주변 시세를 끌어올리는데도 이에 대한 대책이 전무하다”면서 “공공택지지구처럼 분양가를 규제하지 않겠다면 분양원가를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박완기 시민감시국장은 “개발부담금이 25%로 줄어든 것은 개발이익환수 시늉만 낸 것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세제 등 투기수요 억제 장치들이 효과를 보려면 1∼2년은 걸리는데 공급 대책이 미리 나와버려 일부 지역의 집값만 상승시켰다”고 성토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윤순철 정책실장은 “양도세 실거래가 적용은 과세 형평성을 제고한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하지만 강남에 신도시를 짓고 강북에 뉴타운을 동시다발적으로 개발하는 것은 제2의 투기와 가격 급등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큰 만큼 정부가 집값과 땅값을 잡겠다는 의지가 크게 훼손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전태훤기자


입력시간 : 2005-09-07 18:13


전태훤기자 besam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