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측 내부혼선은 일단 잠재워…북과 갈등 정면돌파 의지

현정은 회장 '뚝심' 북에 통할까
남측 내부혼선은 일단 잠재워…북과 갈등 정면돌파 의지

‘김윤규 사태’로 시작돼 2중, 3중의 복잡한 갈등 양상을 보이던 대북 관광사업이 정부의 교통정리로 일단 가닥을 잡았다. 통일부가 10일 방어적인 태도를 접고 현대그룹의 대북사업 독점권을 사실상 인정하고 나섰고, 북측으로부터 개성관광 제안을 받았던 롯데관광이 발을 빼면서 내부의 혼선은 정리됐다.

이제 공은 북한에 넘어 간 셈이다. 현재로선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은 유리한 입지에 선 반면, 이중플레이 인상을 비췄던 북한은 운신의 폭이 좁아진 형국이다.

지금까지 북한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우리측 기류와 상관없이 북측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올 경우 대북 관광사업이 또 다른 난기류에 휩싸일 가능성은 상존한다.

특히 곳곳에서 북한이 ‘김윤규 사태’를 빌미로 남한 기업들 간의 경쟁을 유발해 이익을 챙기려는 속셈이라는 등의 지적이 공공연한 터라 ‘자존심’에 민감한 북한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우선 북한은 현대에서 5억 달러를 받고 2000년 8월에 맺은 ‘7대 사업 독점권’ 합의서의 기본 정신은 쉽게 저버릴 수 없겠지만, 합의서 자구를 따지며 현대가 확보한 독점 사업의 의미와 범위를 달리 해석하고 나온다면 상황이 복잡해 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다음달 3일부터 시행되는 남북교류협력법 시행령에는 현대와 북한이 맺은 사업 독점권 계약과 관련해 분쟁이 발생할 경우 최종적으로 중국 베이징에 있는 국제경제무역중재위원회에 중재신청을 할 수 있는 조정방법까지 명기되어 있다.

북 '현대 따돌리기'는 새 파트너 물색 의도

최근 북한이 보인 일련의 ‘현대 따돌리기’가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의 퇴진에 반발, 현대 길들이기에 나섰다기보다 현정은 현대그룹 체제에서는 더 이상 과거 같은 대규모 뒷돈 지원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새로운 파트너를 물색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상황이 이렇다면 현대와 북한의 갈등은 갈수록 꼬일 수밖에 없다.

북측이 롯데관광에 적극적으로 접근하는 이유도 김기병 회장이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처럼 대북 사업에 남다를 수 있다는 점을 주목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동시에 롯데관광이 일본에 기반을 둔 롯데그룹과 특수관계라는 점에서 일본인 관광 특수를 기대할 수 있다. 김 회장의 부인인 신정희 씨는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동생이고, 동화면세점과 동화주류 대표이사로 있다.

또 김 회장은 함경남도 원산이 고향이고 ‘원산장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등 북녘 고향에 애착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관광사업 다중 플레이는 우리 정부의 견제로 주춤거리게 됐고, 당분간 현대를 제치고 새로운 파트너를 찾기는 어려운 상황이 됐다.

현정은 회장은 10일 현대아산 임직원들에게 보낸 공개 이메일에서 “남에게 알릴 수 없었던 몸 내부의 종기를 제거하는 커다란 수술을 받았다”면서 “형제(북한)가 우리의 바뀐 모습을 인정할 때까지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야 하며 더욱더 진정어린 마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12일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 이후 근 한 달 만에 김윤규 전 부회장 인사 조치의 불가피성을 다시 강조하고 북한 측의 결정을 기다리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는 현 회장이 일각에서 우려했던 대북사업 중단 가능성을 일축한 것과 동시에 더 이상 북측에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경고성 메시지로 해석된다.

현 회장의 ‘뚝심 경영’이 내부에서 일단 판정승을 거둔 양상이지만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은 첩첩이다. 우선 핵심사안인 북한과의 관계 회복 여부가 미지수다.












현대아산은 현 회장이 이메일에서 밝힌 대로 대북 관광사업의 돌파구?열기 위해 다음주부터 임직원들을 잇따라 금강산과 평양에 보내기 위한 접촉에 나설 예정이나 북한의 분위기는 여전히 냉랭하다.

12일 현대그룹은 장한빈 현대아산 기획본부장이 다음주 금강산을 방문해 북측 금강산 사업 주체인 금강산총회사 관계자들과 관광 정상화를 위한 협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9월부터 금강산 관광객 수를 기존 절반 수준인 하루 600명으로 줄인 이후 현대아산은 매달 45억원 가량의 손실을 입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아산 입장에선 개성관광의 지연보다 이미 투자가 많이 된 금강산 관광의 축소가 급히 꺼야 할 ‘발등의 불’인 것이다.

현대는 또한 22~25일에는 평양을 방문, 백두산 시범관광에 대한 협의에도 나설 계획이지만, 북한은 관광공사에 이미 백두산 시범관광을 제안해 놓은 상태다. 그러나 현대는 “북한의 그러한 움직임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협의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현 회장 '소신 경영' 넘어야 할 산 많아

현 회장의 ‘뚝심 경영’은 정부와의 관계에서도 앙금을 남겼다. 우선 ‘김윤규 사태’가 현대 내부의 권력다툼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세간의 수근거림 속에서도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나름대로 북한과 현대 간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만남을 주선했다.

그런데 얼마되지 않아 김 전 부회장이 남북협력기금을 유용했다는 얘기를 현대측에서 터뜨렸다. 통일부로선 여간 당혹스러운 상황이 아니었다.

이는 통일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운용되는 년 5,000억원이 넘는 기금을 제대로 관리하고 있지 못하다는 얘기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자칫 남북협력사업 전반이 상처를 입을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때문에 정부가 현대에 유감을 표시하고 한동안 대북 관광사업의 혼선에 방어적 자세를 취한 측면도 없지 않다. 정 통일부 장관은 10일 국정감사에서 “현대와 북한 간 계약은 유효하다”면서도 “그렇다고 정부가 특정 기업의 독점권에 귀속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여운을 남겼다.

최근 대북사업의 표류는 현대그룹과 북한 및 정부와 현대의 갈등, 남한 기업 간의 경쟁 등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문제 해결의 관건은 현대와 북한 두 당사자의 결자해지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는 남북협력사업의 전개를 현 회장의 ‘뚝심 경영’과 북한의 ‘위험한 힘겨루기’에 맡겨둘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대북사업의 특수성을 인정하지만, 이제는 제도 속에서 투명하게 운영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할 때라는 여론이 강해지는 이유다.


조신 차장


입력시간 : 2005-10-19 11:28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