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엔당 900원선 붕괴

지난달 3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엔화 당 원화의 환율이 100엔당 900원선이 무너지면서 향후의 환율 동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0월31일 마감가 기준으로 엔화 환율(외환은행 고시환율)은 899원36전으로 결정되었다. 900원선이 붕괴된 것은 1998년 8월24일 899원02전을 기록한 이후 무려 7년2개월만의 일이다.

IMF 금융위기를 겪던 1998년 말, 일시적으로 달러/원 환율이 급등하면서 엔화 대 원화의 환율이 100엔당 1,400원 수준을 상향 돌파한 적도 있다.

그러나 이는 지극히 일시적인 일로서 그 때를 제외하면 엔화 환율은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1998년 9월부터 2001년말까지 약 3년 반의 기간동안 100엔은 1,000원 수준으로 고착되었고, 이로 인하여 100엔=1,000원의 환율이 마치 황금비율인 것처럼 간주되기도 했다.

그러니 당시와 비교할 때, 100엔당 1,000원선도 아니고 900원선마저 무너뜨린 최근의 엔화 약세는 눈에 뜨일 정도다.

달러강세 기조로 엔화 약세 지속 전망

환율문제는 비단 국내 경제뿐 아니라 대외적인 수출입 거래에 미치는 파장이 만만치 않은 만큼 각국의 중앙은행 등 정책 당국이 이만저만 관심있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엔화 환율은 그 동안 비교적 안정적이었다가 급기야 근래에 갑자기 하락폭을 늘렸고, 급기야 7년 만에 900원선을 처음으로 무너뜨리는 등 약세가 뚜렷해지고 있어 관련 업체, 외환시장의 딜러들은 물론이고 중앙은행이나 정부에서도 당연히 촉각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외환시장의 외환딜러들은 엔화의 약세 양상이 당분간은 더 이어져 900원선 아래에 머물러 있는 기간이 길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국제 금융시장에서 세계적인 달러 강세 분위기에 따라 엔화가 약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초 퇴임을 앞두고 있는 미국의 그린스펀 연방준비위원회(FRB) 의장은, 후임자인 버냉키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라도 임기 내에 지속적으로 달러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달러화의 금리인상은 달러화의 수요증가를 촉발하여 단기적으로는 달러 강세 요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내년 초까지 지속적인 달러화의 금리 인상이 예상되는 만큼 달러화 가치는 당분간은 상승할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달러화가 강세를 보인다면 의당 엔화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둘째, 이처럼 달러가 강세를 보이는 것은 미국의 지속적인 금리 인상으로 말미암아 국제 금융자본이 높은 수익률을 쫓아 달러화로 유입되기 때문이다.

즉 금리가 낮은 일본에서는 자본이 계속 유출되고 이 자금이 미 달러화로 들어가기 때문에 엔화로서는 매도압력이, 그리고 달러화에게는 매수수요가 몰리게 되고, 그로 인하여 달러강세/엔화약세 양상이 빚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미국의 금리인상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유출현상이 미미하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금리가 지난 10월에 인상된 이후, 미국과 우리나라의 금리차가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기에 굳이 국내에서 자금을 빼내어서 달러화에 투자할 유인이 낮기 때문이다.

결국 상대적으로 달러에 대하여 엔화는 약세를 지속하고 있지만 원화는 달러에 대하여 약세양상이 두드러지지 않았으니, 결국 엔화는 원화에 대하여 상대적인 약세를 보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양상은 이어지리라 전망된다.

셋째, 국내 외환시장의 수급면에서도 원화는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하이닉스가 국제 금융시장에서 DR 발행을 통하여 조달한 외자가 국내 외환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또한 자동차, 반도체, 조선 등의 수출 호조 덕택으로 국내 외환시장에서 달러의 공급이 늘어나고 있다.

아울러 주식시장이 꾸준히 강세를 보이면서 국내 증시에 투자하려는 외국인들의 달러 유입 양상도 이어지고 있는 만큼 달러/원 환율이 급격하게 상승(원화 약세)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

결국 원화는 강세를 보이리라 전망이 되며, 이는 상대적으로 달러화에 대한 환율뿐만이 아니라, 엔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요인이기도 하다.

엔화표시 대출 중소기업엔 긍정 효과

엔화의 상대적인 약세가 가져다 줄 긍정적인 효과는 과거 엔화 표시 원화대출을 사용하고 있던 중소기업체들의 원리금 상환부담이 상당히 경감되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은 2, 3년 전 당시 국내 원화 대출보다는 월등히 금리부담이 낮다는 이점을 노리고 다소간의 환율 변동 위험을 감수하면서 엔화표시 대출을 선택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 선택이 잘 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출을 받을 당시, 엔화의 환율은 100엔당 대략 1,000원 수준이었을 것이니 그때와 비교한다면 원금은 거꾸로 10퍼센트 이상 줄어든 셈이다. 또한, 일본에서 원재료나 자본재 등을 도입하는 국내 기업의 경우도 엔화의 약세로 혜택을 입을 전망이다.

엔화가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이면서 일본에서 들여오는 원재료 등의 원가도 덩달아 낮아졌다.

그러니 제품의 제조원가가 하락하였고, 이는 수익성 증대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일본에서 자본재를 도입하는 회사의 경우는 투자비용을 줄이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효과도 있는 반면에 부정적인 효과도 많다. 엔화의 약세로 말미암아 일본에서 수입하는 회사들이 수혜를 받는다면, 반대로 일본시장에 직접 수출하는 기업들은 엔화 약세의 피해를 고스란히 입는다.

이전에는 100엔어치를 수출하면 원화로 1,000원을 받을 수 있었던 반면 지금은 똑같은 100엔의 수출에 900원밖에 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또한 국제 시장에서 일본 제품과 경쟁하는 기업일수록 원화의 상대적인 강세로 말미암아 가격 경쟁력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실제로 원/엔 환율이 1% 하락하면 이에 따라 무역수지 흑자가 3억달러 정도 줄어들고, 또한 이로 말미암아 경제성장률은 0.04%포인트 감소할 것으로 자체 분석하고 있기도 하다.

엔화의 환율 하락이 직접적으로 대외경쟁력을 떨어트린다는 실증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물론 우리나라 정책 당국으로서도 원화가 엔화에 대하여 이처럼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는 현상을 가만 두고 보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무언가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예컨대 직접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하여 달러/원 환율을 끌어올리는 조치가 당장 가능한 대책일 수 있다. 그러나 당국이 외환시장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경우, 일시적으로 환율 움직임을 돌려놓을 수는 있어도 근본적인 조치는 되지 못한다.

어차피 환율은 국제수지, 경기, 금리, 인플레 등이 복합된 결과인데다 그 외에도 환율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 무수히 많기 때문에, 일시적인 당국의 개입으로 큰 흐름을 바꾸지는 못한다.

앞서 살펴보았듯 당장 원화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일 전망이다. 그 뿐 아니라, 중국의 위안화에 대한 선진국의 평가절상 압력이 여전하고, 중국은 결국 그런 추세에 따라 위안화를 평가 절상할 수 밖에 없으리라 예상되므로, 중국과 같은 입장인 우리나라의 원화는 어차피 추가적으로 절상될 터.

정책당국이 어떻게 해주리라 기대하기에는 너무 늦으며 그 효과 또한 일시적이다. 엔/원 환율 리스크에 노출된 기업이라면 스스로 환 위험을 관리할 필요성은 더욱 증가하고 있다.


김중근 한맥레프코선물 수석 이코노미스트 elliottwave@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