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욕구 읽어내는 생산전략이 성공의 조건"

카를로스 곤(사진) 르노ㆍ닛산자동차 회장이 최근 우리나라를 찾았다. 곤 회장은 2000년 파산 위기에 놓였던 닛산 사장으로 취임, 1년 만에 회사를 흑자로 전환시키면서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스타 최고경영자(CEO)다. 그는 5월부터 닛산 뿐 아니라 전략적 제휴 관계인 르노자동차의 회장까지 겸직하고 있다.

그는 사실 가는 곳마다 뉴스를 만드는 세계적인 뉴스메이커다. 최근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세계에서 가장 존경 받는 최고경영자(CEO) 50인’ 명단에서 빌 게이츠 MS 회장, 잭 웰치 전 GE 회장에 이어 곤 회장을 3위에 올렸다.

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자동차 애널리스트의 상당수가 세계 최대 자동차 그룹인 GM의 구원 투수로 곤 회장을 꼽고 있을 정도다.

지금 GM의 상황이 2000년 곤 회장이 닛산을 맡았을 때와 매우 비슷하다는 게 그 이유다. 이에 앞서 곤 회장은 지난달 GM과 마찬가지로 경영 위기에 직면한 미국 포드사로부터는 회장직을 제의받은 적도 있다.

전세계가 이처럼 곤 회장에 열광하는 것은 그는 항상 분명하게 말하고 자신이 한 말은 반드시 실천하기 때문이다.

1954년 브라질에서 레바논 아버지와 프랑스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브라질에서 성장한 뒤 대학은 프랑스의 명문인 에콜 폴리테크니크(국립공과대학)와 에콜 드 민느(국립광산학교)를 나왔다.

78년 프랑스 타이어회사인 미쉐린 공장에 입사한 그는 2년 만인 80년 스물여섯의 나이로 공장장에 오른 뒤 89년에는 미쉐린 북미법인의 최연소 CEO가 됐다.

96년 적자에 빠진 르노자동차의 부사장으로 스카우트된 뒤 200억프랑(당시 약 24억달러)의 절감 계획을 수립, 수익성 없는 공장을 폐쇄하고 품질을 혁신해 이 목표를 달성했다.

곤은 이어 르노가 닛산과 전략적 제휴를 맺자 2000년 6월 닛산 사장으로 취임했고 1년 만에 5개 공장 폐쇄, 부품 업체수 50% 감축 등의 구조 조정을 성공리에 이끌면서 세계적인 경영자로 떠올랐다.

당시 곤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전 임원이 사임한다”며 배수진을 쳤고 ‘칼잡이’, ‘장의사’ 등의 별명을 얻었다.

이러한 그의 인기와 지명도를 반영하듯 지난달 24일 서울 그랜드인터컨티넌탈호텔에서 열린 곤 회장의 기자회견에는 내외신 기자 120여명이 운집했다.

특히 유럽에서 기자 10여명이 곤 회장을 직접 따라와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또 이날 오후 서초동 닛산자동차의 고급차 브랜드인 ‘인피니티’ 한미모터스 전시장에서 10여명의 한국기자단과 심층 인터뷰도 가졌다.

기자회견과 인터뷰를 통해 그는 무엇보다 고객과 현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박2일의 방한 일정도 르노삼성차의 부산 공장, 기흥연구소, 디자인센터, 강남대로 전시장, 인피니티의 영동대로 및 서초동 전시장 방문등 고객과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도록 구성됐다.

두 차례의 기자회견에서 그의 경영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들을 중심으로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SM3 내년부터 전세계 수출

-한국 방문 목적은.

“르노그룹의 전세계 네트워크 및 계열사를 방문하고 있다. 전세계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는 한국에 와 그 동안 르노삼성차가 이룩한 성과를 확인할 수 있어 뿌듯했다.

특히 SM3를 내년부터 닛산을 통해서 전세계 시장에 수출할 계획이라는 점을 밝히게 돼 기쁘다. 이는 사실 내 지시가 아니라 닛산과 르노삼성차 사이에 서로 수출 가능성을 타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성사됐다.

특히 닛산은 르노삼성차의 품질에 매우 만족하며 당초 2만대였던 계획을 3만대로 늘렸다. 앞으로 이 수치는 더 증가할 것이다.

현재 르노삼성차는 이와 같은 수출물량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생산 역량을 갖고 있다. 그리고 공장 직원들을 만나 본 결과 이러한 수출계획에 대해 많은 열의를 가지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GM 회장의 뒤를 이을 것이라는 소문이 있다.

카를로스 곤 (오른쪽)르노닛산 회장이 제롬 스톨 르노삼성차 사장과 SM5 신차 발표회장에서 포즈를 취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런 보도를 읽게 되면 기분은 좋다. 그러나 현실성이 없는 소문이다. 현재 르노 회장으로 취임한 지도 얼마되지 않아 아직 할 일이 많은 상황이다. 또 르노그룹에서의 기회도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기회와 도전에 충분히 부응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르노와 닛산의 실적을 높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르노와 닛산의 얼라이언스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고객이 선호하는 디젤차 개발에 주력

-미래 자동차에 대해 논란이 많다. 평소 디젤 차량의 우수성을 강조했었는데….

“개인적으로 특정 기술을 선호하거나 싫어 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방면의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어떤 기술이 가장 적합한 지는 업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저희가 시장에서 어떤 기술을 더 지지한다고 나서거나 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현재 시장에서는 연비를 높이는 데 많은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배출량에 대해서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디젤 쪽에서는 르노가 어느 정도 기술을 완성한 상태다. 유럽은 50%가 디젤 차량이다. 지금 저희 입장에서는 여전히 이 부분이 아직 잠재력이 매우 크다고 본다. 그 다음으로 하이브리드 기술이 있다. 우리도 이미 하이브리드 기술을 얼라이언스(닛산)에서 갖고 있다. 내년에 닛산 알티마에 하이브리드 엔진을 장착해 내놓을 것이다. 기업 문화상 특정 기술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하지는 않는다. 항상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 지에 초점을 맞춘다. 고객이 무엇을 원하게끔 하는 게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다. 일단 현재로서는 고객들이 디젤을 더 선호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디젤에 대한 노력을 더욱 경주하는 것이고 하이브리드에 대해서도 일부 관심이 있기에 여기에도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J.D. 파워의 조사를 보면 2011년 미국에서 약 50만대의 하이브리드 차량이 판매될 것이라고 한다. 상당히 큰 숫자이긴 하지만 미국 시장 전체의 3% 밖에 되지 않는 비율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고객이 디젤을 원하는 한 계속 디젤을 개발하고 고객이 하이브리드를 원하면 또 그쪽으로 개발할 것이다.”

-2006년 세계 자동차 시장 전망은.

“미국 시장은 안정세를 보일 것이다. 2005년 1,690만대가 판매될 것으로 보이고 2006년에도 성장이 크게 늘진 않을 것으로 본다. 중국은 아주 건실한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3년전까지만 해도 25~30%의 성장을 구가했었지만 이제는 7~9% 대의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본다. 미국 시장과 중국 시장 모두 경쟁이 매우 치열할 것이다. 자동차 업체 중 가장 매력적인 차종을 계속 내 놓는 회사들이 미국과 중국 시장에서 성공할 것이다. 2006년 전망을 내놓기가 어렵지만 일단 경쟁은 계속 치열할 것이다. 하지만 이게 좋은 일일 수도 있다. 모두에게 계속 자극이 될 것이고 고객들은 전세계적으로 많은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브라질 출신으로 일본과 프랑스에서 일하고 있는데 개인의 국적과 자동차 국적에 대한 생각을 말해달라.

“자동차에 국적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국적보단 고객을 위해 어떻게 더 적합한 제품을 만들어 내느냐가 더 중요하다. 르노냐, 닛산이냐, 르노삼성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출하는 시장의 소비자 입장에서 어느 차가 가장 적합 하느냐가 중요하다. 중국에선 중국 소비자의 입장에서, 한국에선 한국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야 한다. 국가별로 취향이 다르고 원하는 것이 다르다. 따라서 이러한 점들을 잘 파악해 이해하고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면 시장에서 오는 신호는 자명하다. 판매가 부진할 것이다. 판매실적이야말로 시장에서 제대로 활동하고 있는 지를 알려주는 가장 중요한 지표다. 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고객들이 원하는 차를 만들어 시장에 제공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살펴보면 디자인, 가격 이외에도 감성적인 요구(니즈)도 있다. 물론 감성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르노와 닛산 회장으로 항상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항상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잘 이해해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