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차단 등 내세워 은행간 외환 체결가 비공개

새해가 되면서 달러/원 환율이 부쩍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1달러당 1,000원선이 순식간에 무너진데다 급기야 980원선마저 하향 돌파되면서 IMF 외환위기 이후 최저 환율을 연일 경신하고 있으니 그럴 법도 하다.

수출기업들은 작년에 환율이 1,050원선까지 오를 때만 하더라도 안심하고 있다가 이제는 뒤늦게 환 위험 대책을 세운다 어쩐다 부산을 떨고 있다.

그런데 환율과 관련하여 또 하나의 문제가 기업들의 목을 죄어 올 것으로 예상된다. 바로 올 2월부터 실시될 달러/원 환율의 시세 2원화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2원화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멀쩡한 환율이 둘로 나뉘는 것도 아니며, 혹은 환율의 적용대상이 2원화되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은 전과 같다.

단지 현재까지는 누구나 볼 수 있던 은행간 외환거래의 체결가를 앞으로는 실시간으로 볼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환율시세가 은행과 비은행으로 2원화되는 셈.

한국은행은 외환시장운영협의회와의 논의를 거쳐, 대고객 시장 정보전달 체계의 선진화 방안으로 외국환 은행 간에 거래되는 환율을 공개하지 않는 ‘이중호가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이 방안에 의하면 올 2월부터는 외국환 은행 간에 거래되는 환율은 외환거래에 참여하고 있는 은행에게만 공개되며 기업이나 역외거래자, 선물회사, 개인 등에게는 공개되지 않는다.

명분은 외환시장 보호

한국은행은 외환시장에서 체결되는 체결가를 30분 후에 공개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으며, 또한 다음 날에는 매 시각 은행간 시장에서 거래된 환율의 체결가를 모두 공개할 방침이다.

아울러 체결가는 공개되지 않으나, 은행들이 고객과의 거래유도를 위하여 참고환율(혹은 준거환율, Reference rate)을 기업 등 거래 상대방에 실시간으로 제시하는 방안도 모색되고 있다.

이때, 참고환율은 문자 그대로 외환거래에 참고하는 환율이지 은행이 반드시 그 환율로 거래를 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은행간 외환 체결가를 비공개로 바꾸려고 하는 배경에 대해 한국은행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국내 거래관행을 맞추려는 일환이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세계 어느 나라건 우리나라처럼 은행 간에 체결되는 환율을 실시간으로 공개하는 곳은 없다. 오로지 우리나라만이 한국자금중개와 서울외국환중개라는 두 중개사가 제공하는 실시간 은행간 체결환율이 공개되고 있을 뿐이다.

이러다보니 이제까지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문제가 되었던 것이 환율의 체결가가 공개되면서 투기세력들이 이를 투기적 거래에 이용한다는 점이다.

포커로 말한다면 그야말로 상대방의 ‘패’가 속속들이 다 드러나 있는 상황이므로 투기세력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이 있을 수 없었다.

100달러짜리 지폐를 세고 있는 한 은행직원. 2월 부터 원/ 달러 환율 2원화가 실시된다. (로이터)

막강한 자금력을 가진 해외 외환투기세력으로서야 힘만 앞세운다면 수익을 내기에 용이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들은 역외 선물환(NDF)시장을 통하거나 혹은 은행간 외환시장 등을 직, 간접적으로 이용하여 우리나라의 달러/원 외환시장을 뒤흔드는 경향이 많았던 것이다.

결국 이번에 외환시세를 2원화하여 체결가를 비공개로 돌리려는 조치를 취하는 것은 한국은행으로서는 다른 뜻이 있다.

겉으로야 글로벌 스탠더드를 말하지만(그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해외 투기세력에 휘둘리는 우리나라의 외환시장을 보호하는 동시에, 이를 통해 외환시장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겠다는 뜻이 숨겨져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체결가가 은행에게만 공개되므로 한국은행의 입장에서는 컨트롤하기가 이전에 비해 훨씬 용이해질 것은 명백하다.

선물회사 차익거래 기회 사라져

그러나 마냥 글로벌 스탠더드 운운하면서 방관하기에는 문제가 많다. 무엇보다도 당장 2월부터 실시간 체결가를 알 수 없게 된 일반기업들과 선물사들의 반발이 극심하리라 우려된다.

대기업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으나, 은행과의 협상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의 경우는 환율의 체결가 비공개조치가 또 하나의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은행에 대해 우월적 지위를 가진 대기업의 경우엔 외환거래 물량이 많아서 대부분의 은행이 그들과 거래하기를 원한다.

따라서 대기업이라면 굳이 체결가가 공개되지 않더라도 한, 두 군데의 은행과 서로 환율을 ‘크로스 체크’해 보면 현재 시장의 환율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왜냐하면 체결가가 공개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은행이 자칫 대기업과의 거래에서 은행간 체결환율을 실제와 다르게 알렸다가(이를 ‘치팅’이라고 한다) 그게 탄로나기라도 한다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그 대기업은 치팅 행위를 한 은행과는 당분간 거래하지 않을 것이고, 그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은행은 고분고분 실제 환율을 사실 그대로 일러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은행과의 협상력에서 뒤처지는 중소규모의 기업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설령 은행이 체결가를 올바로 알려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이를 검증할 능력이 중소기업으로서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

한국은행의 방안에는 다음날에 전날의 체결가를 모두 공개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지만, 이처럼 사후에 확인하는 방식이라면 실제 외환거래에는 별로 의미가 없으리라 우려된다.

아울러 체결가가 비공개로 바뀌면 거래비용도 덩달아 늘어날 공산이 크다.

현재 은행간 거래의 체결가를 중심으로 하여 위, 아래로 10전 정도가 매수/매도 스프레드로 설정되고 있는데, 앞으로 체결가가 공개되지 않으면 매수/매도의 스프레드가 확대될 공산이 크다.

결국 스프레드가 확대된다면 그만큼 은행의 수수료는 늘어나고, 반대로 기업은 그만큼 불리할 수 밖에 없다.

스프레드가 확대된 연후에 지금처럼 가산 스프레드가 또 붙는 식으로 거래되므로 중소기업은 외환거래에서 이중삼중의 수수료를 부담할 수 밖에 없는 형편에 놓여 있다.

또한 선물회사의 경우에도 상당한 불편과 부담이 따르리라 예상된다. 현재 은행간 외환거래와는 별도로 금융선물거래소에서는 달러/원의 금융선물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현물시장인 은행간 외환시장과 선물시장은 동전의 앞, 뒷면처럼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인 것은 잘 알려진 사실. 현물시장과 선물시장은 이처럼 같이 움직이므로, 이 관계를 이용하여 차익거래 기회도 발생하였다.

그런데, 선물회사에게 앞으로는 현물시장인 은행간 외환시장의 체결가가 제공되지 않으므로, 이들은 한 쪽 시장만의 정보만으로 거래해야 하는 불리함에 노출되게 된다.

양쪽 시장의 정보를 알 수 없으니, 차익거래의 기회는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은행은 이전처럼 선물시장 정보는 여전히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으므로, 오히려 은행들이 현물시장과 선물시장을 오가며 차익거래의 기회를 노릴 수 있게 되었다. 영업기반을 잃게 된 선물회사들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실질적 글로벌 스텐더드 방안 필요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외환시세 2원화제도가 시행되려면 조금의 시간은 더 있어야 하고, 그 이전에 많은 논의를 거쳐 현재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온 것 중에서 많은 부분이 해소되리라 기대된다.

또한 실제 시행된 이후라도 드러나는 세부적인 문제점은 역시 서서히 해결되어 가리라 믿어진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이번의 조치가 자칫 은행의 배만 불리고 금융정보의 비대칭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아도 환율 하락에 신음하고 있는 수출기업에 또 하나의 부담이 되는 조치가 되어서는 안된다.

한국은행이 추구하고 있는 글로벌 스탠더드, 혹은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발전은 개방과 균형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지, 은폐와 차별화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기 때문이다.


김중근 한맥레프코 선물 수석 이코노미스트 ellottwave@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