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사내 심리상담실 운영… 맺힌 속 푸니 업무능률도 '쑥쑥'

서울 서초구에 자리잡은 LG전자 우면동 연구개발 캠퍼스. LG전자의 핵심 인재들이 모여있는 회사의 간판 싱크탱크다.

이 곳에서 근무하는 2,000여명의 연구원들은 글로벌 경쟁력의 근간이 되는 원천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밤낮을 잊고 연구에 매진한다. 통상적으로 하나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면 수개월 이상 매달리게 되는데, 이 기간에는 연구소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며칠씩 집에도 못 들어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다 보니 ‘글로벌 LG’의 선봉대라는 자부심 못지않게 과중한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 또한 적지 않다.

공동 작업을 하는 동료들과 업무 조율을 하면서 생길 수 있는 갈등뿐 아니라, 개발 일정에 맞춰 소기의 성과물을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감 등으로 인해 쌓인 심신의 피로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다.

연구원의 건강이 회사의 경쟁력이자 국가의 경쟁력인 현실에서 이것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모두에게 손실이다.

스트레스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연구원들에게 최근 마음의 위안을 얻고 활력을 재충전할 수 있는 안식처가 생겼다. 1월 말 연구소 2층에 둥지를 튼 심리상담실이 바로 그곳이다. LG전자에서는 지난해 4월 문 연 서울 가산동 통합단말연구소 심리상담실에 이어 두 번째다.

‘맘풀이’(Mind Free)라는 이름이 붙은 심리상담실은 말 그대로 마음을 풀어주는 장소다. 마음을 뜻하는 ‘Mind’와 자유를 의미하는 ‘Free’를 합친 데다 우리말 어감까지 살린 작명도 눈길을 끈다.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아이디어를 공모해서 최종 선택한 이름이라고 한다.

마음의 부담을 벗어던지는 곳

박경희 심리상담실장(교육학 상담 전공)은 “맘풀이는 마음의 부담을 벗어 던지는 곳이다. 사람들은 개인적인 고민거리를 털어놓는 것 자체에서 의외로 많은 위안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고백의 효과는 과학적으로도 검증된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페니 베이커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을 고백함으로써 마음의 상처를 씻어내고 건강을 증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설파한 바 있다.

박 실장은 “심리적 억압은 가둬둘수록 화병 등으로 악화하기 십상이지만 그것을 주변에 이야기하고 털어놓으면 그 같은 일이 되풀이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맘풀이는 연구원들이 언제나 편안하게 찾아 상담을 받고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세세한 것까지 배려를 했다. 내부 장식과 소품 하나하나에도 정성을 쏟은 것은 물론이다.

가령 개인상담실 내부 벽면에는 때묻지 않은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천진난만함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이 걸려 있는가 하면, 새 소리와 물 소리 등 마음의 평안을 느끼게 하는 자연의 소리도 CD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온다.

여기에 상담실 내부를 은은하게 감도는 허브 향기까지 더해지면 상담 받으러 온 연구원들은 마치 회사가 아닌 다른 곳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것은 상담 경력 10년이 넘은 박 실장의 따뜻하고 친절한 환대다. 이곳을 찾은 연구원들은 상담실 내부의 포근하고 아늑한 분위기에 경직된 마음을 절반 정도 열고, 박 실장의 자상한 상담에 나머지 절반을 열게 된다.

박 실장은 “사실 요즘 직장인들은 고민이 있더라도 믿고 얘기할 곳이 마땅치 않다. 그런 점에서 맘풀이는 찾는 사람들이 마음 편하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운영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개인별 상담 내용은 철저하게 비밀로 지켜준다”고 밝혔다.

맘풀이에서는 개인 상담, 이메일 상담, 집단 상담, 스트레스 관리, 심리 검사,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찾아온 연구원들은 그 중에서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프로그램을 선택하면 된다.

개인 상담은 직장 내 갈등에서 가족 문제에 이르기까지 혼자 해결하기 힘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폭넓게 조언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보통 예비 상담을 거쳐 주 1회 50분 가량의 상담 시간이 주어진다.

직접 방문하기 곤란한 연구원들을 위해 이메일로 상담을 해주는 시스템도 갖춰 놓았다.

6명 이상의 인원이 참여하는 집단 상담은 집단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고 이를 통해 조직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중점을 뒀다. 집단 상담의 주제는 대개 분노 조절, 자아 성장, 대인관계 등이 주류를 이룬다.

LG전자 우면동 연구개발 캠퍼스 심리상담실에서 박경희 실장이 직원을 상담하고 있다. / 임재범 기자
LG전자 우면동 연구개발 캠퍼스
심리상담실에서 박경희 실장이
직원을 상담하고 있다. / 임재범 기자

음악·향기치료 등 다양한 프로그램 운용

스트레스 관리 프로그램은 스트레스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진단하고 이를 해소해 나갈 수 있는 처방을 제공해 준다.

아로마 테라피(향기 치료), 웰빙음악 감상을 통한 음악 치료, 심신의 안정과 집중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허브차 음용 등의 치료법이 동원된다. 혼자서 쉽게 할 수 있는 반신욕, 복식호흡, 스트레칭 등도 조언한다.

13가지 항목에 걸쳐 제공되는 심리 검사 프로그램도 관심을 끈다. 연구원들은 인성, 적성, 대인관계 문제, 직업 가치관, 결혼 만족도 검사 등을 통해 자신을 총체적으로 되돌아보게 된다.

LG전자는 맘풀이와 같은 심리상담실을 향후 전체 사업장으로 확대 운영해 나갈 계획이다. 사내 의사소통 활성화와 조직 안정화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개소 9개월이 지난 가산동 통합단말연구소 심리상담실의 운영 실적도 꽤 괜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루 평균 3~4명의 연구원들이 찾는 이 곳은 지금까지 600여건의 상담 건수를 기록하고 있다. 심리 검사를 받은 경우만 해도 600건을 넘는다.

주로 찾는 사람들은 입사 2~3년차의 주임급 신세대 연구원들이며 상담 내용은 대인관계, 가정문제, 성격문제, 이성문제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임직원들의 정신건강을 챙기는 ‘상담 프로그램’은 아직 국내 기업에서는 드물지만 외국 선진 기업들 중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듀폰, 존슨 앤 존슨 같은 기업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들 기업이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회사 경쟁력 제고로 연결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LG전자의 판단 역시 마찬가지다.

박형기 R&D조직문화그룹 차장은 “사원들의 스트레스가 많으면 업무 몰입도가 떨어질 뿐 아니라 노사간 갈등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며 “사내 심리상담실은 이런 문제들을 사전에 예방해 자연스레 생산성을 높이고 조직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