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육성의 산실, 전국 80%가 대학 내 설치

1996년 부산수산대학교와 부산공업대학교가 통합돼 출범한 국립 부경대학교(총장 목연수)는 수산, 해양 등 지역 특성과 연계한 산업 인력을 양성하는 요람으로 평가 받는다.

최근에는 해양수산부가 핵심 국가연구개발 사업으로 추진 중인 ‘마린바이오21사업’의 하나인 해양바이오프로세스연구단에도 선정돼 성가를 드높이고 있다.

부경대는 지역 특성화 대학이라는 자랑거리만 있는 게 아니다. 부산 지역에서는 벤처기업의 산실로서도 명성이 자자하다.

지난해 12월 중소기업청이 주최한 ‘제1회 창업보육 한마당’ 행사에서는 벤처창업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부경대 창업보육센터의 강점은 ‘선택과 집중’ 전략에서 나온다. 유망 업체에 대한 집중 지원으로 선도 기업(Leading Company)을 육성하고, 다른 업체들은 이를 벤치마킹해 자연스레 동반 성장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소수 정예의 선도 기업들은 시설과 자금 등에서 우대를 받지만, 성공하게 되면 그만큼 반대급부를 돌려준다. 창업보육센터의 재정 자립을 위해 도입한 ‘성공불’ 제도를 통해 일정 금액을 기부하는 것이다.

이렇게 조성된 자금은 입주 업체들의 국내외 시장개척 활동과 경영애로 컨설팅 등을 위한 기반 구축에 재투자된다.

이처럼 부경대 창업보육(BIㆍBusiness Incubating)센터는 선택과 집중을 통한 선순환 구조를 바탕으로 많은 우수 기업들을 배출하고 있다.

우선 입주 기업 가운데는 치과 치료용 투시촬영장치를 개발한 ‘드림레이’가 산업자원부에 의해 일류상품 생산기업으로 선정되는 등 주목을 받고 있다.

또 졸업 기업 중에서는 LCD 등 디스플레이 제작 공정에 필수적인 정전기 제거장치를 만들어내는 ‘선재하이테크’가 벤처기업대상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는 등 돋보이는 활약을 하고 있다.

이 대학 산학협력처 강진동 팀장은 “우리 대학은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한 모든 기업에 각각의 전담 교수를 둬 책임 상담을 하게 하는 등 질적인 창업 지원에 주력하고 있다”며 “그 덕분에 적지 않은 업체가 시장에서 인정을 받는 기업으로 성장하는 등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정부의 벤처 육성 정책에 따라 전국에서 운영 중인 창업보육센터는 모두 274개소, 입주 기업 수는 4,284개에 달한다. 이 중 대학교에 자리잡은 기업이 줄잡아 80%를 넘고 있다.

대표적인 과학기술 인재 양성 기관인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경우 입주 기업이 무려 270개나 되고 벤처 인증을 받은 기업만도 100개를 훌쩍 넘는다.

뿐만 아니라 창업보육센터가 설치된 대부분 대학교들은 십여 개에서 수십여 개에 이르는 입주 기업을 두고 있다. 전국 각지의 수많은 대학교가 인재 배출을 넘어 ‘창업의 최전선’, ‘벤처의 요람’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창업보육 사업은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본격적으로 활성화하기 시작했다.

부경대학교 창업보육센터 전경

그 즈음 우리 경제는 전통 산업 중심에서 지식기반 산업으로 구조 전환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또한 심각한 실업 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고용 창출 문제가 중대 현안으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정부가 신기술 기반 기업의 창업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창업보육센터 설립을 지원했다.

창업 초기투자비용 절감

창업보육센터가 입주 기업에 제공하는 서비스는 사무실과 공장 등 사업 공간 제공에서부터 경영, 마케팅, 기술, 재무, 네트워크 구축 지원 등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다.

물론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서비스는 갓 창업한 기업의 초기 투자 비용을 크게 절감시켜 주는 사무ㆍ작업 공간 제공이다.

한국창업보육협회 임승학 대리는 “창업자들에게는 보육센터에 입주하는 것 자체가 큰 도움이 된다.

사무실 임대료로 비용 지출을 하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센터에서 판로 개척, 홍보, 품질 인증 등 까다로운 업무를 지원해줘 연구개발에만 전념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창업보육센터의 장점을 설명했다.

실제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한 기업들도 꽤 괜찮은 반응을 나타낸다.

부경대학교 창업보육센터 입주 기업의 제품 생산 공장

한 바이오 벤처기업 관계자는 “실험 장비를 제대로 갖추는 데만 수십 억원이 드는 생명공학 분야는 기술을 가졌더라도 아무나 창업할 수 없다”며 “그런 점에서 각종 실험 인프라가 갖춰져 있는 데다 여러 분야 교수들에게 쉽게 자문을 구할 수 있는 대학교는 벤처 창업의 최적지라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모든 창업보육센터가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전담 매니저의 전문성이 부족해 입주 기업에 대한 면밀한 실태 파악을 못하거나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기술, 마케팅 등의 지원이 부족한 경우도 적지 않은 현실이다.

이런 까닭에 창업보육 전담 부처인 중소기업청은 해마다 전국 창업보육센터에 대한 평가를 실시해 운영 실적에 따른 차등 지원을 하고 있다.

일정 기준에 미달하는 센터는 과감히 퇴출시키기도 한다. 가지가 튼튼해야 열매도 튼실하기 때문이다.

1999년 이후 전국의 창업보육센터를 거쳐 나간 졸업 기업은 지금까지 4,420개. 현재 입주해 있는 숫자를 조금 웃도는 기업들이 이미 뿌듯한 졸업장을 받아 들고 무한경쟁의 시장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한국창업보육협회 사무국에 따르면 이 가운데 코스닥에 등록한 기업만도 14개다. 사업자 등록증을 내고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고 평가되는 기업도 전체의 70% 안팎에 달한다.

물론 실패한 기업들도 적지 않지만 그들의 기술과 아이디어는 국가 경제의 저변을 넓히고 뿌리를 튼튼히 하는 데 일정한 기여를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창업보육협회 이용삼 사무국장은 “대학 벤처들이 얼마나 ‘성공’했느냐를 따지는 것보다 얼마나 ‘생존’하고 있느냐를 더 주목해야 한다.

이들 중에 미래에 ‘스타 컴퍼니’로 성장할 기업들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한국 경제가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술 창업’의 열기를 더욱 북돋워야 한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창업보육센터가 2,000개에 육박한다. 역사도 40년이 넘는다. 그만큼 기술을 존중하는 풍토가 정착돼 있다. 그런 가운데 한 평범한 대학생이 창업한 회사는 불과 10년 남짓 만에 세계 최대의 컴퓨터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성장했다.

기술 창업이 끊임없이 이어진다면 한국의 마이크로소프트가 탄생하지 못하리란 법은 없지 않을까.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