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부, 자본시장 통합법안 마련…M&A 등 격전 불가피

우리나라는 경제규모에 걸맞지 않게 금융기관의 규모가 다른 선진국과 비교하면 작은 편이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규모가 전 세계 국가 중 13위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500대 금융기업에는 국내 금융사 중에서 단 한 개만이 들어가 있으며, 그것도 중하위권인 251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국내 금융기관의 영세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은행업의 경우는 그동안 은행 간 통폐합을 통하여 약간이나마 규모가 커지기도 하였으나 자본시장을 대표하는 증권업의 경우는 선진국의 금융기관과는 도무지 규모에서 비교대상이 되지 못할 지경이다.

예컨대 세계적인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나 골드만삭스 등 5대 증권사의 2000-2004년 평균자산이 530조원에 이르고 이들 기업의 주식시장에서의 시가총액은 65조원에 달하는데 비하여 국내 5대 증권사의 총자산은 4조원에, 시가총액은 1조5천억원에 불과하다.

결국 미국 증권사 대비 국내 증권사의 총자산은 고작 0.8% 수준이고, 시가총액은 2.3% 수준에 그치고 있다. 물론 금융기관의 덩치가 크다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반론도 가능하다.

하지만 IMF 금융위기의 단초가 되었던 것도 당시 정부가 정치적 목적으로 은행이나 증권사의 인·허가를 남발하면서 부실금융기관을 잔뜩 양산하였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타당성을 얻고 있는 상황인데다 세계적으로도 금융기관은 전문성을 따져 소형화의 길을 걷기보다는 오히려 인수합병(M&A)를 통하여 덩치를 늘려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상황이고 보면 “대형 금융기관이라고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라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아울러 글로벌 시대에 걸맞게 세계적인 금융기관들이 우리 안방에까지 들어와 경쟁하는 마당에 국내 금융기관들도 이제는 자국 금융기관 보호주의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야 하며, 정부도 과거 같은 규제 일변도의 금융정책에서 한 단계 발전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나라에서도 금융기관의 대형화에 대한 논의는 꾸준히 이어져 왔었다.

“영국 금융시장 빅뱅의 10배규모 될 것”

결국 작년부터 관련 법안을 준비해왔던 정부는 마침내 금융기관 및 금융시장의 향후 나아갈 방향에 대하여 지침을 내놓았다.

이 방안에 의하면 우리나라 금융 산업의 구조는 일대 변혁을 맞이하게 될 전망이다. 재정경제부는 19일 `금융투자업과 자본시장에 관한 법률'(가칭) 제정방안을 발표하였다.

새로운 법률안에 따르면 증권, 선물, 자산운용, 투자자문, 신탁업 등 자본시장과 관련된 모든 금융업을 운용할 수 있는 금융투자회사의 설립을 허용하며 이 금융회사는 증권, 파생상품, 부동산, 실물 등 모든 자산에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즉 이제까지는 증권, 선물, 자산운용 등 업무영역에 금융기관 간의 구분이 있었으나, 새로운 법에 의한다면 그러한 칸막이가 없어지고 모든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거대 규모의 금융기관이 탄생할 수 있을 전망이다.

재경부는 법안과 관련하여 올해 안에 정부안을 마련하여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며, 국회에서 법률안이 통과될 경우 적어도 1년 동안의 유예기간을 거쳐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이르면 2008년부터 우리 금융계에 빅뱅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무책임을 맡은 재경부의 김석동 차관보는 "이 법이 가져올 변화는 1986년 영국 금융시장 빅뱅의 10배에 해당한다"고까지 평가하고 있다. 정말 어마어마한 금융기관 재편의 신호탄이 올라간 셈이다.

입맛에 따라 금융상품 고를 수 있어

국회에서의 논의과정을 거쳐 세부적인 내용이 다소 변할 수는 있으나 정부가 마련한 법안의 커다란 줄기는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에 따라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클 것으로 보인다. 향후 예상되는 금융시장의 변화는 대략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로 새로운 법에 의하면 업종 간 겸영을 허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존의 증권사, 자산운용사, 선물사 등의 구분은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덩치를 키우고 생존을 위해 증권사. 자산운용사, 선물사 간에 합종연횡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으며, 또한 투자은행(Investment Bank)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금융투자회사`의 설립이 허용되면서 대형 투자회사의 등장도 예상된다.

금융기관 간의 인수합병을 통하여 규모가 큰 금융기관이 설립된다면 의당 합병되기 이전의 각 금융기관에 종사하고 있는 직원들의 진로가 숙제로 떠오른다.

새로운 대형 금융기관이 이들 직원들을 죄다 흡수할 수 있다면 다행이겠으나 규모의 경제를 얻으려면 결국 구조조정, 인력감축은 필연적인 결과일 수 밖에 없다.

둘째로, 금융기관간의 인수합병 과정에서 벗어난 중소형 증권사, 선물사 혹은 자산운용사라면 더욱 큰 문제이다.

이제는 나름대로 파생상품을 비롯한 자신들만의 전문성을 더욱 살리는 특화전략을 꾀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이 될 전망이다.

아무리 큰 시장이라고 할지라도 틈새시장(niche market)은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그만큼 이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도 더욱 거세어질 것은 당연한 일. 금융기관에는 향후 1-2년간 그야말로 빅뱅이 몰아닥칠 전망이다.

셋째로, 구체적으로 따져 증권사의 경우 이제까지는 수익구조가 주식이나 채권거래에 따르는 수수료 수입에 크게 의존하는 상황이었으나 향후 자산관리, 투자은행업 등으로 다양화될 전망이다.

특히 자산관리, 투자은행업의 비중이 늘어날수록 지금처럼 수수료에만 의존하는 천수답 수익구조는 지양할 수 있게 된다. 골드만삭스 같은 세계적인 투자은행들이 경쟁력을 가지고, 막대한 수익을 거두는 것은 거래중개(brokerage)를 통한 수수료 수입이 아니라 기업공개, 인수합병, 자본시장 등에서의 투자은행 활동에서이다. 우리나라의 증권회사들도 점차 그런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기대된다.

넷째로, 새로운 법에 의하면 금융기관이 다룰 수 있는 상품의 제한이 사실상 철폐되면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신종 금융상품이 쏟아져 나올 전망이다.

즉 앞으로는 명칭과 형태를 불문하고 원본의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금융 상품이 '금융투자상품'으로 정의되어, 금융투자회사가 다룰 수 있게 되므로 상품 조합이 거의 무한대로 넓어지게 된다.

예컨대 증권분야에서는 역변동금리증권, 신용연계증권, 펀드연계증권, 재해연계증권 등을 상정해 볼 수 있으며, 또한 투자대상을 어느 한 부분으로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식, 채권, 부동산, 실물, 파생상품, 통화 등 때에 따라 수시로 자유롭게 바꾸는 펀드도 가능하다.

그리고 특정한 지역의 날씨, 범죄발생률, 재해, 재난 등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상품도 충분히 개발 가능한 금융상품이 되리라 전망된다.

결국 앞으로 투자자들로서는 훨씬 더 다양하고 복잡해진 금융 상품 중에서 입맛에 맞는 상품을 고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외국계 금융기관은 벌써부터 펀드 수익률을 그대로 좇아가는 수익증권인 '펀드연계증권'의 판매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감원바람 등 후유증 최소화해야

그 외에도 증권회사에서도 은행처럼 소액의 경우는 결제가 가능해질 예정이며, 투자자들에 대한 보호도 선진국 수준으로 더욱 강화될 예정이다.

이러한 모든 움직임은 우리나라의 경제 분야 중에서 실물경제 부문에 비하여 비교적 낙후되었다고 평가되는 금융시장에 일대 혁명을 가져다주는 조치이니만큼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변화가 큰 만큼 이에 따른 충격도 클 수 밖에 없다. 예컨대 금융기관의 생존을 위한 경쟁이 자칫 과당경쟁으로 번질 수 있으며, 혹은 각 기관들의 인수합병 과정에서 대량의 실업사태도 나타날 수 있는 일이다.

정부로서는 부작용을 최소한으로 막으면서 금융시장의 빅뱅을 이루어야 할 터. 법안의 마련과 이에 따르는 금융시장 개편이 주목된다. 여하간 이제 금융시장 빅뱅의 신호탄은 쏘아 올려졌다.


김중근 한맥레프코 선물 수석 이코노미스트 elliottwave@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