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V · 밴의 실용성에 세단의 승차감까지 장점 고루 갖춘 신개념 차

올 1월 미국에서 열린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현대차와 기아차는 나란히 콘셉트카로 CUV(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를 출품했다.

현대차는 스포티 쿠페와 SUV(스포츠유틸리티차)가 결합된 HCD-9를, 기아차는 SUV의 스타일과 MPV(다목적 차량)의 실용성, 세단의 승차감을 모두 갖춘 'Soul'을 각각 내놓았다.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는 현대 · 기아차 외에도 크라이슬러가 콘셉트카 '닷지 챌린저', GM이 뷰익 엔클라베, 포드는 에지 등의 CUV를 경쟁적으로 선보였다.

이처럼 요즘 CUV가 뜨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004년 말 발표한 '2005년 10대 트렌드'의 하나로 지목했던 대로 CUV가 본격적으로 세계 자동차시장의 주류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CUV는 아직까지 용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정립돼 있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장르가 다른 차들의 특성을 섞어놓은 차를 말한다. 주로 SUV의 스타일과 높은 시야에 세단의 승차감을 접목하거나 여기에 미니밴의 넓은 실내공간 및 시트배열을 따오는 경우가 많다.

특히 SUV와 미니밴, 픽업 트럭 등 비(非) 세단을 주 차종으로 하는 회사들이 CUV의 출시에 더 적극적이다.

고유가의 영향으로 점차 대형차에 대한 수요가 줄고 소비자들이 점차 부드러운 이미지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출시되고 있는 CUV는 SUV나 미니밴을 기본으로 세단의 승차감이 강조된 경우가 많다.

여러 차종의 장점 결합한 CUV가 대세

CUV가 각광 받는 것은 기본적으로 소비자들의 욕구가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아차 관계자는 "앞으로는 미니밴이나 SUV 등 하나의 특징만을 가진 차는 소비자의 시선을 잡기 힘들다"면서 "갈수록 여러 차종의 장점을 결합한 CUV가 대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최초의 CUV는 크라이슬러의 PT크루저로 알려져 있다. 2000년 2월 미국에서 출시된 PT크루저는 독특한 외관과 함께 소형 세단에 미니밴의 공간활용 능력이 접목됐다는 장점을 내세워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최근에는 100만대 생산을 돌파하며 스테디셀러로 자리를 굳혔다.

이 차는 국내에도 2000년 7월 출시됐는데 가격도 당시 수입차로는 가장 저렴한 3천만원 안팎인 데다 취향에 따라 25여 가지의 다양한 실내 구조로 변경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크라이슬러는 PT크루저의 인기를 바탕으로 2003년 미국에서 퍼시피카를 내놓으며 CUV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 차는 SUV보다 차체가 낮아 외관은 날렵한 느낌의 고급 세단에 가깝지만 접이식 좌석을 적용, 화물 적재공간을 대폭 넓혔다.

이후 닷지 매그넘(2004년), 시보레 HHR(2005년) 등의 CUV가 잇달아 미국 소비자들의 좋은 반응을 받으면서 작년에 40만대 규모의 시장을 형성, 전통적인 미니밴 시장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다.

아직 국내에서는 CUV를 표방한 차가 출시되지 않았다. 다만 쌍용자동차가 작년에 내놓은 카이런이 CUV의 개념을 가미한 차로 평가된다.

카이런은 SUV면서도 대형세단 뉴체어맨의 엔진 기술을 접목, 정숙성과 승차감을 갖췄다며 회사측은 '세단형 SUV'로 홍보했다. 이 차는 외관에서도 스포츠 쿠페의 날렵한 모양새를 갖췄다.

본격적인 CUV는 4월에 기아차가 내놓는다.

기아차가 카렌스 후속으로 개발한 UN(프로젝트명)은 소형 미니밴인 카렌스와 달리 SUV의 장점인 넓은 시야와 오프로드 주행 성능을 확보하기 위해 차고를 높이는 한편 세단 못지않은 승차감을 갖추기 위해 차폭도 넓혔다.

또 미니밴처럼 넓은 실내 공간을 확보해 패밀리카로서의 기능도 갖췄다는 것이 기아차의 설명이다. 세단과 SUV, 미니밴 등 웬만한 차종의 장점은 모두 흡수한 셈이다.

나머지 국산차 업체들도 CUV 시장이 점차 확대될 것으로 보고 신차 개발에 여념이 없다.

현대차는 2008년께 럭셔리급 CUV인 PO(프로젝트명)를 내놓을 계획이며, 쌍용차도 지난 1월 발표한 중장기 경영전략에서 실용성과 파워를 갖춘 새로운 개념의 CUV를 로디우스보다 한 단계 낮은 차급으로 개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GM대우도 작년 서울모터쇼에서 소형 SUV의 차체와 스포츠쿠페의 디자인을 결합한 컨셉트카 T2X를 전시하며 CUV 개발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내비쳤다.

국내 틈새 시장 겨냥한 수입차, 출시 적극적

수입차업체들은 국내 틈새시장을 노린다는 차원에서 CUV 출시에 더 적극적이다. 앞서 언급한 크라이슬러 PT크루저에 이어 작년에 퍼시피카도 출시돼 좋은 반응을 얻었다.

신차도 쏟아지고 있다. 포드코리아가 최근 출시한 프리스타일 리미티드는 3.0ℓ V6 엔진과 첨단 무단 변속기를 장착해 세단의 정숙성을 갖추면서도 2,3열 좌석을 계단형으로 배치해 SUV의 넓은 시야를 확보했다.

아울러 접이식 조수석을 적용해 긴 수화물의 적재가 가능하고 7인승 시트 변형을 통해 10여 가지 형태로 다양한 공간 연출이 가능하다. 프리스타일은 미국에서 작년에만 7만6천여대가 팔린 인기모델로 포드의 '기름 많이 먹는 대형차' 이미지를 바꾸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다.

볼보코리아가 연초에 내놓은 크로스컨트리 XC70는 일반 세단에 넓은 화물 적재 공간과 오프로드 주행 기능이 가미된 CUV이며 내달에는 왜건형 CUV V50도 선보일 예정이다. GM코리아도 최근 스포츠세단 같은 주행성능에 널찍한 적재공간을 갖춘 사브 '9-3 스포츠콤비'를 내놓고 CUV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국내에서 CUV에 대한 반응은 시큰둥하다. 쌍용차 카이런은 유럽에서는 월 3천대 가까이 팔리면서 주목받고 있지만 내수 판매는 당초 목표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월 1천500대 안팎에 불과하다.

쌍용차 관계자는 "유럽에 비해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SUV와 세단의 결합이 소비자에게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것같다"고 말했다. 수입 CUV는 그나마 대체로 성공적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평가지만 그래도 주류로 나서기는 여전히 역부족이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한국시장은 워낙 세단과 SUV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 CUV의 판매가 부진하지만 갈수록 소비자의 취향이 다양해지고 CUV 차종도 늘고 있어 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정진 연합뉴스 기자 transi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