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국 정정불안·이란 핵긴장·수요급증 등 겹쳐, 브레이크 없이 상승행진… 한국경제에도 큰 부담

국제유가의 고공비행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주 월요일, 부활절 연휴를 마치고 개장된 뉴욕상품선물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 중질유(WTI) 5월 인도물의 가격은 작년 8월 이후 다시금 배럴당 70달러를 돌파하였다.

그런데 서부텍사스 중질유는 그 날, 70.40달러로 마감되어, 종가 기준으로 원유의 선물거래가 시작된 1983년 이후 사상 최고가 기록했다. 기록이라는 것은 깨지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지만, 원유 가격의 경우, 상승세가 이어진다는 것은 국제적으로도, 그리고 우리나라 경제로서도 전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국제 원유가격은 2005년 12월에는 배럴당 58달러를 밑도는 수준을 기록하였으나 올해 들어 꾸준하게 상승세를 이어갔고, 마침내 최고 기록을 경신하게 되었다. 채 4개월도 되지 않은 짧은 기간 동안 원유가격은 20% 이상 급등한 셈.

작년 8월에 국제 유가가 배럴당 70달러를 일시적으로 상회한 것은 미국의 정유시설이 몰려있는 멕시코만 지역을 강타한 허리케인의 영향 때문이었다. 정유시설이 태풍의 피해로 인하여 가동을 정지하였고, 이로 인하여 일시적인 수급 불균형을 가져와 유가의 단기적인 급등세를 초래하였던 터.

그러나 이번에 유가가 재차 배럴당 70달러를 넘어선 것은 주요 산유국의 정정(政情)불안이 영향을 미쳤다.

나이지리아의 정치적인 불안 상태로 말미암아 반정부 세력이 석유 생산시설을 점거하고 있는 통에 전 세계적으로 원유의 공급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데다 또한 핵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이란의 지정학적 긴장상태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유가 급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이지리아에서 반군 문제로 인한 원유 공급차질은 현재까지 2개월 가량 지속되고 있어 원유 수급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나이지리아 사태로 인한 원유 공급 차질 규모는 하루 56만 배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빠듯한 국제 원유수급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격이다. 거기에다 이란 핵문제가 심리적으로 석유수급에 대한 불안감을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이란은 저농축 우라늄 생산에 성공했다고 발표하면서 서방과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등 국제유가 전망에 가장 큰 변수가 되고 있다. 그 결과, 지난달28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이란에 대하여 ‘향후 30일 안에 모든 핵 활동을 중단토록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면서 제재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따라서 만일 유엔이 정한 시한인 5월 초까지 이란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자칫 이란 핵 문제가 더욱 복잡하게 얽힐 위험도 있다.

최악의 경우, 이 문제가 이란에 대한 제재로 결론이 나서 세계 원유공급의 8% 가량을 차지하는 이란의 원유 수출이 중단되는 사태로 전개된다면, 국제 원유시장이 큰 혼란에 빠지고 유가가 재차 급등할 것은 불보듯 뻔하다.

한때 원유 상품시장에서는 미국의 이란 공격설이 나돌면서 유가가 급등하기도 하는 등 원유시장은 상당히 심리적으로도 불안한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런데 이란이며 나이지리아 등의 사태에 대비하여 유가 불안정을 해소할 만한 뾰쪽한 대책이 없다는 사실이 큰 문제이다.

사실 작년 미국의 멕시코만을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영향으로 인하여 아직까지 미국의 일부 석유 생산시설이 가동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석유제품의 공급차질 물량은 하루 30만 배럴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다 석유 생산국인 OPEC도 현 수준에서 더 이상의 추가 원유 생산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카타르의 압둘라 알-아티야 석유장관은 "OPEC가 이미 최대한 생산하고 있다"면서 따라서 "우리로서는 더 어쩔 도리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으며 또 다른 OPEC 고위 관계자도 "현재의 산유량을 조정할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결국 공급이 늘어날 가능성이 없다면 수요라도 줄어야 하는데, 이제 북반구에서는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있어 석유제품 수요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니 전망은 암담하기만 하다. 거기에다 강력한 경제 성장세를 바탕으로 세계 원자재 시장의 “블랙홀”로 변모한 중국의 석유 소비량 증가도 감안하여야 한다.

중국의 경제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석유소비도 감소한다면 국제 유가가 안정될 수도 있겠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중국경제는 1.4분기에 9.7% 성장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10.2%의 높은 성장률을 나타내었고, 이런 중국 경제의 견조한 성장세는 올해 내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 국제 유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18일 뉴욕상품선물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 중질유(WTI) 가격이 70.40달러로 마감됐다.
/ 연합뉴스

결국 유가에는 상승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따라서 수요 면에서 더 줄어들 것도 없는 상태에서, 공급 면에서 자칫 정정불안이나 혹은 다른 요인 어느 하나라도 삐끗한다면 유가가 크게 치솟을 위험성은 상존하게 된다.

아울러 올 여름에 다시 허리케인 시즌이 찾아왔을 때, 작년 8월의 카트리나와 같은 대규모의 허리케인이 미국의 노후한 석유 생산시설을 강타한다면 그 파장은 상상만 하여도 이만저만한 일이 아닐 것이다.

최근 유가가 급등하고 있는 배경에는 투기세력의 준동도 이유의 하나라고 보는 전문가들도 많다. 국제적인 투기세력이 정정불안 등을 틈타 원유의 투기적인 매수에 나섰고, 이로 말미암아 유가가 급등하게 되었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투기세력이 준동하도록 환경을 만든 것은 결국 이란과 나이지리아, 혹은 미국의 석유재고 감소 같은 수급 불안이 근본 원인이다.

당초 올해 유가가 70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한 전문가들은 많지 않으나 최근 이들은 유가가 75달러까지 상승할 가능성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또한 일부 전문가들 중에는 이란의 이슬람 혁명 직후이며 이란-이라크 전쟁이 터졌던 지난 80년대의 유가가 지금의 달러 가치로 환산해 배럴당 77달러 내외라는 사실을 지적하며, 그러기에 현재 나이지리아, 이란 등의 정정불안을 고려할 때, 자칫 유가가 90달러대 수준을 돌파할 위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과격한” 일부 전문가들은 성급하게 배럴당 100달러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하간 지금의 유가 상승세가 하루 이틀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것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국제유가가 오를수록 우리나라 경제에 미치는 부담은 커진다. 우리나라의 원유 수입이 연간 8억 배럴 정도인 점을 감안한다면 단순 계산으로도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오를 때마다 연간 80억 달러의 무역수지가 감소하는 셈이다.

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KDI의 연구에 의하면 한국 경제가 하반기 중에 정점을 찍고 내려올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국제유가가 경기 하강을 부채질할 가능성도 있다.

아울러 유가가 오른다면 주식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경기가 하강국면으로 밀린다면 당연히 주가가 하락할 것이거니와 또한 유가 급등으로 인해 인플레 압력으로 이어진다면 결국 원자재 가격 상승, 금리 상승, 소비 둔화, 기업실적 악화로 이어질 우려도 크기 때문이다.

또한 달러/원 환율은 연일 하락(원화 강세)하고 있으며 미국의 금리를 비롯하여 국내 금리도 상승압력을 받는 등 대내외적인 경제 환경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국제 원유가격인데, 원유를 100% 해외에서 수입하는 우리나라로서는 마치 비가 오기만 기다리며 하늘만 쳐다보는 천수답처럼, 유가가 안정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답답한 처지이다.

결국엔 5월 초 이란의 핵 무기 개발을 둘러싼 지정학적 불안정 상황이 해소되기만을 한가닥 기대할 수 밖에.


김중근 한맥레프코선물 수석 이코노미스트 elliottwave@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