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사업자 소극적 마케팅… 외국계 회사가 국내 시장 급속 잠식

▲ 서울 강남에 있는 벤처기업 사무실에서 한 여직원이 화상통화가 가능한 인터넷전화를 즐기고 있다.
인터넷전화(VoIP, Voice over Internet Protocol) 이용자 수가 전 세계적으로 1억 명을 넘어섰다. 그것도 스카이프라는 단일 업체의 가입자 숫자다. 이 업체 가입자 숫자만 놓고 봐도 전 세계 인터넷 이용자 8,600만 명 가운데 12%가 인터넷 전화를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인터넷전화란 기존 전화선을 이용한 유선전화나 기지국 및 중계기를 활용한 휴대폰과 달리 인터넷망을 이용해 통화를 할 수 있는 전화다. 인터넷망이 기존 유선 전화의 전화선 역할을 하며 컴퓨터(PC)나 전용 전화기가 일반 전화기를 대신한다. 당연히 PC나 전용 전화기를 통해 일반 전화처럼 걸고 받을 수 있다.

소프트폰과 하드폰 두 종류

인터넷전화는 크게 두 종류다. 과거 새롬기술이 선보였던 다이얼패드처럼 PC에 소프트웨어를 설치해 헤드셋으로 말을 주고 받는 ‘소프트폰’과 일반 전화기처럼 생긴 전용 전화기에 인터넷을 연결해 사용하는 ‘하드폰’이 있다.

소프트폰은 세계 최대 인터넷전화 업체인 스카이프와 국내의 NHN, 아이엠텔 등이 있다. 인터넷에서 무료로 전송받은 소프트웨어를 PC에 설치한 뒤 회원 가입을 하면 바로 이용할 수 있다.

마이크와 헤드폰이 연결된 헤드셋만 있으면 별도의 전용 전화기를 구입할 필요가 없어서 설치비용이 거의 들지 않고 사용이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PC가 전화기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항상 PC를 켜놓아야 하는 불편함이 따른다. 그 만큼 일반 가정보다는 늘 PC를 켜두는 사무실 등에 적합하다.

삼성네트웍스, KT, 데이콤, 애니유저넷, SK텔링크 등이 제공하는 하드폰은 전용 전화기를 반드시 구입해야 한다. 전용 전화기는 소프트폰의 PC역할을 대신하는 장치로, 음성을 디지털 신호로 바꿔 초고속 인터넷으로 전송하거나 반대로 디지털 신호를 음성으로 바꿔 주는 등 서버 역할을 겸한다. 가격은 10만~30만원대.

전용 전화기 가격이 부담스럽지만 PC를 늘 켜놓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가정에서 사용하기에 편리하다.

통화 품질은 일반 유선 전화와 비교했을 때 거의 차이가 없다. 특히 전용 전화기를 이용한 하드폰은 일반 유선 전화처럼 상대방 음성이 또렷하게 들린다. 과거 다이얼패드 시절처럼 잡음이 들리거나 중간에 끊기는 문제는 전혀 없다.

저렴한 요금이 장점

인터넷전화의 가장 큰 장점은 단연 저렴한 요금이다.

특히 인터넷전화는 같은 서비스 업체 가입자들끼리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무료로 통화할 수 있다. 소프트폰은 전용 소프트웨어를 통해, 하드폰은 ‘070’으로 시작하는 전용 식별번호를 확인하기 때문에 같은 가입자들끼리는 요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반 유선 전화나 휴대폰 이용자에게 전화를 걸 때에는 요금이 부과된다. 유선 전화로 걸 때에는 스카이프를 제외하고 대부분 3분당 45원이 부과된다.

스카이프는 1분에 20원이 부과된다. 시내전화의 경우 KT의 요금이 3분에 39원인 점을 감안하면 비싼 편이지만 시내, 시외를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시외로 전화를 걸 때에는 오히려 가격 경쟁력이 있다.

국제전화는 단연 인터넷 요금이 훨씬 싸다. KT로 미국에 전화를 걸면 통화요금이 분당 252원이다. 인터넷전화는 스카이프가 분당 21.8원으로 가장 저렴하며 NHN의 네이버폰, 애니유저넷 등은 분당 84~85.5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유학생이나 국내에 친지들과 통화할 일이 많은 해외 동포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이 같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인터넷전화는 전세계에 급속도로 퍼졌다. 2003년에 설립된 스카이프는 현재 한국을 비롯해 220개국에서 27개 언어로 서비스 중이다. 국내에도 올해 초 들어와 2개월 만에 4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했다.

정부 정책도 '활성화' 외면

그렇지만 국내 업체들은 사정이 다르다. 업체들의 기대만큼 이용자가 쉽게 늘지 않기 때문이다. 정보통신부는 지난해 인터넷전화를 정보기술(IT) 8대 서비스 가운데 하나로 선정해 지난해 말까지 10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현재 정통부는 가입자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네트웍스가 3만 명, 애니유저넷과 KT가 각각 2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하는 등 가정, 기업 고객 모두 합쳐 국내에 약 20만 명이 이용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관련 업계는 국내 인터넷전화 서비스가 활성화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를 홍보 부족때문으로 보고 있다. 일단 이용자들이 사업자는커녕 인터넷전화가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으며 식별번호 또한 오해를 하고 있다.

현재 인터넷전화는 일반 전화와 달리 070으로 시작하는 번호체계를 갖고 있다. 070은 휴대폰 번호를 나타내는 010처럼 인터넷전화를 의미하는 식별번호다.

그러나 상당수 이용자들이 060과 혼동해 스팸전화로 오해하고 휴대폰이나 발신번호표시(CID) 전화기에 070 번호가 나타나면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 과거 다이얼패드 시절에 인터넷전화를 사용해 본 이용자들은 통화품질이 좋지 않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

따라서 업체들은 070번호와 인터넷전화의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는 업계 공동의 홍보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KT나 하나로텔레콤, 데이콤 등 기존 유선전화를 병행하는 사업자들은 유선전화 시장을 잠식한다는 이유로 마케팅에 소극적이다.

▲ 지난 2월 국내 시장에 진출한 세계 최대 인터넷전화사업자 스카이프가 자사 서비스를 시연하고 있다.

정부 정책 또한 인터넷전화에 비우호적이다.

케이블TV 사업자(SO)들이 초고속인터넷과 인터넷TV(IPTV), 인터넷전화 등을 하나로 묶어서 제공하는 트리플 플레이 서비스를 하기 위해 정통부에 인가 신청을 냈으나 통신사업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모두 불허됐다. 통신방송융합 서비스가 전 세계적으로 대두되는 점을 감안하면 답답한 행정처리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내 업체들이 지지부진한 사이에 벨기에의 스카이프가 소리 소문 없이 국내에 들어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미 가입자가 40만 명을 넘어선 스카이프는 한국에서 올해 말까지 150만 명의 가입자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미국 보니지도 한국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 업체 관계자는 “국내 인터넷전화 업체들이 제대로 기를 못 펴는 상황에 외국 기업이 치고 들어오면 대기업을 제외한 중소 업체들은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며 “산업 발전 차원에서 정부가 규제를 줄이고 인터넷전화 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인터뷰
애니유저넷 이관석 상무
"와이브로 본격화 땐 전성기 맞을 것"

“얼마 전 친구에게 인터넷전화를 했더니 안 받더군요. 왜 그랬냐고 따졌더니 그 친구 왈 ‘스팸(060)인줄 알고 한바탕 욕이라고 해 줄까 하다가 꾹 참았다’고 하더군요. 070 번호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1998년 8월 인터넷전화 유료 서비스를 국내 최초로 시작한 별정사업자 유니유저넷의 이관석 상무는 “일반인들이 인터넷전화에 대해 너무 몰라 보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다행히 최근 정부 주도로 ‘인터넷전화 활성화협의회’를 구성하고 사업자들도 공동 홍보에 나서기로 한 상태지만 확정된 홍보 예산은 고작 1억원에 불과하단다.

사정이 그러하다보니 업계선 제대로 된 ‘킬러 서비스’를 내놓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이 상무는 말한다. 인터넷전화 이용을 촉진할 수 있는 부가서비스 개발이 절실한데 막상 개발을 하더라도 이용할 사람이 없다는 것.

“언제 어디서나 통화가 가능한 휴대전화과 달리 인터넷전화는 컴퓨터(PC)를 떠나면 통화가 안되기 때문에 그동안 고전했다”는 이 상무는 그러나 “앞으로 와이브로(휴대인터넷)가 음성전화를 탑재해 본격 상용서비스를 시작하게 되면 통화료가 싼 인터넷전화가 제2 전성기를 맞을 것이다”고 미래를 낙관했다.




최연진 기자 wolfpac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