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重 "주주 이익용" 현대그룹 "적대적 M&A 드러내" 여성단체 "현대상선 주식갖기 운동 전개" 새 변수

현대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의 경영권 분쟁이 2라운드에 접어들었다.

지난 4월 말 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현대상선 주식 26.68%를 기습적으로 매입하면서 촉발된 양측의 갈등은 이달 14, 15일 현대상선 유상증자에 현대중공업그룹이 참여함으로써 한층 가열되고 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정몽준 의원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그룹 간의 갈등은 형수와 시동생의 싸움, 셰익스피어의 비극도 상상하지 못했던 극적인 요소 까지 고루 갖추고 있는 데다, 전개 양상도 예측을 불허하고 있어 세인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현대그룹·중공업 지분격차 벌어져

현재 방어적 공세의 고삐를 죄고 있는 쪽은 현대그룹.

현대그룹측은 “백기사를 자임하던 현대중공업그룹측이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말라는 우리의 요구를 뿌리친 것은 그들의 주장이 거짓임이 나타낸 동시에,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주주인 정몽준 의원이 현대그룹에 대한 적대적 인수 합병(M&A) 의도가 명백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맞서 현대중공업측은 유상증자 공모가(1만4,000원)가 2만원대에 형성된 현대상선 시가에 비해 훨씬 싼 만큼 증자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지분 감소로 주주이익에 반하게 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현대그룹은 당초 이번 유상증자를 통해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즉 하반기로 예상되는 현대건설 인수에 필요한 실탄을 마련하고, 우호지분을 확대해 경영권을 방어하겠다는 것. 3,000만주를 시가 1만4,000원에 유상증자함으로써 당장 수 천억원의 목돈을 손에 쥐게 됐다.

또 유상증자를 통해 현 회장의 우호세력인 현대상선 우리사주가 증자물량의 20%를 우선 배정받음으로써 이들의 지분이 3.89%에서 8.23%로 높아졌다. 반면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나머지 주주 지분율은 조금씩 낮아졌다. 이에 따라 현대상선 우리사주 지분율이 전체적으로 4.34% 정도 늘어 현대중공업그룹측 우호지분(32.94%=현대중 26.68%+KCC 6.26% 등)과의 차이를 최대 7%정도 벌리게 됐다.

양측 지분차이가 7%가 됐다는 계산은 현정은 회장 등 현대그룹 패밀리가 지난 9일 여유자금을 투입해 0.71%의 현대상선 지분을 추가 확보함으로써 현대그룹 우호 지분율이 모두 35.46%가 됐고, 여기에 이번 증자를 통해 늘어난 우리사주 지분율 4.34%를 더한 수치로 보면 된다.

더욱이 현대그룹은 증자 과정에서 현정은 회장의 부친인 현영원 회장과 모친인 김문희 여사 등 현씨 일가의 전폭적인 지지에다, 여성 단체들의 지원까지 확보해 천군만마 같은 우군을 얻게 됐다.

특히 9일 한국여성단체협의회(회장 김화중)에 이어 11일 전ㆍ현직 여성경제단체 대표들이 현 회장을 돕기 위한 ‘현대상선 주식 갖기 운동’ 전개 의사를 밝히는 등 현 회장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강기원 여성경영자총협회 전 회장과 김순진 21세기 여성 CEO연합회장, 박덕희 IT기업인협회 회장, 송혜자 여성벤처협회 회장 등은 공동성명서에서 “정몽준 의원은 현대그룹에 대한 적대적 인수 합병(M&A)을 중단하라”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현대상선 주식 갖기 운동도 불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몽준 대 여성계 대결로 번져

상황이 이쯤 되면 ‘정몽준 대 현정은’의 싸움이 아니라, ‘정몽준 대 여성계 전체’의 대결로 번지는 형국으로 변모한 것이다.

이 같은 유리한 분위기 때문인지 현대그룹측에서는 “정몽준 의원의 현대상선의 지분 매입은 꽃놀이패가 아닌 뜨거운 감자를 입에 덥석 문 격”이라고 보고 있다.

현대건설을 인수할 수도, 이를 통해 현대그룹을 접수할 수도 있는 다목적 카드가 아니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만큼 경영권 방어에 자신있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그룹측은 현대상선 지분 매입은 단순 투자목적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여론의 추이를 면밀히 살피고 있다. 특히 여성계까지 나서 현대그룹측의 박박 논리에 동조하며 정몽준 대주주에 직격탄을 날리는 상황에는 적잖이 곤혹해 하는 모습이다.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는 “이미 지난달 공시를 통해 경영권 찬탈 의도가 없다는 것을 명확히 밝혔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현대상선은 지난 30년간 현대중공업의 최대 고객사로 최근 외국인들의 적대적 M&A 위협설이 나돌아 경영 안정화를 지원하는 차원에서 실시한 것”이라고 기존의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사실 현대중공업측의 이 같은 일관된 해명에도 불구, 그동안 현대상선 인수의 진정한 의도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설이 분분했다.

먼저 제기되는 게 현대그룹 접수설. 창업주인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피와 땀이 서려 있는 현대그룹을 며느리 현씨 회사에서 정씨 회사로 돌려놓겠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현대상선은 현대그룹 매출(6조6,766억원)의 73%를 차지하고, 현대택배(30.11%) 현대아산(36.86%) 현대증권(12.79%) 등을 거느린 최대 주주다. 따라서 현대상선 경영권을 접수하면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다.

하지만 3년 전 KCC와 현대그룹 간 경영권 분쟁이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았고, ‘정치인’ 정몽준 의원이 평소 페어플레이를 강조하며 이미지를 중시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대그룹 경영권을 직접 노렸다고 보기에는 무리라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나온 것이 현대건설 인수 사전 정지작업설이다.

현대건설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그룹을 일으킨 모태기업인 만큼 상징성이 크다. 이 같은 상황에서 현대그룹이 현대상선을 통해 M&A 시장에 나온 현대건설 인수를 추진하자, 현대중공업이 ‘길목 지키기’ 전법으로 태클을 걸고 나섰다는 분석이었다.

실제로 현대중공업이 현대상선의 최대주주가 된 만큼 현대그룹은 현대건설 인수와 관련해 마음대로 의사결정을 할 수 없게 됐다.

따라서 현대중공업은 현대건설을 직접 인수하든, 현대상선이 접수하도록 내버려 두든 현대상선 최대주주로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꽃놀이패’를 쥐게 됐다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 측은 현대건설 인수를 통한 현대그룹에 대한 적대적 M&A시도라고 의심하고 있다.

물론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현대상선 지분인수는 현대그룹이 다른 세력에 휘둘리지 않도록 보호하는 동시에 대주주의 권한을 행사, 그룹을 올바로 이끌어나가겠다는 뜻”이라고 말하고 있다.

현대건설 인수전이 승패 가늠

일단 작금의 분위기로 봐서는 현대중공업그룹측이 설령 꽃놀이패를 쥐고 있더라도, 이를 쉽게 쓰기에는 상황이 녹록지 않은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한편에서는 대북사업적 측면을 보더라도 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그룹을 먹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현대그룹이 현대상선에서 나오는 돈줄을 바탕으로 현대아산을 앞세워, 금강산 사업과 개성공단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상선을 접수하는 것을 남북관계 개선에 정성을 쏟고 있는 집권세력이 좌시할 가능성이 낮다는 논리다.

그렇더라도 현단계에서 현대그룹의 승리를 점치기도 성급하다. 유상증자를 했지만 여전히 양측의 지분차이가 크게 나지 않고, 본격적인 지분경쟁도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실제로 지분 싸움이 시작되면 매출 규모에서 현대그룹의 2배가 넘는 현대중공업그룹의 자금 동원력이 훨씬 우세하다.

정 회장은 얼마 전 현대그룹과의 경영권 분쟁에 대해 “답답하다. 그러나 길게 보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그룹 고위관계자도 “어짜피 길게 갈수밖에 없다. 우리도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결의를 다졌다.

업계에서는 하반기에 매물로 나오는 현대건설 인수전이 양측의 싸움의 승패여부를 가름할 고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건설은 현재 현대상선 지분 8.68%를 갖고 있어, 현대건설을 인수하는 쪽이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접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이 과정에 여론의 향방이 누구에게 더 우호적이냐는 것도 중대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박진용 기자 hub@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