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회계 시스템 구축으로 대내·외 신인도 상승… 지난해 사상 최대 영업이익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경영 능력은 이미 경영 실적으로 입증된 것 아닙니까!”

현대중공업그룹과의 경영권 분쟁에 맞선 현대그룹 관계자의 이 한마디는 이미 궤도에 올라선 현대그룹의 자신감을 대변해 준다. 또 그룹이 그동안 온갖 난관과 시련을 잘 이겨내고 이제는 ‘한 시름 놓고 살 만한 형편이 됐는데’ 시동생(정몽준 의원) 측에서 ‘회사를 빼앗으려 한다’는 서운한 감정도 배어 있다.

2003년 정몽헌 회장 타계 직후 현정은 회장이 그룹 회장직을 물려받았을 때만 해도 현대그룹은 자금 등 경영상의 어려움에 처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 해 2,6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자기자본이익률도 마이너스(-) 7.9%에 달했다.

하지만 이후 닥친 KCC와의 경영권 분쟁으로 혼돈과 갈등을 겪었지만 이를 무사히 넘긴 현정은 회장은 강력한 리더십으로 경영권 분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계열사를 추슬러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현대그룹은 지난해 매출 6조9,700억 원을 기록했다. 2003년에 비하면 3년 만에 무려 28%나 증가한 수치다. 순이익 면에서도 지난해 7,800억원의 흑자를 거뒀으며 마이너스였던 자기자본이익율도 17.5%로 끌어 올렸다.

현대그룹이 “현정은 회장 취임 이후 불과 2년여 만에 전 계열사 흑자를 달성하며 지속적으로 흑자를 낼 수 있는 수익구조를 갖췄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이런 경영 성적표에 근거한다.

현정은 회장 취임 이후 현대그룹의 재무구조도 눈에 띄게 건실해졌다. 현대상선, 현대증권 등 주요 계열사의 재무상태가 좋아지면서 2003년 418%에 달했던 그룹의 부채비율이 지난해에는 203%까지 뚝 떨어졌다.

현대 엘리베이터 시가 총액 100% 이상 증가

현대그룹의 대외 신인도도 급격히 좋아졌다는 것은 시장에서의 주가가 말해 준다. 현대그룹 계열사 가운데 거래소에 상장된 현대상선, 현대증권, 현대엘리베이터의 최근 시가총액은 4조5,000여 억원. 이는 그룹이 어수선했던 3년 전에 비하면 121.4%나 급증한 것.

구체적으로 현대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던 현대엘리베이터의 2003년 6월 주가는 8,700원(6월2일)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8만 원대로 올라섰다. 역시 2,760원에 불과했던 현대상선 주가는 현재 2만원 대로 높아졌으며 이즈음 5,800원이었던 현대증권 주가도 1만1,100원으로 두 배 뛰었다.

외부로 나타난 수치 말고도 현대그룹은 내적으로도 더욱 성숙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북송금 등 의혹을 받던 현대상선은 부실을 깨끗하게 털어내고 합리적인 회계시스템을 갖춰 가장 건전한 재무구조를 가진 해운기업으로 거듭났다. 지난해에는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올리는 성과도 거뒀다.

또 전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는 현대아산의 남북경협사업은 진통 끝에 합리적이고 투명한 시스템을 완비, 수익이 나는 사업으로 거듭났다. 현대증권도 현투증권 매각에 따른 경제적 책임을 모두 이행하고, 국내 최대 영업망을 기반으로 각종 테마펀드를 잇따라 성공시키며 업계에서 예전의 명성을 찾아가고 있다.

주요 계열사가 각종 내홍을 겪으며 한동안 적자를 기록해 왔고, 고유가와 환율하락 등 불안한 경영여건을 고려할 때 단기간에 이룩한 현대그룹의 경영성과는 매우 고무적인 것으로 시장에서는 평가한다.

이런 경영상의 내실 다지기는 계열사의 신용등급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대증권은 BBB+로 평가받던 신용등급이 2004년 2월 A-로 상향된 데 이어 올해 2월 다시 A로 높아져 두 단계 상향 조정됐다.

현대상선도 BBB-로 평가받던 회사채 신용등급이 지난해 6월 BBB 로 상향됐으며, 올해 4월에는 BBB+로 높아져 두 단계나 더 올라섰다.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택배도 지난해 신용등급이 각각 한 단계씩 상향 조정됐다.

현대그룹은 “현정은 회장이 이 모든 어려움을 딛고 경영 호전을 이뤄냄으로써 현대그룹의 최고경영자로서 자리를 확고히 자리매김했다”고 자신한다.

현정은 회장이 2년여의 짧은 기간 동안 계열사 경영실적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키고 외유내강형의 리더십을 발휘, 현대그룹 최고경영자로서 경영능력을 이미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지금 시점이 현대중공업과의 경영권 분쟁에 휩싸여 또 다시 혼돈의 늪에 빠져들 처지가 결코 아니라는 입장이다.

자율·책임·윤리경영 정착

현정은 회장의 경영스타일은 여성 특유의 섬세함에 필요한 때에는 원칙과 정도를 강조하는 결단력과 추진력도 겸비한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닌 CEO'로 평가된다. 취임 초기 경영 경험 부족에 대한 일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과감한 인적 쇄신을 단행한 것이 이를 입증해준다.

또 이사회 중심의 자율경영과 책임경영을 정착시키고 윤리경영을 전 계열사로 확산시키는 등 정도경영으로 모든 난관을 정면 돌파, 경영권 방어에 성공한 것도 현정은 회장의 ‘부드러운 뚝심’ 덕이라는 한다.

남북경협사업 추진 과정에서 현대아산의 인사문제가 불거져 북측과 대치국면에 들어섰을 때에도 원칙과 소신을 지킨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걱정했지만 진심이 알려지면서 이후 대북사업은 정상화됐고 오히려 남북경협사업을 합리적 관계로 재정립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특히 여성경제인의 간판으로 부상한 현 회장은 현대그룹 특유의 남성적이고 투박한 기업문화와 이미지를 금융, 물류서비스 및 첨단제조 산업에 맞는 세련된 이미지로 변신시키는데 성공했다는 찬사도 받고 있다.

무더운 복날 임원 가족에 포장된 삼계탕을 보내고 수능을 치른 임직원 자녀들에게 목도리를 선물하는 등 임직원의 감성을 자극하면서도 사기를 고취시켜 그룹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은 현 회장의 여성적 감성경영을 말해 주는 대목들이다.

현정은 회장 취임 이후 경영권이 안정화되면서 내실을 다져온 현대그룹은 앞으로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2010년 미래 성장 산업을 집중 육성하는 등 매출 20조 달성을 위한 중장기 비전 수립을 이미 지난해 천명했다. 이 같은 비전 달성을 위해 2005년 7월 유비쿼터스형 미래 첨단사업 추진을 목표로 IT서비스 전문기업인 현대유엔아이를 출범시켜 토탈 디지털 컨버젼스사업에 야심찬 출사표를 던졌다.

나아가 현대아산의 남북경협사업, 현대택배의 물류사업, 현대엘리베이터 등과 막대한 시너지 효과가 예상되는 현대건설 인수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그러나 이 모든 청사진은 현대중공업과의 경영권 분쟁이 잘 마무리돼야 가능할 것 같다.




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