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현대重 '주식 기습 매입'에 섭섭… "신뢰 회복으로 풀어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으로서는 고 정몽헌 회장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경영했던 기업을 잘 꾸려 나가고자 하는 소박한 바람을 갖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현대중공업의 현대그룹 핵심계열사인 현대상선 주식 기습 매입 이후 경영권 분쟁에 휩싸인 현대그룹 관계자는 그룹의 입장을 이같이 표현했다. 사실 어려운 시기에 그룹 경영을 맡아 2년여 만에 순항 궤도에 올려 놓은 현대그룹은 현정은 회장의 시동생인 정몽준 의원측의 처사에 크게 마음상한 눈치다.

당일 아침에 통보하고 오후에 주식을 인수, 현대상선의 최대주주로 뛰어 오른 것과 지난주 마감된 유상증자에 현대중공업이 참여한 것에 대해 섭섭한 감정을 드러냈다. 때문에 최근 여성단체들과 여성기업인들이 적극 나서 현 회장을 돕기로 나선 것에 대해서 원군을 만난 듯 고무된 분위기다.

현대그룹측은 “현대중공업이 현대상선 주식 매집 행위에 대해 ‘우호세력이다’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고 시너지 효과를 얻기 위한 조치다’라고 말하지만 우리로서는 믿기 어렵습니다”라며 “주식 매수 전날까지도 아무런 상의를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의 시너지 효과 주장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시했다. “현대상선의 선박 발주 물량은 어차피 가만 있어도 현대중공업으로 가게 돼 있습니다. 정말 시너지를 생각한다면 현대상선이 아닌 다른 상선사를 잡아야지요. 논리적으로 모순입니다.”

현대그룹 사장단의 한 임원은 “어쨌든 두 기업의 이해관계를 고려할 때 주주도 있고 불특정 고객이나 국민들의 시선도 있는 것인데 그걸 다 무시하고 돌아가신 형의 부인이 하는 기업의 주식을 매집하는 게 어떻게 주주이익 극대화일 수 있습니까”며 반문했다. 그는 중간중간에 “이해가 되지 않아요” “믿을 수 없어요”라는 말을 자주했다.

'적통' 싸움 시각에 "오해" 강조

“현정은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이 정주영 명예회장의 유지를 이어 받는 적통(嫡統)이라고는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얘기들 하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그 역할은 당연히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이 맡고 있는 것 아닌가요?”

현 회장측은 현대가의 ‘적통’ 싸움 때문에 이번에 주식 매집 갈등이 일어났을 것이라는 일부의 시각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오해라고 강조했다.

현정은 회장은 그러나 대북 사업에 대해서만은 계속 이어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대북사업을 진행하는 현대아산의 업무 역시 정몽헌 회장이 생전에 공들였던 분야이므로 당연히 현대그룹측이 유지를 받들어 맡아서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현정은 회장은 일반 업무는 되도록 사장들에게 맡기지만 대북사업만은 관심을 갖고 직접 챙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 가을에는 또 한 번의 성과인 내금강 골프장도 오픈할 예정이다. 현대아산이 심혈을 기울인 이 골프장은 좌우로 동해바다와 만물상이 보이는 전경을 갖춰 제주도 못지 않은 골프장으로 인기를 끌 전망이다.

형제인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과 정몽준 의원 간의 잘못 알려진 관계에 대해서도 현대그룹은 할 말이 많다.

“정몽준 의원이 대선에 출마했을 때 제가 직접 여쭤봤습니다. 누구를 찍어야 하나요?라고 했더니 정몽헌 회장이 ‘그야 물론 동생을 찍어야지’라고 말씀하시는 걸 제가 직접 들었습니다.” 지난 대선 때 정몽헌 회장을 수행했던 김병훈 현대택배 사장은 당시를 회고했다.

또 두 회장의 관계가 껄끄러워 정몽준 의원이 문전박대 당했다는 사건에 대해서도 현대그룹측은 다시금 해명했다.

“현대중공업이 현대증권과 현대전자를 상대로 지급보증관계로 소송을 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정몽헌 회장이 ‘그런 건 대화로 하면 되지 가족 간에 무슨 소송이야?’하면서 잠시 서로가 어색했던 적이 있었지요. 이때 정몽준 의원이 정몽헌 회장댁을 찾아왔을 때 정몽헌 회장이 껄끄러워한 것이 문전박대로 비쳐진 것입니다. 결코 왕자의 난이나 상속 문제로 불편한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이때 현정은 회장은 집에 찾아 온 정몽준 의원을 반갑게 맞이해 식사를 함께 했다고 한다.

그러나 양측은 올 가을 현대건설 매각작업이 본격화될 때 또 한번 충돌이 예상된다. 현대그룹측은 이때 현대중공업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속내가 드러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지난해 11월 파주 도라산 남북 출입사무소에서 방북결과를 설명하는 현정은 회장. 현 회장은 대북사업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현대건설 인수전서 또 부딪힐 것

“형수가 이끄는 현대그룹의 경영이 잘못됐다면 당연히 매를 맞아야지요. 하지만 그건 아니잖습니까? 회사는 그 어느 때보다 잘 굴러가고 있고 직원들도 현 회장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데 웬 날벼락인가 싶네요.”

현대그룹 사장단 관계자는 또 “외형상 정 씨와 현씨 집안의 싸움으로도 비쳐지지만 실제적으로 그렇지 않습니다”며 “결국 한가족 일인데 일이 잘 풀려야지 그렇지 않다면 돌아가신 정주영 명예회장의 뜻에도 어긋나는 것입니다. 집안의 큰 어른들이 나서서 교통정리를 해 주시면 문제가 풀릴 수 있을 텐데…”라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현대그룹측의 또 다른 관계자도 “우리로서도 뾰족한 해결책이 없어 답답합니다”며 “기본적으로 국민경제를 생각해 현대그룹과 현대중공업 간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고 강조했다.


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