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던스, 방 안에 취사 시설까지 갖춰 외국인들에 인기 숙박시장 급속 잠식… 호텔들 "불법영업" 불만 갈등 심화

▲ 사진은 기사의 특정사실과 관련 없음 / 임재범 기자
“외국인들이 많이 다니는 그 빌딩이 호텔이라며?”
“근사하게 새로 지은 그 건물도 호텔 아니야?”

서울 시내 곳곳에 들어선 서비스드 레지던스(Serviced Residenceㆍ이하 레지던스로 호칭)를 가리키며 일반인들이 곧잘 나누는 대화 내용이다. 으리으리하게 지어 놓은 고층 빌딩에 호텔처럼 많은 외국인들이 오가는 레지던스의 모습이 일반 호텔처럼 보이기는 한데 그렇다고 호텔 간판이 크게 붙어 있는 것도 아니어서다.

최근 수년간 서울과 수도권에 레지던스의 객실 수가 급증하면서 객실 판매를 놓고 호텔과 레지던스 사이에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급성장세에 있는 레지던스의 단기 숙박 영업에 호텔들이 “고객을 빼앗기고 있다”며 소리 높여 불만을 털어 놓고 있는 것. 호텔들은 레지던스의 숙박 시장 잠식에 따른 매출 부진 탓에 속수무책으로 경영을 위협받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서비스드 레지던스란 아파트나 주상복합아파트, 오피스텔 등의 주거공간에 호텔식 서비스를 혼합한 형태다. 호텔과 달리 방 안에 취사나 세탁 시설도 있으며 커피숍, 레스토랑, 사우나, 비즈니스 센터, 휘트니스 센터 등 부대시설을 갖추고 장기 투숙 목적의 내외국인을 주대상으로 임대 및 숙박 영업을 하는 ‘호텔형 주거시스템’을 가리킨다.

국내에서는 1988년 처음 등장했는데 이후 외국인 투자 개방과 외국 관광객 수요가 증가하면서 외국계 업체들도 가세, 객실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2002년 76%가 늘어난 것을 필두로 2003년에는 무려 226%, 2004년 110%, 지난해에도 49% 등으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국내 레지던스의 객실 규모는 대략 7,300여 실. 이 중 가동되고 있는 객실은 전국 6,000여 실, 서울 지역 5,700여 실로 추정된다.

주로 단기 투숙객들을 영업 대상으로 삼는 호텔과 달리 레지던스는 장기 투숙객들이 주고객이어서 레지던스 등장 초기만 해도 양측 간에 마찰은 없었다.

하지만 매출 규모가 그리 크지 않던 초기 시장과 달리 레지던스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몇몇 레지던스 업체들이 장기 투숙이라는 당초 취지와 달리 외국인 단기 체류 관광객 시장까지 영업을 확대하면서 호텔업계와의 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한 것.

호텔들은 먼저 몇몇 레지던스들에서 이뤄지고 있는 단기 투숙객 유치 문제부터 들고 나왔다. 레지던스는 엄연히 장기 투숙객들만을 손님으로 받아야 되는 데도 이를 무시하고 관광 목적의 단기 투숙객뿐만 아니라 내국인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는 것.

한국관광호텔업협회는 이와 관련, 레지던스의 정체성 문제까지 제기한다. 레지던스는 현행법상 부동산임대업, 주택임대업, 주택건설업, 공동주택관리업 등의 형태로 등록된 사업체이지 숙박업종이 아니라는 것. 실제 레지던스의 영업 방식은 숙박업과 유사하지만 엄연히 부동산 투자의 성격이 강하다.

때문에 호텔업협회는 레지던스의 불법, 탈법 영업 부분에 대해 단속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행 공중위생관리법 상 ‘대가성 있는 숙박을 제공하는 등 건물의 허가용도와 다른 영업 행위를 하고자 하는 이는 기초자치단체장에게 이를 신고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는데 레지던스들도 이를 따라야 한다는 입장이다. 규정에는 ‘이에 준하지 않는 경우 신고를 수리하지 않거나 위반시 행정 조치 및 처벌을 가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레지던스 업계에서는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레지던스는 관광진흥법에 의한 호텔업이나 공중위생법에 따른 숙박업도 아닌 단순 부동산 임대업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객실 혹은 아파트를 대여할 수 있다는 논리다. 때문에 객실 판매는 불법 영업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에 대해 호텔들의 입장도 단호하다. ‘숙박업을 하려면 법적 요건을 갖추고 숙박업을 하라’는 주장이다.

호텔업협회 원승재 대리는 “관광진흥법의 적용을 받는 관광호텔들은 숙박업 등록을 위해 실내 시설에 방염과 방화, 대피망 등 최소한의 안전 설비를 갖추고 있는데 레지던스는 이런 규정을 적용받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즉 이런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 호텔들은 많은 비용을 들이고 또 수년마다 시설 개·보수를 위해 투자하는 데도 경쟁 업체에 이런 절차가 없다면 고객들의 안전도 우려될 뿐더러 공정한 게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호텔들의 불만은 호텔들이 겪고 있는 매출 감소와도 직접 연관돼 있다. 호텔업협회가 올 초 레지던스가 밀집한 지역의 호텔 3곳을 선정해 조사를 해보니 “레지던스가 생기기 전보다 객실 판매율이 무려 50%나 줄어들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또 처음에는 중저가 호텔들만이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했는데 최근 들어서는 특 1, 2급 호텔들에게까지 영향이 미치고 있는 점도 호텔측의 입장을 더욱 강경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에 있는 호텔들의 불만은 더욱 크다. 이는 레지던스 대부분이 이 지역에 집중해 있기 때문. 관광호텔 객실 규모 대비, 레지던수 객실은 10%에 불과하지만 서울지역만 계산하면 28%로 껑충 뛰어 오른다.

이 같은 레지던스와 호텔 간의 갈등 속에서 실질적인 이용자인 여행사측은 가격의 효용성을 강조, 어느 한 쪽의 편을 들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국내 호텔 가격이 너무 비싸 상대적으로 저렴한 레지던스를 많이 선호하고 있는 양상이다.

▲ 퍼시픽호텔 객실

여행업체들은 “날로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한 푼이라도 비용을 줄여야 하는 입장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실제 레지던스 객실의 가격은 호텔보다는 저렴한 축에 속한다. 국내 주요 호텔 예약사이트에서 호텔로 분류돼 판매되고 있는 일반 룸이나 스위트룸 등의 객실 표시가격이 4만~28만원선. 주말, 주중으로 나눠 최소 4만~5만, 평균 7만~8만원 할인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특히 레지던스는 특급호텔과 비교해 시설이나 서비스 면에서 크게 뒤떨어져 있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또 객실에 취사 기능을 추가, 좀 더 주거성을 강조하고 가족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외국인들의 기호에도 맞아 떨어진다.

때문에 레지던스는 외국인 및 교포들을 주 고객층으로 저변을 계속 넓혀 가고 있다. 직원들 또한 전·현직 호텔 종사원들이 많아 호텔급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와 관련, 아무래도 기존 고객을 빼앗기고 있는 호텔들은 여전히 불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양측의 갈등이 표면화되거나 직접적인 마찰이나 충돌이 일어나는 상황까지는 이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호텔업협회 제창근 회원사업팀장은 “대외적으로 다양하고도 새로운 관광 숙박형태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레지던스의 의미가 있는 것은 인정한다”며 “다만 법적, 제도적 요건을 갖추고서 숙박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 호텔들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전했다.

레지던스 투숙객 안전관리 허점 논란

"서비스드 레지던스의 숙박 영업은 근거법이 모호해 제도권 하의 관리 및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상대적으로 경쟁관계에 있는 호텔들이 레지던스에 대해 줄기차게 주장하는 내용이다.

현재 레지던스는 일반 호텔과 달리 사적인 주거 또는 점유 공간으로 인정받고 있어 법적 제재나 적용을 받는 폭이 호텔보다 적은 편이다. 이와 관련, 호텔업협회는 이미 "레지던스가 객실 내부에서 발생하는 화재나 자해, 폭행 사상 사건 등에 의한 사고에 대해 어떠한 관리 통제의 근거가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 레지던스는 청소년보호법 상 미성년자의 숙박시설 이용에 관한 규정에도 저촉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고 협회는 밝히고 있다.

때문에 "불의의 사고나 비상사태시 레지던스 숙박객은 부득이 안전 관리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는 셈이 된다"고 호텔들은 주장한다. 실제로 지난 3월 서울 시내의 한 레지던스에 투숙한 18세 소녀가 투숙 나흘 만에 사체로 발견되는 등 안전관리에 허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반대로 관광진흥법의 적용을 받는 관광호텔은 24시간 응대 체제로 투숙객을 관리 통제하고 있으며 소방법에 의거 대피로 확보, 불연재 사용, 법정 소방안전점검 실시, 자체 소방안전훈련 등을 실시하고 있다.

화재나 재난으로부터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며 통제받고 있지만 레지던스는 그만큼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호텔들은 "양측의 갈등이 밥그릇 싸움 때문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은근히 강조한다.

이와 관련, 호텔업협회는 정부 부처에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불법·탈법 부분에 대해서는 단속을 요구했으나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하고 있다.

건설교통부에 문의하면 "이미 건축 승인이 난 사항이라 영업 행위에 대해서는 관여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관광호텔 주무부처인 문화관광부에서는 "관광호텔로 등록된 곳이 아니라 우리가 조치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답변만 되풀이해 받는 형편이다. 또 공중위생법상에도 레지던스에 대한 관련 조항이 없어 관리나 단속은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호텔업계 관계자는 "레지던스에 대한 근거법을 제정해 모호한 법률적 해석의 소지를 없애고 숙박영업에 대해서는 신고 및 행정, 단속 조치에 관한 사항을 명시해 당국의 관리 감독이 이뤄져야 한다"며 "국민안전과 공정 경쟁을 위해서도 시의적절하고도 합리적인 규제 대책이 서둘러 마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