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기술력 '조선강국 코리아'제작능력 · 건조량 등 경쟁국 압도, 가격 경쟁력 앞세운 중국의 추격은 경계

▲ 현대중공업의 육상건조선박.
일반인들은 보통 조선사업 하면 전형적인 굴뚝 산업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3D 업종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아마도 쇳덩어리와 철판을 뚝딱거려 중후장대한 선박을 만드는 산업이기 때문에 생긴 편견일 것이다.

좀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국내 조선산업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한 효자산업이라는 사실 정도는 알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인식도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 국내 조선소에서 만든 선박들은 대부분 수출돼 휴대폰이나 가전제품, 자동차처럼 생활 주변에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 각국의 주요 선주(船主)들은 국내 조선산업의 우수성을 잘 안다. 그들에게 한국은 곧 조선강국과 동의어나 마찬가지다. 2000년대 이후 한국 조선업계는 쏟아지는 주문으로 눈코 뜰 새가 없이 바쁘다. 일감도 몇 년치씩 쌓아놓고 배를 만들고 있다. 정작 우리 국민들은 체감하지 못하는 사이 한국 조선업계는 지구촌 선박 생산의 산실로 우뚝 섰다.

김징완 한국조선공업협회 회장(삼성중공업 사장)은 지난 3월 말 한국무역협회가 주최한 조찬 강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우리는 만들지 못하는 배가 없을 정도의 기술 실력을 갖고 있다. (…)잠수함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정부 국책사업을 맡아 제작하고 있고 항공모함도 무기 시스템만 뒷받침되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한국 조선산업의 기술력에 대한 뿌듯한 자긍심이 묻어 있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실제 국내 조선업체들의 선박 제조 능력은 일본, 유럽 등 경쟁국들에 비해 상당 부분 앞선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 덕분에 세계 조선시장 수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선 분야에서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 삼성중공업은 세계 최고 규모의 해양 플랫폼 명명식을 거제 조선소에서 가졌다.

미래도 낙관적이다. 한국조선공업협회 자료에 따르면 2005년 선박 건조량 기준 38%의 시장점유율을 보인 국내 조선산업은 10년 뒤인 2015년께는 점유율이 좀 더 올라 40%의 시장을 차지하며 세계 1위 자리를 더 굳힐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울러 선박 수출액도 153억 달러에서 170억 달러로 더욱 늘어나는 데다 주력 상품도 LNG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위주로 재편될 것으로 예상됐다.

이 같은 조선공업협회의 낙관적 전망은 국내 조선업의 경쟁력이 2010년부터는 설계분야에서까지 일본을 따돌릴 것이라는 분석에서 비롯됐다. 그나마 일본이 근소한 우위를 보였던 분야마저 한국이 앞서게 된다는 것이다. 다만 가격 경쟁력에다 건조 능력을 꾸준히 향상시키고 있는 중국의 추격은 경계해야 한다는 게 조선업계의 전반적인 분위기다.

수주잔량 기준 세계 1~7위 독식

현재 조선업계에서 ‘국내 순위=세계 순위’일 만큼 한국 조선업체들은 세계 상위권을 휩쓸고 있다.

영국의 조선ㆍ해운시황 분석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최근 국내 조선업계는 수주잔량(단위 CGTㆍ표준화물선 환산톤수) 기준으로 세계 1~7위를 독차지하고 있다.

이른바 ‘빅3’로 불리는 현대중공업(1,116만 CGT), 삼성중공업(828만 CGT), 대우조선해양(750만 CGT)이 나란히 1, 2, 3위를 차지했고, 그 뒤에는 현대미포조선(417만 CGT)과 현대삼호중공업(278만 CGT), STX조선(231만 CGT), 한진중공업(219만 CGT) 등이 바통을 이어받는 형국이다. 특히 현대중공업 그룹은 계열사인 미포조선, 삼호중공업을 합쳐 압도적인 1위를 순항하고 있다.

한국에 뒤처진 일본 업체들의 쇠락은 돌이킬 수 없는 추세처럼 보인다. 한국 조선산업은 2000년 시장점유율 33.6%로 마침내 일본을 제친 뒤 7년째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지난해 수주잔량 기준으로 한국은 일본보다 10% 정도 높은 시장점유율을 보였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전체 수주잔량 순위에서 6위를 했던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이 한국 업체들에게 밀려나면서 일본의 마지막 자존심마저 무너진 셈이다.

그렇다면 한국 조선산업의 막강한 경쟁력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업계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199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생산 규모 확대와 기술 혁신에 매진해온 것이 시장 석권의 바탕이 됐다고 분석한다. 그 덕분에 호황기에 접어든 조선 수요를 경쟁국보다 앞서 많이 따내고 고객을 계속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국내 조선산업의 기술력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는 흔히 현대중공업의 육상 건조 방식과 삼성중공업의 플로팅 도크 건조 방식을 꼽는다. 전자는 땅 위에서 배를 완성해 바다로 진수시키는 공법이고, 후자는 바다 위에 도크를 만들어 그 위에서 배를 건조하는 공법이다.

두 가지 건조 방식 모두 ‘배는 도크에서 짓는 것’이라는 오랜 고정관념을 혁파한 것은 물론, 조선소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올려놓는 디딤돌이 됐다.

▲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진수식을 가진 4,500톤급 한국형 구축함(KDX-Ⅱ) 5번째함 강감찬함. / 연합뉴스

우수한 기술 인력을 많이 확보하고 있는 것도 국내 조선산업의 남다른 강점이다. 그런 까닭에 한국 업체들은 LNG선, FPSO선(부유식 원유생산저장설비 선박), 드릴십(원유 시추 선박) 같은 제작 난이도가 높은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를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조선업체들은 선박 설계 기술, 혁신 공법, 기자재와 설비 공급, 납기 준수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월등한 경쟁력을 가졌다”며 “넓은 세계 시장을 놓고 국내 업체들끼리 선의의 경쟁을 해온 것도 한국 조선산업의 전성기를 가져온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국내 조선업계는 요즘 “10년은 거저 먹고 산다”, “앞으로 20년은 일등을 할 것이다” 등 미래를 낙관하는 콧노래가 심심찮게 들린다. 과연 세계 조선시장을 주름잡는 한국의 전성시대는 언제까지 갈 것인가. 끊임없는 기술 개발을 해왔던 과거의 자세로 수성에 임한다면 장기간 일등을 쉽게 내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 전망이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