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 '큰손' 빌 그로스 "강세" 전망… 우리나라도 동반상승 가능성

1971년 설립된 채권펀드 운용사인 핌코(PIMCO)는 다른 펀드에 비하여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운용 수수료가 낮아 실속 없는 장사로 간주되던 채권형 펀드에 특화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핌코는 꾸준히 성장하여, 이제 세계 뮤추얼 펀드 순위에서 최상위에 올라 있다. 미국의 대형 연기금 중에서 1/3 이상이 고객일 정도로 채권펀드의 대명사로 간주된다. 주식시장이 침체에 빠진 2001-2002년에는 세계 최대의 펀드가 되기도 하였고, 이후 증시가 활황을 보이면서 순위가 좀 내렸으나 여전히 5위권 안이다.

핌코펀드의 총자산은 2005년 말 기준 5,941억 달러에 이르는데, 창업 당시의 자산이 1,200만 달러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초고속 성장인 셈. 이처럼 핌코펀드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게 된 것은 당연히 뛰어난 수익률을 거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핌코는 채권시장의 벤치마킹 지수인 리먼 브라더스 채권지수의 상승률을 최근 16년 동안 13차례나 상회하는 등 채권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이 같은 뛰어난 수익률을 거둔 채권 펀드 매니저가 핌코의 공동 창업자 중 한 사람인 빌 그로스(Bill Gross)이다.

그는 회사 경영은 동료에게 맡기고 최고 투자담당자(CIO)로 일하면서 오로지 채권 펀드의 운용에만 매진하여 기록적인 수익률을 거두었고, 급기야 ‘채권왕’ 혹은 ‘채권계의 피터린치’로 불리면서 채권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예컨대 그가 수년 전 60억 달러를 투입하여 시장에서 미국의 장기국채를 싹쓸이한 것은 유명한 일이다. 장기국채 가격은 급등하였고, 그는 유유히 막대한 차익을 얻을 수 있었는데, 이런 단기 거래에서 그가 벌어들인 차익만 3억 달러 이상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금리 하락-채권 가격 상승 패턴

그런데 이처럼 채권시장에 영향력이 큰 빌 그로스가 미국 채권 시장이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어서 세계 금융시장의 주목을 끌고 있다.

그는 지난 7월 초, TV에 출연하여 채권시장의 베어마켓이 끝났다고 선언한 바 있다. 당시 6월의 미국 비농업 고용지표가 예상에 못 미친 것으로 발표되자 그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인상 사이클이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면서 미국의 경기가 둔화되기 시작했다고 주장하며 연방기금(Fed Fund) 금리의 인상행진이 5.25%에서 멈출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그의 발언 후 미 국채 10년물의 수익률은 0.10% 포인트 하락하여 5.03%를 나타내고 있고, 그 결과 국채의 가격은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달 말, 빌 그로스는 다시 8월 투자전망 보고서를 통하여 미국의 긴축정책이 소비지출과 주택시장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채권시장이 강세장으로 돌아설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그는 주택시장이 제자리를 찾을 때 일반적으로 단기 금리가 하락하며, 예컨대 FRB가 기준금리를 현재의 5.25%에서 인상을 중단하면 미 국채 수익률이 0.10~0.15% 포인트 더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과거에도 미국의 경제지표가 다소 둔화되는 듯한 기미를 보이면 금리가 하락하면서 채권가격이 상승하는 패턴을 보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런 현상은 일시적인 것으로 그쳤고, 2004년 이후 미국의 정책금리가 꾸준하게 상승하면서 채권가격은 내내 하락세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FRB의 금리 인상 행진이 거의 막바지에 이를 것으로 시장에서도 예측하고 있는 참에 채권시장에 영향력이 막강한 빌 그로스가 채권시장의 강세를 주장하고 있어서 관심을 끈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채권시장에 감돌고 있다.

아울러 빌 그로스는 과거에도 채권시장의 강세를 예측하여 정확히 맞춘 사례가 많았기에 그의 판단이 이번에도 또 들어맞을 것이라고 채권시장 관계자들은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이다.

묘하게도 빌 그로스가 채권시장이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주장한 시기가 계절적으로도 미국의 국채가 강세를 보이곤 하였던 때와 일치하고 있어 관심을 끈다. 전통적으로 7월부터 10월까지는 미국의 국채가 강세를 보이는 경향이 많았기 때문.

실제로 UBS증권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7월 말부터 10월 초까지의 기간 동안 10년물 미국 국채가 강세를 보였던 것은 1987년 이후 작년까지의 과거 18년 동안 모두 14차례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확률적으로도 최소한 4 차례 중에 3차례는 채권가격이 상승하였다는 것이므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데이터이다.

그리고 이 기간 중 국채 수익률은 평균 0.30% 하락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채가격과 수익률은 반대방향으로 움직인다.

이 시기에 미국의 국채가 강세를 보이는 것은 주된 매수 주체인 일본의 투자자들이 일본기업의 회계연도가 시작되는 4월부터 미 국채 매입에 나서는 경향이 많고, 2분기에는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이 소강상태에 들어서므로 상대적으로 채권시장에서 공급이 줄어드는 측면이 있고, 또한 전통적으로 여름 휴가철에 접어들면 주식시장이 약세를 보이는 경향이 높기 때문이다.

하반기 성장 둔화로 금리 인상에 부담

그런데 사실 우리의 관심은 미국의 국채가 강세를 보일지 여부에 있지 않다. 미국의 국채 시장이 강세를 보인다면 과연 우리나라의 채권가격은 어떻게 될 것이냐가 오히려 우리들의 더 큰 관심사이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의 주식시장이 미국의 나스닥지수 등 미국시장의 움직임과 동조화되듯 우리나라의 채권가격도 미국의 채권가격의 움직임과 동반하여 상승, 하락을 나타내는 경향을 드러내고 있어서 미국의 채권시장도 우리의 관심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미국의 국채가 빌 그로스의 예상대로 상승흐름을 탄다면, 우리나라의 채권가격도 상승흐름을 탈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미국의 채권가격이 미국 금리의 향방에 좌우되듯 우리나라의 채권가격도 우리나라의 금리동향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금리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현 수준에서 크게 오를 리스크는 높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인 만큼 채권가격이 상승흐름을 탈 공산은 높아 보인다. 무엇보다도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경기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는 것이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최근 발표된 경제지표에 의하면 2/4분기 우리나라의 GDP 성장률은 전기 대비 0.8%로 나타나 1/4분기의 1.2%에 이어 더 낮아졌다. 1/4분기의 성장률 0.8%는 작년 1/4분기의 0.5% 이후 5분기 만의 최저 수준이다.

확연히 성장 추세가 둔화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산업생산동향에서도 이 같은 추세는 확인된 바 있다. 경기 동행지수가 3개월 연속 내림세를 지속하고 선행지수는 5개월 연속 하락하고 있어, 경기가 하강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진단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물론 한국은행은 이를 단순한 소프트 패치, 즉 경기 상승기조 중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경기둔화 국면이라고 간주하고 있다. 하지만, 민간 연구기관이나 금융시장에서는 소프트 패치가 아니라 소프트 랜딩 즉 경기는 후퇴하고 있으며, 경착륙이 아니라 연착륙이 될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독자적으로 금리를 인상하기에는 부담스러울 것이 분명하다.

한국은행은 기본적으로는 인플레 압력에 대처하기 위하여 긴축기조를 유지하고 있으며, 언제건 물가압력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콜 금리를 인상할 태세가 되어 있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은 낮아 보이며, 금융시장에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설령 한국은행이 올해 안에 금리를 인상하더라도 한 차례 정도, 0.25% 포인트 수준의 인상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우리도 채권시장의 강세를 조심스럽게 점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만일 한국은행이 콜 금리를 올해 안에 0.25%라도 인상한다면 오히려 채권시장의 랠리를 앞당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일단 콜금리를 인상하고 나면 당분간 금리가 인상될 확률은 현저하게 낮아지기 때문이다.


김중근 한맥레프코선물 수석 이코노미스트 elliottwave@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