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합의안 조합원 찬반투표서 부결… '핵심기술 빼가기' 의혹 해소 등 쟁점 여전

▲ 쌍용차 노조 조합원 3,000여 명이 수원 경기도청 앞 도로에서 핵심기술의 중국유출 저지를 촉구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 아래 사진은 노조측이 설계도면이 중국에 넘어갔다고 의혹을 제기한 세단형 SUV 카이런이 신차 발표회에서 선보이는 모습.
하투(夏鬪) 정국의 주요 뇌관이었던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의 분규가 타결직전까지 갔다가 막판에 깨졌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을 것 같던 쌍용차 노사는 8월 25일 열린 26차 본교섭에서 어렵사리 잠정 합의안을 도출, 9일 간의 ‘옥쇄 파업’이 끝나는 듯했으나 이날 오후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수용여부를 묻는 찬반투표를 실시한 결과 투표참여자의 63%(잠정 집계) 반대로 부결돼 원점 회귀했다.

당초 노사 양측이 합의한 내용은 대략 ▲구조조정 철회와 고용보장 ▲2009년까지 신차 개발 등 매년 3,000억원 안팎의 투자 ▲임금 및 각종 수당 동결 ▲일부 복지제도 2년간 동결 ▲효율적이고 유연한 생산체제 구축 등이다.

하지만 노조 입장에서 보면 최대 목표였던 구조조정 철회는 보장 받았지만 그 못지않게 파업의 대의명분으로 삼았던 ‘기술유출’ 논란 등은 여전한 불씨로 남아 일반 조합원의 동의를 받는 데 실패했다.

노조는 그동안 줄기차게 쌍용차 대주주인 중국 상하이자동차가 쌍용차의 핵심 기술을 빼내간다는 의혹을 제기해왔다. 그러나 이번 잠정합의안에서도 기술유출과 관련한 어떠한 명시적 조항도 담기지 않았다. 다만 노조에서는 ‘투자 집행과 기술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노조와 분기별로 논의한다’는 조항을 유추 해석, 기술유출 문제를 사측에 제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김영건 사무국장은 “기술 프로젝트 협의 조항은 기술유출이 발생했을 때 노조가 이의를 공식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한 것으로 봐도 괜찮다”며 “이번 잠정합의에도 불구하고 쌍용자동차의 기술유출 문제는 끝난 게 아니며 향후로도 노조는 기술유출 여부를 꾸준히 점검할 수 있는 장치 마련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상하이자동차의 쌍용차 핵심기술 유출 논란은 2004년 회사 매각 때부터 제기된 문제다. 당시 상당수 자동차 산업 전문가들은 완성차 제조업이 첨단 기술을 총망라한 전략 산업이라는 점을 들어 쌍용차가 독자 기술 확보에 혈안이 된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극력 반대했다. 하지만 채권단은 마땅한 매입자가 나서지 않는 터에 괜찮은 가격을 제시한 상하이자동차와 결국 쌍용차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매각 때부터 예고된 '기술 유출'

이후 기술유출 문제가 처음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지난해 11월 소진관 전 사장이 전격 경질됐을 때다. 소 전 사장은 당시 임기 만료를 3개월밖에 남겨 두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경영실적 부진이라는 석연찮은 이유로 자리에서 밀려났다.

그러자 회사 안팎에선 실적부진 문책론은 단순한 외피일 뿐 진짜 속사정은 따로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그중에는 소 전 사장이 상하이자동차의 무리한 기술이전 요구를 거절했기 때문에 쫓겨났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실제로 당시에 중국으로의 기술이전과 이에 대한 로열티 지급 문제를 두고 소 전 사장과 상하이자동차측이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유출 의혹을 더욱 부추긴 것은 상하이자동차가 쌍용차 인수 때 노조와 맺은 특별협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노조는 상하이자동차측이 신규 프로젝트 추진과 연구개발 역량 향상 등을 위해 매년 상당 규모의 투자를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켜진 게 거의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쌍용차의 알짜 기술만 야금야금 삼켜 왔다는 것이다.

노조는 상하이자동차가 쌍용차의 주력 차종인 ‘카이런’의 핵심기술을 중국으로 빼돌렸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 근거로는 핵심기술 인력 150명을 지난해 5월 중국에 데려가 현지업체의 부품 생산능력 평가와 기술지도를 시킨 점을 든다. 이 과정에 쌍용차의 주요 부품설계 도면이 상하이자동차측에 넘어갔을지 모른다는 것.

노조 관계자는 이에 대해 “상하이자동차측이 ‘카이런’의 설계도면 4,070장을 입수한 뒤 쌍용차 기술진을 동원해 현지의 주요 부품업체의 생산능력을 검토한 것으로 본다”며 “대부분 도면이 CD에 저장된 채로 넘어갔기 때문에 도면이 현지서 무단 유포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카이런 설계도면 등 상당수 유출 가능성

노조가 기술유출 창구로 지목하는 부분은 더 있다. 먼저 지난 6월 상하이자동차와 쌍용차가 맺은 카이런 반조립제품(KD) 사업 라이센스 계약이다. 이 계약은 쌍용차가 향후 10년간 카이런의 가솔린모델 제조 기술뿐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한 변형모델 및 부품에 대한 권리도 상하이자동차에 넘긴다는 내용이다.

이런 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노조는 현재 투기자본감시센터와 함께 카이런 KD사업 라이센스 계약, 소위 ‘L-프로젝트’의 로열티가 터무니없이 낮다며 장쯔웨이 대표이사 등 이사진 9명을 배임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해둔 상태다.

▲ 8월 18일 파업 후 평택공장에서 첫 교섭에 나선 노사 대표단.

물론 사측은 기술유출과 관련한 노조의 주장을 정면 부인하고 있다. 중국 시장을 목표로 현지 생산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한 차원에서 현지 부품업체들의 능력을 검토한 것일 뿐, 기술유출이나 카이런 설계도면 유포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쌍용차측은 이번 잠정 합의안에서 올해부터 2009년까지 매년 3,000억원 정도를 투자해 신차 및 신형 엔진 개발, 영업 및 A/S네트워크 구축 등에 힘을 쏟기로 노조와 약속했다. 이 때문에 당분간 기술유출 논란은 수면 아래로 잠복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그럼에도 노조는 기술유출 문제만큼은 아무 것도 해결된 게 없으며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우리의 생존권뿐 아니라 한국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기술유출에는 계속 촉각을 곤두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여간 쌍용차는 상하이자동차에 합법적인 기술이전이든, 아니면 노조의 우려대로 편법적인 기술유출이든 논란은 계속될 것 같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