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벗어나면 먹통… 방송궈역 설정조차 못해 업계·소비자 '원성'

▲ 지하철 승객이 DMB폰으로 지상파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 배우한 기자
충청도에 사는 강모(32) 씨는 지난 5월에 지상파 DMB(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 수신기를 장만했다. 조만간 지상파 DMB가 전국적으로 서비스된다는 말을 듣고 나서다. 하지만 그는 요즘 이만저만 실망스러운 게 아니다. 도대체 지상파 DMB 서비스가 언제쯤 시작될지 기약조차 없기 때문이다.

비단 강 씨뿐만이 아니다. 수도권을 벗어나면 지상파 DMB 때문에 ‘열 받는’ 사람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모두 비싼 돈을 들여 전용 수신기를 장만했는데 정작 방송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분통을 터뜨리는 것이다.

“지상파 DMB를 9월쯤 전국 서비스한다고 그렇게들 떠들더니, 올핸 힘들다고요? 월드컵 땐 당장에라도 할 것처럼 말하더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네요. 비싼 돈 주고 단말기 구입한 사람들이 수도권에만 있는 거 아니잖아요. 지방에도 좀 볼 수 있게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니면 처음부터 그렇게 부추기지 말든가. 아직까지 지상파 DMB 단말기를 사지 않은 지방 사람들은 지방에서도 지상파 DMB 서비스 되는 줄 아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또 단말기 구입하겠죠. 그리고 나서 안 되는 거 알면 또 분통 터뜨릴 테고….”

비수도권 연내 서비스 불가능

방송정책의 주무기관인 방송위원회 홈페이지 사이버 민원실에는 이 같은 지방 시청자들의 볼멘소리가 수시로 올라온다. 그중에는 “지방 사람들은 사람도 아니냐” “대한민국 국민은 평등권을 갖고 있다” 등등 지방주민으로서 소외감을 토로하는 질타가 대부분이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서비스가 언제쯤 시작될지 그 시기만이라도 알려달라는 호소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방송위의 반응은 묵묵부답. 그도 그럴 것이 지역 지상파 DMB 정책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방송 권역 설정 문제조차 아직 매듭을 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방송위의 정책 목표는 올 연말까지 비수도권 지역에도 지상파 DMB 서비스를 실시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6월 말까지 사업자 선정 공고를 내고 8월에는 사업자 선정 절차를 마무리한다는 일정표를 갖고 있었다. 사업자들이 중계소 등 방송 시설과 인프라를 갖추는 데 3개월 이상의 기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일정은 방송 권역 설정 문제가 꼬이면서 크게 어긋나버렸다. 방송위는 지난 3월 말 지상파 DMB의 조속한 전국화를 위해선 규모의 경제를 통한 사업성 확보가 필요하다는 명분 아래 비수도권 방송 권역을 단일 권역으로 결정했는데, 이에 대해 MBC와 지역민방, 전국언론노동조합 등이 지방화에 역행하고 지역성도 살릴 수 없는 방안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그 와중에 때마침 결정의 당사자인 2기 방송위원들의 임기가 5월로 만료되고 3기 방송위원 선임이 지연되면서 비수도권 지상파 DMB 정책은 대책 없이 장기 표류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한동안 난항을 거듭했던 방송 권역 설정 문제는 지난 7월 출범한 3기 방송위가 최근 재논의를 검토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방송위는 9월 중으로 단일 권역 방안과 6개 권역 방안의 장단점을 놓고 다시금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할 것으로 최근 알려졌다.

그러나 방송 권역 설정에 대한 재논의의 결론이 어떻게 나더라도 비수도권 지상파 DMB의 연내 서비스는 이미 물 건너갔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정책 방안 공표, 사업자 선정, 사업자들의 방송 준비 등에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당초 약속을 지키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방송위의 정책 결정이 늦어지면서 전체 지상파 DMB 업계가 입은 손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우선 이미 수신기를 구입하고도 방송 서비스를 받지 못한 지방 시청자들로부터 신뢰를 잃은 점이 가장 큰 타격이다. 게다가 시장 확대가 지연돼 지상파 DMB 방송사들과 수신기 및 부품 제조업체들의 수익성 확보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광고 매출 마이너스 성장

실제 지난해 12월 먼저 출범한 수도권 지상파 DMB 사업자 6개사의 현재 실적을 보면 참담하기 짝이 없다. 지난 8월 6개사의 전체 광고 매출은 고작 1억2,000만원. 한 개 방송사도 아니고 6개 방송사를 통틀어 올린 매출이다. 이를 평균하면 한 개 방송사가 한 달에 겨우 2,000만원 남짓 벌고 있다는 계산이다.

그나마 지난 4월부터 6월까지는 광고 매출이 성장세를 보였지만 이후로는 다시 내리막길이다. 수신기 보급 대수가 매월 20만 대 가량씩 늘어 7월말 현재 142만 대에 이른 점을 감안하면 광고 매출의 마이너스 성장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지상파 DMB는 가입자로부터 매월 사용 요금를 받는 위성 DMB와 달리 무료 서비스이기 때문에 광고가 유일한 수익원이다. 때문에 광고 매출이 성장하지 않는 이상 돈을 벌 방법이 없다. 문제는 아직까지 지상파 DMB에 대한 광고주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다는 데 있다.

한국방송협회 산하 지상파DMB특별위원회(지특위) 김민종 팀장은 이에 대해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광고주들이 지상파 DMB를 매체로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신생 매체이기 때문에 광고 효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당초 지상파 DMB 업계에서는 올해 안에 200만 대 정도의 수신기가 보급될 것으로 내다봤다. 200만 대는 지상파 DMB 사업자들의 광고 영업을 대행하는 한국방송광고공사가 광고 시장 형성의 조건으로 전망한 수치. 현재 추세로 보면 연말까지 200만 대 달성은 가능할 것으로 보이지만 문제는 광고 시장이 당초 예상처럼 따라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업계 "다 망할 것" 자조·한탄 이어져

▲ 승용차에 탄 한 여성이 출발 전에 디상파 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DMB)을 시청하기 위해 차량용 단말기를 조작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수신기가 500만 대는 보급돼야 지상파 DMB가 광고 매체로서 시장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수정된 전망이 나오고 있다. 최근의 보급 추세가 계속 이어진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 500만 대는 2008년께 가야 달성할 수 있다.

하지만 그때까지 지상파 DMB 사업자들이 버틸 수 있을 지가 현재로서는 의문이다. 특히 자본력과 콘텐츠를 갖춘 KBS, MBC, SBS 등 공중파 계열사와 달리 유원미디어와 한국DMB 등 신생사들은 시장이 성숙되기 전에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판국이다. 실제 업계에서는 ‘2008년이 오기 전에 모두 망할 것 같다’는 자조와 한탄이 적잖이 들리고 있다.

이와 관련, 한국DMB 관계자는 “자본금 300억원 중 150억원을 이미 썼는데 앞으로도 송신소 등 설비에 대한 추가 투자를 계속해야 한다”며 “그런데 한 달 수입은 7월의 경우 고작 1,700만원이었다. 이것으로는 매월 3,000만원 가량 나오는 전기통신비도 못 댈 지경”이라고 울상이다.

현재로선 지상파 DMB 업계가 지금의 난국을 돌파할 뾰족한 대책은 없어 보인다. 자체적으로 새로운 수익모델을 개발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이마저도 영향력이 달리는 신생 매체로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나마 기대를 걸 수 있는 돌파구는 지상파 DMB 서비스가 이른 시간 내에 전국적으로 실시되는 것이다. 지특위 김민종 팀장은 “비수도권 지역에도 서비스가 실시되면 지상파 DMB의 이동성과 완결성이 명실상부하게 확보되기 때문에 시장 확대에 긍정적인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출범 한 돌도 맞기 전에 혹독한 수익 가뭄에 봉착한 ‘내 손 안의 TV’ 지상파 DMB. 이용자도 사업자도 서비스 전국 확대에 목말라 하고 있다.

콘텐츠 부실 위성 DMB도 "볼 게 없어요"

"위성 DMB요? 요즘은 일본 프로야구 이승엽 선수 경기와 미국 프로야구 중계 때문에 자주 보는 편이죠. 가끔 영화나 YTN 뉴스도 봅니다. 그밖에는 별로 볼 게 없어요."

위성 DMB가 출범한 직후인 지난해 여름 DMB폰을 구입하고 위성 DMB에 가입한 20대 남성 직장인의 DMB에 대한 평이다. 그는 위성 DMB의 콘텐츠가 초창기보다는 좀 더 풍성해졌지만 전체적으로 봐서는 여전히 흡인력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DMB의 선발 주자인 위성 DMB는 언제 어디서나 TV 시청이 가능하다는 것을 무기로 서비스 초기 상당한 관심을 불러모았다. 그 덕분에 처음에는 가입 행렬이 이어졌으나 이내 기세가 꺾이고 말았다.

원인은 역시 부실한 콘텐츠였다. 대부분 채널이 케이블 TV 프로그램을 재탕한 데다 시청률이 높은 지상파 방송의 재송신은 이뤄지지 않았다. 사업자인 TU미디어가 자체 제작하는 채널 블루만이 새롭고 참신한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샀을 뿐이다.

TU미디어는 지난해 서비스 원년 가입자 수를 최대 100만 명으로 내다보며 호기롭게 출발했으나 이후 60만 명, 30만 명으로 단계적으로 목표치를 낮출 수밖에 없었다. 시장의 호응이 예상과 달리 미지근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가입자 수는 약 70만 명으로 알려졌다.

이러다 보니 경영실적이 좋을 리 없다. TU미디어는 지난달 반기보고서를 통해 올해 상반기 38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순손실도 436억여 원에 달했다. 지난해 성적표는 매출 215억여 원, 영업적자 903억여 원, 순손실 964억여 원. 이런 성적은 설비투자 등으로 비용 부담은 계속 늘어난 반면 가입자 확보는 여전히 소걸음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TU미디어의 최대주주인 SK텔레콤의 한 관계자는 "회사 내부에서도 TU미디어 때문에 적지 않은 고민을 한다. 엄청난 돈을 투자해 시작한 사업이니까 계속 밀어줘야 한다는 의견과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에 무작정 퍼주기를 계속할 수는 없다는 견해가 엇갈리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정부가 위성 DMB와 지상파 DMB로 사업자를 이원화하는 바람에 둘 다 죽게 만드는 우를 범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덧붙였다.



▲ 2005년 12월 지상파 DMB 개국식, 야심찬 출발에도 불구 방송 권역 설정조차 매듭짓지 못하고 있다. / 이호재 기자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