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위스키 시장 정체 타개 위해 이례적 테이스팅 행사 등 공격적 마케팅 나서

‘위스키도 와인처럼 될 수는 없을까?!’

위스키가 와인을 따라잡기 위한 시동을 걸었다. 위스키도 와인처럼 시음회(테이스팅)를 개최하고 커뮤니티(동호회)를 구성해 음식을 맛보며 향과 맛을 음미하는 행사를 갖는 등 와인과 유사한 마케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위스키 시장이 수년째 침체를 보이는 반면 와인 시장은 해마다 높은 신장세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위스키가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 중 하나는 룸살롱. 위스키 제조 및 수입 판매사들이 심야에 밤업소들을 다니거나 속칭 ‘마담’과 지배인들을 초청, 거액을 들여 대규모 판촉행사를 열던 것이 불과 몇 년 전이다.

하지만 위스키 브랜드들은 지금 접대 문화의 상징인 룸살롱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대신 위스키 애호 고객들을 초청, 이들을 위해 파티를 열어 주거나 커뮤니티를 만들어 서로 교류하고 맛과 향을 알리는 데 더 투자를 하고 있다.

1953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대관식에 헌정된 로얄 살루트가 지난 13일 주한 영국대사관저 정원에서 연 ‘로얄 살루트 가든파티’는 위스키 변신의 일단을 말해준다. 이 위스키를 즐겨 마시는 최고 고객(VVIPㆍVery very important persons) 100여 명만을 초청한 이 행사는 영국 귀족 문화의 정수를 체험할 수 있도록 기획된 파티.

울트라 프리미엄 위스키란 명성에 걸맞게 이날 행사는 위스키가 블렌딩되는 예술적인 과정을 클래식 음악과 결합한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다양한 악기들의 수준 높은 연주를 들으면서 만찬과 함께 로얄 살루트를 구성하는 몰트 위스키들을 음미하고 위스키 제품이 어떻게 탄생되는지 경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 지휘자 금난새와 유라시안 앙상블의 클래식 음악공연이 곁들여졌다.

해외의 와인 메이커들이 방한, 국내 와인 애호가들을 초청해 와인 테이스팅 행사를 갖는 것은 보편화돼 있는데 위스키가 이런 행사를 벌인다는 것은 무척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와인에 대한 소개와 음식과의 조화를 설명하듯 위스키도 다양한 맛과 향을 내세우며 고객들에게 같은 시도를 하는 셈. 또 와인 애호가들이 와인 메이커 등의 주최와 소개로 함께 와인을 즐기는 커뮤니티를 갖는 것처럼 로얄 살루트 역시 위스키 커뮤니티를 형성하도록 기회를 만들어 준 격이 됐다.

행사를 진행한 진로발렌타인스 유호성 차장은 “참가자들은 만찬을 나누며 스코틀랜드의 전통 건배의식을 배우는 등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며 “종전 신제품 런칭이나 발표 때 관계사나 고객들을 초청한 적은 있지만 순수하게 고객들만을 위해 파티를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이날 행사에는 스코틀랜드의 토크힐 이안 캠벨 13대 아가일 공작과 워릭 모리스 주한영국대사 부부까지 나서 자국 브랜드 마케팅에 힘을 실었다.

또 싱글몰트 스카치 위스키 브랜드 글렌피딕도 브랜드 홍보대사인 이안 밀러가 최근 ‘발베니 더블우드 12년산’의 출시에 맞춰 한국을 찾아 ‘위스키 클래스’를 가졌다. 위스키 관계자들을 초청해 벌인 이 행사는 이름 그대로 몰트 위스키의 맛과 향에 대한 일종의 ‘수업 시간’.

30년간의 스카치 위스키 제조 경력을 지니고 있으며 위스키 향 감별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증류주인 위스키의 감별, 보틀링, 제조는 물론 다양한 맛과 향에 대한 설명과 평가를 제공했다. 와인의 경우 포도나무의 재배부터 수확, 와인의 제조와 숙성 등 모든 과정에 대해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에 비춰볼 때 위스키도 ‘수업을 할 만한’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을 입증한 셈이다.

수입사인 윌리엄그랜트앤선스 인터내셔널의 박준호 동북아지사장은 “위스키를 폭탄주용으로 여겼던 예년과 달리 자신의 취향과 스타일에 맞는 브랜드를 선별해 고유한 맛을 즐기도록 하는 것이 위스키의 새로운 트렌드”라고 소개했다. 튤립모양의 유리잔을 이용해 위스키 향 맡기, 손바닥의 열을 이용해 향 우려내기 등이 역시 와인에서처럼 그가 제시한 위스키의 새로운 시도들이다.

와인메이커들이 음식, 와인과 더불어 시간을 함께 하는 ‘와인 메이커스 디너’를 갖듯 위스키에서도 같은 시도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올 초 싱글몰트 위스키 맥캘란이 서울 강남의 시안에서 가진 ‘위스키 디너’가 바로 그것.

맥캘란은 대범하게도(?) 국내에 내로라 할 만한 와인 소믈리에들을 초청, ‘위스키 & 다이닝’이라는 주제로 와인에 도전장을 던졌다. 와인 디너처럼 음식마다 어울리는 위스키를 놓고 시음을 하면서 설명을 곁들인 것이 이날 행사의 진행 요령.

위스키는 아니지만 다른 증류주 주종에서도 와인 트렌드를 따르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보드카 브랜드인 앱솔루트는 역시 9월 초 남산의 레스토랑 나오스노바에 유명 바텐더들을 초청, 칵테일 시음회를 가졌다.

여성스럽고 달콤한 복숭아 향을 담고 있다는 앱솔루트 어피치의 출시에 맞춰 열린 이날 행사 역시 앱솔루트 전속 바텐더가 신제품 소개와 함께 칵테일 만드는 법을 재미나게 프리젠테이션하는 시간으로 꾸며졌다.

이처럼 위스키가 ‘흉내내기라고 할 만큼’ 와인 따라잡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은 한마디로 위스키 시장의 침체 때문이다.

아직까지 불황까지는 아니더라도 국내에서 위스키는 2002년 이후 정체 상태를 보이고 있다. 그해 357만 상자를 소비, 정점을 기록한 국내 위스키 시장은 2003년 320만, 2004년 262만, 2005년 268만상자로 하락하거나 정체 길로 접어들었다. 올해 시장 전망도 260만 상자로 그리 밝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에 반해 국내에서 두드러지게 약진 현상을 보이고 있는 술은 와인이다. 술에 대한 다양하고도 풍부한 콘텐츠, 거기에다 웰빙 트렌드라는 뒷바람까지 받고 전진하고 있는 와인 시장은 해마다 증가세가 뚜렷하다.

2000년 1,980만 달러이던 와인 수입량은 2001년 2,310만 달러, 2002년 2,943만 달러, 2003년 4,578만 달러, 2004년 5,798만 달러, 2005년 6,765만 달러로 지치지 않는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다. 특히 과거 고가의 위스키를 주로 소비하던 고소득 계층들이 최근 와인으로 많이 돌아서고 있다는 점 또한 위스키 업계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역풍이기도 하다.

한국주류수입협회 김순중 부회장은 “와인의 성장세에 비춰 볼 때 위스키 등 다른 주류들이 긴장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위스키가 과연 시장 정체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아니면 다시 성장세로 돌아설 수 있을지 위스키 업계의 노력을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