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거품 붕괴 후 개발자 썰물, 인도 등서 수혈 고육책신제품 개발 포기도… "국내 인재 양성 없인 IT 미래 없다"

“우리 같은 영세한 중소기업들은 개발자를 확보하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 됐습니다. IT(정보기술) 개발 업무는 경력이 상당히 중요한데 막상 경력이 있는 개발자를 구하려면 급여 부담이 크기 때문이죠. 지금 데리고 있는 개발자들도 언제 떠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한 중소 시스템통합(SI)업체 경영자가 넋두리처럼 내뱉은 말이다. 그에 따르면 쓸 만한 인재를 확보하기가 너무 힘들어 자신도 직접 개발자처럼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한다.

IT업계의 근간은 유능한 인력이다. 여타 업종과 달리 개인의 창의성과 기술력, 노하우에 의존하는 비중이 훨씬 큰 산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내 IT업계가 인재를 못 구해서 벌써 몇 해째 울상을 짓고 있다. 일부 업체들은 개발자가 없어 아예 신제품 개발을 포기할 정도로 IT업계의 인력난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우울한 소식이다.

2000년 전후 거세게 불어 닥친 벤처 열풍의 중심에는 IT업종이 있었다. 수많은 젊은 인재들이 제2의 빌 게이츠를 꿈꾸며 기회의 땅 IT업계로 너나없이 몰려 들었다. 그러나 이후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그들도 ‘탈(脫) IT엑소더스’ 행렬로 U턴 했다. 더 이상 그 바닥에서 기대할 게 없다는 실망에서다.

무엇이 그들의 발걸음을 되돌리게 했을까. 대다수 IT업계 개발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밥 먹듯 이어지는 야근과 그에 턱없이 못 미치는 보수’를 첫 번째 이유로 꼽는다. 물론 한 분야에서 오랜 경력을 쌓아 인정을 받으면 연봉도 올라가고 스카우트 제의도 많이 들어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업종에 비해 직업 수명이 짧아 미래가 불안하다는 것은 이직을 선택하게 되는 중요한 사유다.

IT업종을 떠난 한 전직 개발자는 “이 분야는 신기술이 끊임없이 나오기 때문에 공부는 공부대로 계속해야 하는 데다 빠듯한 시간 내에 개발을 완료하라고 닦달을 하는 통에 밤샘 근무는 보통”이라며 “그렇다고 대우를 해주나, 월급을 많이 주나, 게다가 마흔이 넘으면 살아 남기도 힘든 터에 누가 이런 직업을 갖겠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IT벤처기업연합회 허영구 정책기획팀장도 “요즘 젊은 층이 보수와 근무 여건, 자기계발 기회, 삶의 여유 등을 많이 따지다 보니 중소 IT기업들이 직원 채용에 큰 애로를 겪는 게 사실”이라며 “더욱이 인재를 애써 키워 놓으면 대기업에서 스카우트해 가버리는 것도 중소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같은 IT업계라고 해도 다 같이 인력난을 겪는 것은 아니다. 삼성SDS, LG-CNS 등 재벌계열 SI업체들에게 인력난은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중소기업들이 도저히 엄두를 못 내는 연봉과 처우를 해주는 까닭에 우수 인재들을 손쉽게 채용할 수 있다.

대기업과 공동 프로젝트를 자주 진행하는 한 중소업체 대표는 “팀장급 핵심 개발자에게는 대기업보다 오히려 많은 연봉을 주면서 ‘모시고’ 있다”며 “그 때문에 대기업과 공동 작업을 하고 돌아오면 눈치가 이상해 가슴이 조마조마해진다”고 토로했다.

IT 개발자들은 현장에서 함께 일을 해보면 금세 실력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공동 사업을 하고 싶어도 파견한 인재를 뺏기지나 않을까 걱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신규 개발 인력이 IT업계에 원활히 공급되지 않는 것도 인력난의 근본적 배경으로 꼽힌다. IT업종은 기술 트렌드가 수시로 바뀌고 산업 팽창도 급속하게 진행되는데 그에 맞춰 인재들을 공급해야 할 대학의 교육은 몇 걸음씩 뒤처져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업계 관계자는 “명문대를 졸업했다는 젊은 친구들을 어렵사리 채용하더라도 실력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때문에 많은 업체들이 비교적 검증된 경력자들을 어떻게든 쓰려고 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러다 보니 IT업계에서는 3~4년차 이하의 쓸 만한 신예 개발자를 구경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푸념도 공공연히 들리는 형편이다.

이 같은 현상은 사실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일본 등 IT 선진국들도 공통적으로 처한 국가적 현안이다. 미국, 일본은 벌써 90년대 후반부터 IT 전문인력 부족 사태에 직면했고, 이를 메우려 해외 기술자들에게 눈을 돌리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따르면 앞으로도 IT 전문인력 수급구조가 계속 악화돼 특히 소프트웨어 개발ㆍ설계분야 인력은 2010년께 1만5,000여 명 이상 부족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처럼 IT업계 인력난의 심각성이 커지면서 정부도 사태 해결을 위해 부심하고 있다. 그중 정보통신부가 해외 고급 IT인력에 대해 최장 3년 동안 체류를 보장해주고 국내 취업을 알선해주는 ‘IT카드’ 제도는 중소 IT벤처들의 인력난에 숨통을 조금이나마 틔우는 돌파구 구실을 해주고 있다.

현재 이 제도를 이용해 국내에 들어오는 외국인 기술자는 연간 250명에 달한다. 주로 국내서 크게 부족한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많이 채용되고 있는데 인도 출신자가 가장 많고 베트남, 러시아 출신자들이 뒤를 잇고 있다.

특히 세계적인 IT 기술자 양성 국가로 떠오른 인도 출신자가 ‘IT카드’ 채용 1순위를 차지한 게 눈에 띈다. 업계에 따르면 인도 출신 개발자들은 국내 인력에 비해 적은 보수를 받고도 훨씬 나은 실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채용 업체들이 썩 만족해 한다고 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저비용, 고효율의 인도 기술자에 대한 채용 요구가 늘고 있다”며 “우리가 부족한 분야의 기술 유입 효과도 있다는 측면에서 외국인 기술자 채용은 긍정적인 면이 많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국내 인력 수급구조를 근본적으로 혁신하지 않은 채 해외 인력에 손길을 내미는 것은 미봉책일 뿐이라는 지적도 제기한다. IT산업 경쟁력은 결국 인재 싸움에 달려 있는데 우리 스스로 인재 양성을 게을리하다가는 그동안 쌓아올린 ‘IT 강국’이라는 신화도 하루아침에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껍데기만 번드르르하고 알맹이가 점점 부실해져 가는 ‘IT 코리아’. 미래는 인력 양성 여부에 달려 있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