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통위, 11월 동결 불구 '부동산 시장 상황 따라 조만간 인상' 시사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6일, 국회에서 한명숙 총리가 대독한 새해 예산안 제출과 관련한 시정연설에서 "부동산 시장의 안정은 민생경제 회복과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필수요건이므로 정부는 모든 정책적 역량을 집중해 부동산 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다"고 강조하였다. 그때만 해도 참여정부가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선언한 것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닌 만큼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을 통하여 집값 안정을 위하여 노력하겠노라고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조명될 일은 아닐 법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정부의 부동산 문제 해결 의지가 표출되는 방향이 평당 분양가 억제 등 부동산과 직접 연결된 쪽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혹시 그보다 더 강력한 다른 쪽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였다. 그건 바로 금리였다. 9일에 열렸던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두고 한국은행이 부동산을 잡기 위하여 금리를 건드릴지 모른다는 분석이 채권시장을 중심으로 금융시장에서 나돈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금융시장에 관심을 둔 사람이라면 11월의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콜 금리가 인상될 가능성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도무지 한국은행이 콜 금리를 올릴만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우선 글로벌 시장에서 달러 금리가 더 인상되지 않고 상당기간 동결되고 있었기에 우리나라와 미국과의 금리 격차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다 국제 유가는 겨울을 앞두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하락 안정세를 보이고 있어 인플레이션을 크게 우려할 만한 상태도 아니었던 터. 아울러 아직 경제지표들의 해석에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내년도 경제 성장 둔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여전한 것이 사실이고, 또한 내년도에 대통령선거가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경기 부양을 위하여 금리가 인하되기는 어렵더라도 최소한 금리가 동결될 것이라는 게 대부분 시장 참여자들의 예상이었다.

그러나 지난주 들어서면서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부산대학교 강연에서 피셔 방정식까지 언급하며 적정금리를 운위하자 시장의 분위기는 돌변하였다. 10월 초,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고 발표하였을 당시 채권가격이 급등하고 금리가 하락한 것을 정점으로 하여 금리는 상승하는 추세로 바뀌었던 터. 그런데다 노 대통령의 새해 예산안 제출과 관련된 국회 시정연설에서 부동산 문제가 다시 부각되자 그 무게는 점점 시장을 짓누르기 시작하였다. 이러다가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혹시 금리가 깜짝 인상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시장 일각에서 솔솔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민간경제연구소 등 "금리 올려야"

이런 생각에 불을 붙인 것은 지난주 초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발표한 ‘주택시장 불안과 금리'라는 보고서였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국내 부동산 가격에 거품이 끼어 있으며 특히 이들 거품, 즉 버블의 3분의 2 이상이 저금리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또한 이 연구소는 저금리가 주택가격 급등의 가장 큰 원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경기 상승기의 금리 조절 속도가 늦어 부동산 시장의 과열을 불렀다고 지적하였다. 따라서 다음 경기 확장기에는 균형금리 수준까지 신속하게 금리를 올려 주택시장의 근본적 안정을 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6일 금감원 검사역(왼쪽)들이 주택담보대출 실태에 대한 긴급 점검을 하고 있다. 박서강 기자
더구나 삼성경제연구소가 부동산 시장의 과열에 대한 보고서를 내기 바로 전날인 5일, 국정홍보처가 운영하는 국정브리핑에서도 부동산 가격 억제를 위해서는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실렸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채권시장은 더욱 술렁이기 시작하였다.

국정브리핑은 ‘세종로 창, 무주택자가 듣고 싶어 하는 희망메시지’라는 칼럼에서 저금리로 인하여 엄청난 돈이 시장에 풀렸기 때문에 집값이 오른 것이라고 전제하고 근본적으로 부동산을 잡으려면 금리가 올라 은행에서 돈을 빌려 아파트를 사는 것이 부담스러워지거나, 은행으로부터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조건이 까다로워지거나, 혹은 적절한 성장 범위 안에서 통화량을 줄이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국은행 총재의 매파적인 발언, 거기에다 부동산을 잡으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 더구나 이와 연관된 여러 정황들이 포착되자 시장 금리는 지속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하여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두고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4.73%, 그리고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 4.93%에 이르는 수준에 이르렀다.

더구나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두고 청와대의 김수현 사회정책 비서관이 한국은행 총재를 만나서 금리 정책에 대한 청와대의 입장을 전달했다는 식의 보도까지 나오면서 시장의 불안감은 클라이맥스에 이르게 된다. 금융시장에서는 부동산을 억제하기 위하여 금리를 인상하는 것이 마치 기정사실인 양 간주되기까지 하였던 것. 청와대측은 김 비서관이 이성태 총재를 만났지만 금리 정책에 대한 얘기는 나누지 않았다고 해명하였으나, 금통위를 앞두고 부동산 정책을 담당하는 비서관이 한국은행 총재를 면담한 것이 이례적인 일이었던 만큼 시장에서는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였다.

채권시장선 벌써 금리 들먹

그리고 11월 9일, 운명의 날은 밝았다. 채권시장의 참여자들, 그리고 주식시장의 투자자들은 숨을 죽이고 금융통화위원회의 결정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현행 금리를 동결하는 쪽으로 결론을 냈다. 일단 다음번 금통위까지는 시간을 번 셈. 아무래도 한국은행으로서는 부동산을 억제한다는 명분만으로 금리를 인상하기에는 부담스러웠을 터이다.

금리 인상은 부동산 가격을 잡아야 한다는 절대적인 사명감을 안고 있는 정부로서는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전제에서 선택하여야 하는 사실상의 마지막 카드이다. 금리를 올려 부동산 담보대출을 억제할 경우, 급격히 열기를 띠고 있는 부동산 시장을 식히는 데에는 직효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금리를 올릴 경우, 경기에 미치는 역효과도 만만치 않아서 금통위로서는 쉽사리 선택할 카드는 아니었다. 특히 금리를 인상하여 부동산 시장이 급랭한다면 이에 따르는 부동산 담보대출의 부실화, 그리고 금융기관의 연쇄 부실화 우려 등 부작용도 대단히 우려되는 대목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부동산 문제가 크다고 할지라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로지 부동산 정책에 올인하지 않는 한 금리를 쉽게 인상하기는 어려운 법. 결국 이번에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리지 않은 이유이다.

하지만 무언가 보여주어야 할 정부의 입장으로서는 금리 인상이라는 정책을 전혀 쓰지도 못하고 버려두는 카드로 방치해 둘 수는 없다. 앞으로도 기회만 되면 카드를 만지작거리면서 부동산 시장에 대하여 무언의 경고로 사용하려 할 것이다.

이번의 해프닝, 즉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 그리고 국정브리핑의 보도, 청와대 비서관의 한국은행 총재 면담으로 이어진 일련의 사태는 결국 ‘아무 일도 아닌 것’으로 결말지어졌다. 그러나 이번에 결과적으로 금리는 인상되지 않았으나 일련의 일들이 결코 아무 일도 아닌 것으로 봉합될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채권 시장이 이제는 부동산 가격의 급등을 억제하기 위하여 금리가 정책수단으로 사용될 가능성을 피부에 와 닿는 일로 인지하게 되었다는 것은, 당장 다음번 금통위는 물론이고 내내 금리 인상에 대한 경계 심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적정 금리 수준보다는 낮은 상태이지만 경기와 보조를 맞추느라 콜 금리를 한동안 인상하지 않았던 한국은행으로서야 바라던 바이다. 당장은 아닐지라도 예컨대 연말이나 혹은 내년 초 무렵에 금리 인상을 단행할 여건이 이래저래 무르익은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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