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신한·국민은행 등 중국·베트남 등 해외법인 설립 잰걸음전체 영업이익 중 해외 비중 0.01%·인재난 등 아직 갈 길 멀어

외환위기 이후 물밀듯이 들어온 외국계 은행에 안방을 적잖이 잠식당했던 국내 은행들이 해외진출이라는 역습 카드를 본격적으로 꺼내 들고 있다.

세계 10위권의 국가경제와 글로벌 시장에서 상당한 명성을 얻고 있는 IT기업들과 달리 국내 은행들의 경쟁력이 해외 유수 은행에 비해 아직 많이 뒤처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이후 지속된 구조조정과 경영 효율화 달성, 자산 불리기 등으로 최근 국내 은행들의 경쟁력은 상당 부분 향상됐다. 또한 국내 시장에서 외국계 은행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얻은 노하우도 적지 않다. 이제는 해외에서도 도전장을 던질 만한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한국금융연구원 박동창 초빙연구위원은 “주요 은행이 세계 100대 은행 안에 들어가는 등 은행 규모 측면에서 경쟁력이 생겼을 뿐 아니라 효율성 측면에서도 비용 수익률(cost/income ratio)이 40%선으로 오히려 주요 해외 은행의 50% 선보다 낫다”며 국내 은행들의 해외진출 능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신한은행의 홍콩 IB센터 개소식
국내 시장에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점도 해외로 눈을 돌리게 만드는 근본적 요인 중 하나다. 좁은 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 환경을 벗어나 이른바 블루오션에서 미래를 찾자는 전략이다.

이에 대해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국내 은행들은 경제성장 둔화에 따른 은행산업 성장 한계 등을 고려해 미래 성장동력을 창출하는 차원에서 해외사업 부문을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연말 황영기 우리은행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새해는 글로벌 영업력 확대의 원년이 될 것”이라고 야심찬 포부를 드러냈다. 구체적으로는 중국과 인도네시아 시장 공략 의사를 밝혔다. 중국의 경우 연안지역 주요 도시와 동북3성 지역에 지점을 설치해 현지 영업망을 확대하고 인도네시아에서도 현지법인 점포를 확충하는 한편 중소 지방은행 인수도 검토하겠다는 것.

우리은행은 지난해에도 눈에 띄게 해외 네트워크 확충 작업을 벌였다. 미국 동부지역에서 영업 중인 우리아메리카은행의 지점을 추가 개점해 현지 소매 영업의 토착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한편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고 있는 베트남에서도 호치민 지점을 열어 영업망을 확대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역외투자은행인 홍콩우리투자은행을 설립한 것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투자금융을 전담하기 위해 조직된 이 은행은 신디케이티드론,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 국제투자 업무를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등 신규 수익원 발굴을 모색한다는 계획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새해에는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카자흐스탄 등 신흥 핵심시장을 중심으로 현지은행 인수 또는 지분 참여 등 진출 형태를 다양화할 것을 검토 중이며 브릭스(BRICs) 국가에도 현지법인, 지점, 사무소 등을 추가 개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11월 홍콩 현지법인인 신한아주금융유한공사를 투자은행(IB) 업무만을 전담하는 IB센터로 전환했다. 이는 향후 해외 IB 영업을 펼쳐나가기 위한 거점 점포로 육성한다는 전략에 따른 것이다.

그동안 신한은행은 2004년부터 IB 분야 신시장 개척과 글로벌 은행으로의 도약을 위한 해외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태스크포스 팀을 구성해 해외 IB센터 설립을 추진해 왔다.

신한아주금융유한공사는 향후 글로벌 IB기관과의 제휴 및 협력관계 구축을 통해 프로젝트 파이낸싱, 기업 인수합병(M&A) 등 전통적인 IB 업무에 대한 금융을 주선하는 한편 중국, 동남아시아 등 신흥 시장에 대한 시장 조사 및 정보 수집을 바탕으로 해당 지역에서 주도적인 IB 업무를 수행할 것이라는 게 은행 측의 설명이다.

신한은행의 해외진출 전략과 관련, 한 관계자는 “시장 접근성이 높고 경쟁 우위 확보가 가능한 지역에 우선 진출하는 것을 원칙으로 현재 17개인 해외 네트워크를 향후 2년 내 30개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외환은행을 인수해 해외 거점으로 활용하려던 국민은행의 경우도 당초 계획이 틀어졌지만 해외진출 의지는 더욱 불타고 있다. 새해에는 아시아 지역 7개 신흥 국가의 소매금융 분야에 진출하는 등 국내 시장을 넘어 ‘아시아 선도은행’ 도약을 노리고 있다.

이를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한 조직 구축도 이뤄졌다. 국민은행은 3일 단행된 신년 조직개편에서 은행장 직속의 해외사업본부를 신설, 해외 진출 전략을 총괄하도록 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아시아 금융시장을 선도하는 은행이 되겠다는 강정원 행장의 의지가 고스란히 반영된 조치”라고 풀이했다.

시중은행 ‘빅4’에 포함되는 하나은행을 보유한 하나금융그룹도 지난해 12월 그룹 출범 1주년을 맞아 2009년까지 ‘자산 200조원, 동아시아 리딩뱅크, 세계 100대 금융그룹 진입’ 달성이라는 거대한 청사진을 내걸었다. 이를 위해 하나금융은 해외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중국 동북 3성, 미주, 동남아시아 등 해외진출을 본격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처럼 국내 은행들이 해외진출 행보를 재촉하고 있지만 글로벌 뱅크의 길은 아직 멀기만 하다. 외환위기 이후 해외지점과 현지법인 등 해외 영업망을 대거 감축했다가 최근 몇 년 동안 중국 시장 등을 중심으로 네트워크 확충에 나섰지만 일단 숫자 싸움에서 해외 유수 은행과 경쟁이 안 된다.

국내 은행의 전체 점포 대비 해외 점포 수는 1.7% 수준. HSBC(79.7%), 시티(78.2%), 도이치뱅크(72.6%) 등 글로벌 은행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치다. 해외 매출 비중 역시 평균 2%에 못 미치며 영업이익 비중 또한 평균 0.01%로 세계 40대 은행의 평균치 29.8%(2005년 기준)에 비해 극히 낮다.

게다가 지금까지의 해외 영업은 대부분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이나 교민들을 상대로 이뤄져 엄밀한 의미에서 해외 진출이라고 볼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국내 은행들의 해외 진출 여지는 더욱 크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글로벌 뱅크로의 성장은 이제부터라는 것이다.

그 전에 선결 과제가 있다. 해외 진출을 수행할 수 있는 조직을 구축하고 해당 시장에 맞는 시스템과 상품을 완비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현지화 전략을 추진할 수 있는 인재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 현재로서는 국내 은행들의 해외 전문가층이 매우 얕다. 그 때문에 최근 주요 은행들은 임직원 해외 연수를 강화하고 현지인 채용을 늘리는 등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아울러 현지 은행의 공격적 M&A도 해외 진출의 성공을 앞당길 수 있는 강력한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와 관련, 박동창 연구위원은 “현재의 글로벌 은행들은 대부분 M&A를 통해 덩치를 키우는 식으로 해외진출을 해왔다”며 “금융시장 개방은 세계적 대세인 데다 설혹 진출 국가에 배타적 분위기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해야 글로벌 은행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주요 은행들은 최근 수 년 동안 M&A 등을 통해 자산 규모를 크게 불렸을 뿐 아니라 막대한 수익으로 유동성도 풍부하게 축적했다. 해외 M&A라고 못할 게 없는 여건이다. 외국계 은행이 국내 은행을 먹는 모습을 보며 씁쓸해 하던 국민들은 그 반대의 모습을 조만간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