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진 교체되면서 투자비용·기술 인력 확보·물류 등 문제점 수면 위로현대제철 측 '자신감'불구, 업계선 "청사진 실현까지는 첩첩산중" 지적

현대 가문의 오랜 숙원이 실현될까, 아니면 지나친 무리수로 부메랑이 될 수 있을까.

현대제철이 충남 당진에 일관제철소 건립을 추진하면서 사업 성공을 둘러싼 논란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해 10월 27일 기공식을 가질 때만 해도 사업의 미래 전망에 대해 핑크빛 일색이던 분위기였지만 최근 들어서는 경계론이 조금씩 제기되기 있다.

현대제철의 일관제철소 도전은 철강업계, 나아가 전체 한국 경제 차원에서도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정몽구 회장이 이끄는 현대차 그룹이 벌이는 초대형 프로젝트 사업이기 때문이다. 또 지금까지 포스코가 독점적인 지위를 누려온 국내 철강 원재료 시장에 처음으로 경쟁 체제가 도입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각별하다.

지난해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거행된 일관제철소 기공식에 노무현 대통령까지 참석해 국내외 고위 인사 1,000여 명과 함께 축하의 박수를 보낸 것만으로도 그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현대차 그룹의 일관제철소 건립을 통한 철강 사업 도전은 비단 국내 문제로만 그치지는 않는다. 사업이 잘 진척된다면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그룹)가 일관제철소를 포함한 철강 사업에 뛰어들어 성공하는 첫 사례가 된다. 아직까지 자동차 회사가 철강에 도전해 성공한 경우는 전 세계를 통틀어 한 건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자동차 제조 회사의 철강사업 도전이 그만큼 쉬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역설한다. 그래서 성공하면 ‘신화’로까지 칭송받을 수도 있지만 그만큼 ‘위험성’도 크다고 할 수 있다.

일관제철소란 고로(용광로)에 철광석과 유연탄을 넣어 쇳물을 만들고, 여기서 나온 쇳덩어리로 열연강판과 후판 등 각종 제품을 만드는 제철소를 말한다. 고로에서 쇳물을 만들고(제선), 불순물을 제거한 후(제강) 쇠판을 뽑아내 압축하는(압연) 세 가지 과정을 모두 갖춰야 종합제철소라고도 할 수 있다.

현대차 그룹이 일관제철소 건설에 나선 데는 그간 철강 사업에서 거둔 ‘성공 스토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는 사업 실적을 보면 그대로 알 수 있다. 현대차 계열인 현대제철이 ‘흑자 행진’을 벌인 지 벌써 23년째다.

특히 현대제철은 지난 5년간 사상 최대의 흑자를 기록해왔다. 해마다 영업이익률이 10% 이상에 달할 만큼 호성적을 올린 것. 2002년 현대제철의 영업이익은 2,919억원이었는데 이듬해인 2003년에는 4,227억원으로 무려 44.8%나 늘어났다. 이런 상승세는 계속 이어져 2004년에는 6,300억원으로 또다시 49.0%나 신장했다. 이어 2005년에 5,070억원, 또 지난해에도 5,917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현대차 그룹은 이와 함께 현대하이스코와 BNG스틸(전 삼미특수강) 등 또 다른 철강 회사를 2개나 더 거느리고 있다. 특히 현대제철은 동국제강과 함께 고철을 녹일 수 있는 전기로를 갖춘 국내 유이(唯二)의 철강 회사이기도 하다.

그동안 갖지 못했던 것이라면 종합제철소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는 고로, 즉 일관제철소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현대제철 측에서는 “우리는 갖고 있는 여유 자금이 많아 재원 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까지 내심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이런 장기간에 걸친 구체적인 실적에다 자신감까지 뒷받침되어선지 지난해 말 기공식 전후만 해도 현대차 그룹의 일관제철소 도전은 장밋빛 청사진으로만 그려졌다. 행여 부정적인 말을 꺼낸다면 ‘일부러 찬물을 끼얹는 짓’으로 보이는 측면도 없진 않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2~3개월이 지나 새해가 시작되면서 사정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현대제철의 일관제철소 건설과 운용에 투입될 자금 규모에 대한 질문이 연거푸 제기되고 있다. 더불어 핵심 경영진의 인사 문제도 불거지는 사태도 발생했다. 사업 초기 단계여서 심각한 내용이나 수준은 아닐지라도 그동안 장밋빛에 가려 표면화되지 않은 저간의 문제점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는 점에서 가볍게 넘길 사안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현대차 그룹의 일관제철소 건설 발진에 ‘황색 신호’가 처음 켜진 것은 올해 2월 중순. 현대제철의 경영진이 전격 교체되면서부터다.

4년간 현대제철의 최고경영자(CEO)로 일관제철소 건설을 진두지휘해 오던 이용도 부회장이 갑작스레 고문으로 물러났고 자금 부문 총책인 강학서 재경본부장은 로템 재경담당으로 자리를 옮긴 것. 이에 앞서 양승석 사장은 지난해 말 다이모스로 전보 발령됐다.

‘겨우 3명이 옮긴 것 아니냐’고 가볍게 넘겨 버릴 수 있을 것 같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모두 일관제철소 건립을 최전선에서 지휘해 오던 경영 사령관들을 교체하였기 때문이다.

또 이들 3명의 퇴진으로 현대제철의 사내 등기임원 전원이 물갈이됐다. 현대제철의 등기이사는 정몽구 회장 한 명만 남아 있고 새 등기이사는 이달 주총에서 새로 선임된다.

또 이용도 전 부회장의 사임까지 포함하면 현대제철은 최근 1년새 세 명의 최고경영자(CEO)를 교체했다. 2005년 11월 김무일 전 부회장, 지난해 12월 양승석 전 사장의 사임까지 합치면 짧은 기간에 내리 세 명의 CEO를 바꾼 셈이다. 이유야 어쨌든 외부에서 지켜 보는 이들에게는 불안한 구석일 수밖에 없다.

급작스런 인사 조치에 대한 궁금증은 고로 사업 투자비용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관제철소 건립에 드는 비용이 당초 언론에 발표한 대로 예상 금액인 5조2,400억원을 넘어설 수 있으며 경영진 교체가 이에 대한 문책성 인사가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 것.

증권가에서 제기된 투자비용에 대한 논란은 나아가 고로 사업 증설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지적으로 비화되고 있다. 양기인 대우증권 연구원은 “당초 계획대로 5조원대의 증설은 문제될 것이 없지만 추가 투자비가 1조원을 넘는다면 자금부담이 불가피하고 또 현재 투자비 내역에 집계되지 않았지만 초기 운전자금도 최대 1조4,000억원 추가로 필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김경중 삼성증권 파트장도 “고로 투자에 대해 불확실성이 제기되고 있다”며 추가 자금이 5조원 이상 들어갈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현대제철은 조목조목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며 반박하고 있다. 이용도 부회장은 사장 2년, 부회장 2년으로 4년간 장수한 경영자로 회사가 잘 되고 있을 때 후진을 위해 용퇴한 것이며 재무통인 강학서 부사장도 매출 규모가 커지고 있는 로템의 회계관리 틀을 잡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또 양승석 전 사장 역시 철강과 유연탄 등 향후 1년 넘게 사용할 원자재를 이미 확보해 놓는 등 임무를 완수했고 신임 박승하 사장은 설비 구매 업무에 전념할 계획이라는 설명이다. 사업을 추진하다 보면 단계별로 업무가 다른데 각각의 역할 또한 다르다는 것이다.

추가 자금 논란이 불거진 데 대해서도 해명한다. 현대제철은 5조2,400억원이 과소 계상된 것이 아니냐고 주장하는 것은 당진공장에 기투자된 부분을 고려하지 않은 계산이라고 반론을 폈다.

당진공장을 인수해 부지를 정비하고 핫코일 공장 설비를 적잖이 갖춰 놓은 것만 1조2,000억원어치가 되고 5,600억원의 설비투자는 아웃소싱으로 해결하면 새롭게 제기된 총 투자비용 7조원과 그대로 맞아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현대제철은 일관제철소 건립이 가져다 줄 긍정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내비친다. 고로가 완성되면 현재 JFE스틸 등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는 자동차용 강판 등의 수입 대체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 계열사인 현대자동차에 고급 강판을 공급함으로써 가격과 품질 경쟁력 면에서도 크게 개선될 것이라는 판단이다. 일반적으로 조선과 중공업, 자동차 생산에서 강세를 보이는 국내 산업 구조상 플러스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철강업계에서는 현대제철의 일관제철소 사업 도전을 우려의 눈빛으로 보는 시선이 만만치 않다. 한마디로 청사진 그대로 실현되려면 첩첩산중이라는 것.

우선 기술의 노하우 측면에서 의문 부호를 던지고 있다. 상식적으로 한번도 고로를 운용해 보지 못한 기업이 공장 가동 후 고급제품을 즉각 생산해 낼 수 있는 지는 두고 봐야 된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일례로 세계 1위의 철강 생산 대국인 중국조차도 아직까지 자동차용 강판을 만들 기술을 갖고 있지 않은 점을 내세운다.

이에 대해 현대제철은 “일본의 JFE스틸이나 독일의 티센그룹으로부터 서로 기술을 주겠다고 난리다”며 기술 확보를 장담하고 있다. 그러나 회의론자들은 의문을 제기한다. “이들 외국기업들이 고급 기술을 거저 줄 리도 만무할 뿐더러 기술을 주고 나면 그간 철강 재료를 수입해 가는 현대차 그룹에 대한 수출 물량이 줄어드는데 과연 철강사들이 그런 선택을 쉽게 할 수 있겠느냐”라는 점에서다.

또 현대자동차에 전량 제품을 공급할 것이라는 현대제철의 주장에 대해서도 토를 단다. 수많은 부품의 결집체인 자동차 산업의 특성상 어느 한 기업에 절대 의존하지 않고 포트폴리오를 확보해야 하는데 현대차가 현대제철의 생산 물량 전체를 가져갈 수 만도 없다는 주장이다.

특히 고로 운영에 있어서 기술 인력의 확보가 절실한 문제다. 쇳물의 색깔만 보고도 상태를 알 수 있고, 제품만을 보고서도 공정상의 문제를 단번에 짚어낼 수 있는 수준의 경험있는 기술 장인이 필요하다. 당연히 포스코에서 데려와야 되는데 직원 대우 수준에서는 여전히 비교가 되지 않는다.

지난해 현대제철의 직원 임금 수준이 포스코와 비등해진 것으로 나타났지만 복리 후생 등을 자세히 따지면 여전히 차이가 난다는 것. 철강업계에서는 포스코를 떠나 다른 철강회사로 직장을 옮기는 경우가 예전에도 더러 있었지만 쉽게 벌어질 일은 아니라는 데 대부분 의견을 같이 한다.

또 회의론자들은 항만 시설의 규모에 대해서도 현대제철의 경쟁력 차이를 지적한다. 동해안의 경우 대형선박들이 출ㆍ입항 하기가 유리하지만 상대적으로 서해안은 대형선박보다는 중소형 선박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작은 배들이 여러 번 왔다갔다 해야 하는데 이는 결국 생산성 하락, 즉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리게 된다. 이에 대해 현대제철측은 당진항이 최대 30만톤 선박까지 수용가능하다고 반박한다.

현재 양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는 만큼 현대차 그룹의 일관제철소 사업은 앞으로도 계속 논란이 될것으로 전망된다. 철강업계는 물론 산업계가 현대제철의 새 도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박원식 차장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