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2009년 5만원권·10만원권 발행 발표, 36년 만에 최고액권 갱신연간 3,200억원 이상 직접비용 절감 효과, 일부선 '검은 거래' 악용 우려

지난 2일, 한국은행은 기자회견을 열고는 2009년 상반기 중 5만원과 10만원 고액권을 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은행은 "현재 최고 액면인 1만원은 소득, 물가 등 현 경제상황에 비해 너무 낮아 경제적 비용과 국민 불편이 매우 크다"는 것을 고액권을 발행하는 배경으로 설명하고 있다.

사실, 해외여행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화폐의 단위가 다른 나라에 비하여 상당히 크다는 사실을 절감할 것이다.

물론 어떤 나라에 있느냐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으나 웬만한 선진국에서는 화폐의 단위가 작다.

쇼핑하러 가서도 물건의 가격이 특수한 귀중품이 아니고서는 대부분 100달러를 넘지 않으며, 택시를 타거나 식당에서 식사하는 일상적인 소비의 경우는 규모가 더욱 작아져 10유로 혹은 20달러 내외로 대부분 가능하다.

하지만 외국에서 10달러, 15유로 등의 ‘작은’ 화폐단위에 익숙해져 있다가도, 한국에 돌아와 인천공항에 내리는 순간, 화폐 단위는 엄청나게 커져 버린다.

커피 한 잔을 사 마셔도 3,000원 이상이고, 택시라도 타면 1만원을 훌쩍 넘기는 일은 보통이다. 걸리버 여행기 나오는 이야기에서처럼 사람들은 갑자기 소인국에서 대인국으로 들어선 듯 기분이 든다. 화폐단위가 거의 1,000배 정도 뻥튀기 되어 통용되기 때문이다.

화폐개혁 주장, 인플레 압박 우려로 잦아들어

이처럼 화폐단위가 크다보니, 불편하고 또한 돈의 가치가 낮아 보여 이를 바꾸자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나타나기도 하였다.

다시 말해 화폐개혁을 단행하여 모든 화폐단위를 1/100 혹은 1/1000 정도로 줄여서 사용하자는 주장이었다. 그렇게 되면 우리도 다른 나라들처럼 택시를 타는데 10,500원이 아니라, 10원50전을 지불하면 되므로 훨씬 간편하고 좋다는 논리였다.

이를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이라고 하는데, 몇 차례 논의가 있었지만 결국 한국은행은 장점에 비하여 문제점이 더 많다고 판단하여 보류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한국은행이 우려하는 리디노미네이션의 문제는 인플레 압력이 거세진다는 점이었다. 예컨대 1/1000로 화폐단위를 줄이게 된다면 과거 10,500원이던 것이 앞으로는 10원50전이 된다.

그러나 과거의 통화단위에 익숙한 사람으로서는 0.50원 같은 ‘소소한’ 단위에 대한 느낌이 아직 모자라서, 그것을 그리 크다고 생각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10원50전의 가격이 손쉽게 11원이 되어도 별달리 저항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 10,500원의 가격이 통용되던 시절이라면 11,000원으로 가격이 오르는 셈인데, 화폐단위가 변경됨에 따라 물건 값이 자연스럽게 오르게 되고 이는 고스란히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는 셈.

그러니 한국은행으로서는 선뜻 리디노미네이션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한국은행의 추산으로는 화폐단위를 바꾸었을 때, 이처럼 우수리가 반올림되어서 물건 값이 비싸지는 것이 대략 2% 정도 인플레이션율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러니 굳이 인플레를 감수해서까지 화폐단위를 변경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물가상승을 압박한다는 이유로 화폐단위는 바꾸지 않는다고 치더라도 고액권은 발행하여야 한다는 주장은 꾸준하게 제기되었다.

우리나라의 화폐단위는 다른 나라에 비하여 크지만 정작 고액권은 발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우리나라 화폐제도의 문제점 중의 하나였던 터.

외국에서는 100달러 혹은 1만엔짜리 지폐,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대략 8만원에서 9만원의 가치를 가지는 지폐가 이미 발행되어 널리 통용되고 있고, 유로의 경우는 500유로, 즉 우리나라 돈으로 대략 60만원 이상의 가치를 가지는 돈도 발행되어 통용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화폐의 최고액원은 1만원에 불과하다. 이는 고액권을 발행하면 자칫 은밀한 거래에 쓰이거나 뇌물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강하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일부 시민단체는 고액권이 발행될 경우, 음성적인 거래가 만연하고 거래의 추적이 힘들어지면서 세금 탈루 등 사회적 비용이 더 커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고액권인 1만원권이 최초로 발행된 시기가 1973년인데, 그때부터 따져 우리나라의 물가는 12배 이상 올랐고, GDP는 150배 이상 증가하는 등 당시와 비교하여 몰라볼 정도로 경제사정이 크게 변화하였다.

하지만 최고액면인 1만권은 34년 동안 유지되었다. 그러니 여러모로 무리가 많았다. 따라서 설령 고액권을 발행하였을 때 약간의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르나 그것을 이유로 언제까지나 고액권 발행을 늦출 수는 없는 일.

이제까지는 10만원권 자기앞수표가 널리 통용돼 고액권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통용될 수 있는 화폐에 비하여 자기앞수표는 그렇지 않았으니 여러 가지 문제가 많았다. 자기앞수표는 기본적으로 은행 예금증서의 성격을 가지는 문서이지 화폐가 아니다.

따라서 일단은 은행이 현금을 대가로 자기앞수표를 발행하였다가 나중에 자기앞수표가 제시되면 그 대금을 지급해야 하였으며, 혹시 부정수표가 통용되거나 발행되지 않았는지 은행끼리 정보를 교환하고 전산으로 처리하는 등 온갖 부대 비용이 컸다.

사실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처럼 중앙은행에서 발행하는 법화, 즉 화폐가 아니라 민간은행이 발행하는 수표가 널리 통용되는 사례는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특이하다. 그만큼 자기앞수표를 사용하는 데 따른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행의 추산에 의하면 10만원권 자기앞수표의 제조 및 취급비용이 연간 약 2,800억원 정도 소요되고 있으며 아울러 자기앞수표를 운송하고, 또한 나중에 지급 제시된 수표를 일정기간 보관하여야 하는 비용도 무시할 수 없어 거기에만 연간 400억 원 정도 든다는 것이다.

신규 투자효과 등 무형의 효과 커

결국 고액권이 발행되면 당장 연간 3,200억원 이상의 직접 비용이 절감될 수 있다. 거기에다 현금 입출금 시 시간 단축, 간편함, 현금 소지의 편익 증가 등 무형의 효과도 크다.

고액권을 발행하는 것은 사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한국은행으로서는 고액권 화폐를 발행할 때 얻는 운용 수익에서 화폐 발행, 유통 비용을 뺀 화폐주조 차익을 연간 1,700억원 가량 추가로 거둘 수 있다고 추산되고 있다.

그리고 시중은행의 경우는 이제까지는 자기앞수표를 발행하여 그것이 지급 제시될 때까지 무이자의 자금을 운용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못하게 되어 얼핏 보기에 손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까지 은행은 자기앞수표를 발행하고 관리하는 데 앞서 따져보았듯 약 3,200억원이라는 막대한 비용을 들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 돈이 필요 없게 되었으므로 역시 전체적으로는 이익이다.

일반인의 경우도 10만원권 자기앞수표를 사용하면서 일일이 신분증을 내보이고 수표에 이서해야 하는 불편이 사라진다. 아울러 민간기업의 경우는 새롭게 고액권이 발행될 경우, 은행들이 현금자동입출금기를 교체하거나 새롭게 설치하여야 하므로 이에 따른 신규투자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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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근 메버릭 코리아 대표 jaykk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