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마켓서 직접 패션쇼 열어 틈새시장 공략중국패션 단지에 한국관 문 열어 현지시장 진출

박형준 씨 (왼쪽)와 데런 캐루아나
영국인 디자이너가 한국 브랜드로 만든 진바지, 온라인 마켓과 시장 디자이너들의 패션쇼, 중국 내 최대 한국 의류 쇼핑몰 등….

최근 국내 패션가에서 종전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새로운 시도들이 행해지면서 시장의 주목을 끌고 있다. 패션 시장에서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새로운 차원의 이들 도전은 틈새 시장을 공략하고 새로운 수요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로 기대되고 있다.

패션쇼 하면 으레 유명 디자이너나 값비싼 브랜드, 돈 많은 패션숍이나 의류 회사의 전유물로 인식돼 온 것이 사실. 하지만 온라인 쇼핑몰의 디자이너들도 얼마 전 자신의 디자인 작품을 직접 보여줄 기회를 가졌다. 다름아닌 온라인 쇼핑몰 G마켓이 개최한 패션쇼 덕분이다.

G마켓은 지난 3월 21일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2007 S/S Gmarket Fashion Festa'라는 타이틀로 패션쇼를 진행했다. 이 행사는 온라인 쇼핑몰이 특급호텔에서 최초로 개최한 대규모 패션쇼였다는 점에서 개최 전부터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관심을 반영하듯 연예인에서부터 패션업계 인사, 그리고 일반인들까지 500여 명이 참석, 좌석은 입추의 여지가 없을 만큼 열기를 뿜었다.

패션쇼에서는 G마켓의 디자이너샵 작품들과 자체 브랜드 ‘G.SECRET’ 상품 등 올 여름 패션 트랜드를 제시하는 총 130여 점의 의류가 선보였다. 1, 2부로 나누어 진행된 행사는 먼저 G마켓의 패션CM이 강력 추천하는 기성복 60여 벌이 등장했다.

1.3- G마켓 패션쇼, 2. 배스키 룩

또 G마켓 디자이너숍 입점 예정인 디자이너 장광효의 축하 무대를 비롯, 김선여, 고지현, 김지아 등 G마켓 디자이너 숍에서 활동 중인 인기 디자이너들의 작품 90여 벌도 무대에 올랐다.

온라인 쇼핑몰이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전례 없이 대규모 패션쇼를 감행(?)한 것은 한 마디로 패션 시장에서 새로운 블루오션 개척하기 위해서다.

즉 실력 있고 자질은 뛰어나지만 ‘돈이 없어’ 패션쇼를 쉽게 열지 못하는 디자이너들이 자신들의 실력을 뽐내고 공들여 만든 작품들을 소비자들에게 직접 보여줄 기회를 제공해주기 위한 것.

이번 패션쇼에 G마켓에서 활동하는 신진 디자이너들이 대거 참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쇼를 주최한 G마켓 구영배 대표이사는 “기존 디자이너의 패션쇼는 일반인들이 접하기 힘든 영역에 머무는데 반해 신진 디자이너들은 실력이 있으면서도 직접 소비자들을 만날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이 패션계의 현실”이라며 “이번 패션쇼를 통해 패션 사업가, 디자이너, 판매자 그리고 고객 사이에 ‘유기적인 열린 시장’을 만들 수 있도록 일조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G마켓의 패션쇼는 일거삼득을 겨냥하고 있다. 디자이너들은 마케팅 채널을 새로이 확보하고 또 소비자는 상대적으로 우수한 품질의 디자인 옷들을 보고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G마켓 또한 인터넷에서 저가 의류 중심의 옷들을 판매하는 기존 이미지를 뛰어 넘어 고품질의 상품들을 구비, 전시하게 되는 윈윈 효과를 거두는 셈.

G마켓의 박주범 홍보팀장은 “아직 경력이 일천하지만 가능성 있는 이들 신진 디자이너들과 소비자들 간의 가교(브리지) 역할을 한 것이 G마켓”이라며 “이들 디자이너가 이번 기회를 발판삼아 유명 디자이너로 발돋움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G마켓은 이들 디자이너가 자체적으로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의류 판매 사업을 펼치는 데 대해서는 반대 의견을 펼치고 있다. 디자이너가 디자인에 전력해야 더 발전할 수 있는 것인데 사업에 신경쓰다 보면 재고 관리나 자금 회수, 마케팅 등 과외의 일에 더 많은 정력을 뺏기기 십상이라는 것.

G마켓 구 대표는 “오픈 마켓으로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가을 패션쇼도 준비 중이다”며 "유망 디자이너들과 패션 유통업체, 제조사들이 국내에 이어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다.

올 봄 런칭한 얼터너티브 유러피언 진 브랜드 ‘드레스 투 킬’(Dressed to KillㆍD2K)의 비주얼 디렉터 데런 캐루아나는 국내 패션 트렌드를 주도하는 영국인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외국인이 국내 브랜드나 패션 의류 회사에 자문이나 컨설팅을 하는 경우는 적지 않아도 외국인 아트 디렉터가 상근하며 주도적으로 업무를 리드하는 경우는 무척 이례적인 사례로 꼽힌다.

서울과 영국을 오가며 일하는 캐루아나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는 브랜드 네이밍과 컨셉트, 머천다이징, 컬렉팅, 디스플레이 등 거의 모든 업무. ‘옷 죽여주네!’라는 뜻을 가진 데님 브랜드 이름도 그가 직접 지었다. 지난 2월 서울 명동에 플래스쉽 스토어 1호점이 오픈할 때도 상품 하나하나 진열하고 배치하는 것도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처음 D2K에서 같이 일하자는 제의를 받고 기뻤어요. 흔쾌히 승락했죠.” 이전까지 패션의 스타일링 업무를 주로 해온 캐루아나는 옷의 기획부터 제조, 마케팅, 마무리 단계까지 모든 작업을 감당해야만 하는 이번 업무에 큰 매력을 느꼈다. “하나부터 열까지 제가 책임을 지고 총괄해야 하는 입장이잖아요.”

그는 ‘이미 만들어진 옷을 갖고 스타일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의 범위가 넓어진다는 점이 큰 단안을 내리게 된 계기”라고 털어놨다.

그가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친구이자 업무상 동료인 박형준 씨에게서 비롯됐다. 4년여 전 런던서 패션 관계 일을 하다 만나 알게 돼 이후 끈끈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런던에서 패션 관련 통신원으로도 일해본 박 씨 또한 “캐루아나는 한국과 동양을 너무 잘 이해하고 있다”고 칭찬한다.

보통 서양인이라면 근무 시간 6시가 되면 ‘칼퇴근’을 할 텐데 캐루아나는 일이 밀리면 군소리 없이 자청해 야근을 한다는 것. 주말에도 거리낌 없이 출근하는 그를 보는 직원들은 캐루아나를 ‘같이 일해볼 만한 사람’이라고 입을 모은다.

두 사람이 D2K 브랜드 런칭과 함께 야심작으로 선보이고 있는 것은 ‘배스키(Basky) 진’. 배스키란 영어로 ‘풍성하게 보인다는’ 의미의 Baggy와 몸에 딱 붙어 보인다는 Skinny look의 합성어. 진바지의 무릎 아래로는 스키니 룩이지만 그 위로는 약간 헐거워 보이는 독특한 맵시를 갖고 있다.

시장의 반응도 벌써 나타나고 있다. 두 사람이 올해의 패션 트렌드로 내세우고 있는 배스키 룩은 벌써부터 새로운 패션 코드로 유행을 불러 일으키고 있을 정도. 캐루아나는 “한국 사람들은 진을 몸매보다 크고 헐겁게 입고, 반면 유럽인들은 몸에 딱 달라붙게 입는 성향이 있다”며 “때문에 배스키 룩은 한국과 유럽 패션 간의 접목인 셈”이라고 자평한다.

캐루아나가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2005년. 패션 매거진과 컨설팅 역할을 위해 잠깐 접했지만 그의 경력과 능력을 인정받아 국내 브랜드 런칭에도 스카우트 됐다. 특이하게도 그의 경력은 무척 다양하다.

대학에서 호텔매니지먼트를 전공했지만 요리사와 영어교사, 라켓볼 코치, 카지노 딜러, 인테리어, 무역과 유치원 교사 등 경험한 직업만 10여 가지나 된다.

“한국의 동대문 시장을 가보면 깜짝 놀랍니다. 한국의 패션 디자인이 너무나 훌륭하고 손색 없는데 놀라고 그런 우수한 제품들이 별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잠깐 시장에 나왔다 사라지는 것을 보고 또 놀랍니다.” “한국의 디자이너들이 매우 우수하다”는 그는 “한국인들이 너무 남을 의식해 옷을 입는 것 같은데 앞으로는 그럴 필요가 없었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패션계의 또 다른 도전이 있다. 5월 말 중국 우시에 건설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섬유&의류 패션단지인 ITFM 내에 한국관이 오픈하는 것.

중국 정부의 주도로 세계 최대 규모의 패션 단지를 건립한다는 기치 아래 중국 신세계그룹 유한회사가 시행, 완공한 ITFM은 여의도 반 크기의 복합 원스톱 의류 단지에 2만4,000여 개의 섬유, 의류 상가가 집결된다. 섬유 및 의류 거래 플랫폼으로서는 물론 물류센터 및 창고센터까지 함께 들어서며 최신 유행 패션쇼도 정기적으로 열릴 예정.

중국 섬유 및 의류 도매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ITFM은 한국 기업들이 거대한 중국 패션 및 세계 섬유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 및 마켓 플레이스이다. 원단과 의류, 부자재, 물류, 행정 기관이 한곳에 집결돼 세계 패션 전시장의 최신 유행 정보를 바로 접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중국 정부도 한국관 입주 업체에 임대 및 조세, 의료, 교육, 행정 등에서 혜택을 제공한다는 방침이어서 한국 패션업계 기업들이 중국으로 눈을 돌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