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2010년까지 세계 5개 컨벤션 도시 육성 계획 외형 확장 몰두로 거품 논란도… 내실부터 다져야

얼마 전 국제회의전문가협회(ICCA)가 발표한 2006년 국가 및 도시별 국제회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서울은 지난 한 해 총 85건의 국제회의를 개최해 세계 7위의 국제회의 도시로 나타났다. 이는 2005년 8위에서 한 계단 뛰어오른 것.

서울시는 오세훈 시장 취임 100일을 맞은 지난해 10월 컨벤션 산업을 6대 신성장산업의 하나로 중점 육성해 2010년까지 서울을 세계 5대 컨벤션 도시로 키워나가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때문에 이번 ICAA의 발표에 서울시는 적잖이 고무된 반응이다. 세계 톱클래스 컨벤션 도시로 도약하는 데 청신호가 켜졌다고 본 것이다.

서울보다 국제회의 개최 횟수가 많은 도시는 1위 비엔나(147건)를 비롯해 파리(130건), 싱가포르(127건), 바르셀로나(103건), 베를린(91건), 부다페스트(86건) 등이다. 베를린, 부다페스트 정도는 충분히 따라잡을 만하고 바르셀로나 역시 추격권 안으로 볼 수 있다.

국가별로 살펴보면 한국은 총 123건을 개최해 17위에 올랐다. 다소 미흡한 성적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서울 집중 구조를 감안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한국 컨벤션 산업은 1990년대 이후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크게 높아진 것은 물론 96년 ‘국제회의산업 육성에 관한 법률’ 제정에 이어 2003년부터는 지역마다 컨벤션 전담기구인 ‘컨벤션 뷰로’도 신설되는 등 법적, 제도적 기반이 확충된 데 적잖이 힘입었다.

지난 2월 국제회의연합(UIA)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컨벤션 산업은 최근 10년간 120%나 성장했다. 국제회의에 국내 전시회 등을 합치면 연 평균 16%로 고속 성장했다. 성장 추세로 보면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평가다.

1. 부산 벡스코 / 2. 일산 킨텍스 / 3. 대구 엑스코

경제적 파급효과 큰 '서비스 산업의 꽃'

컨벤션 산업은 국제회의, 전시회, 박람회, 심포지엄 등 각종 국제행사를 개최함으로써 유형, 무형의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이다. 특히 관광, 숙박, 교통, 통신, 레저, 유흥 등 관련 산업에 대한 고용 및 소득창출 등 산업연관 효과가 매우 커 ‘황금알을 낳는 무공해 산업’, ‘서비스 산업의 꽃’으로도 불린다.

한국관광공사의 연구에 따르면 2004년 기준 국제회의 참가자가 관광, 숙박 등으로 지출하는 액수는 평균 2,624달러로 일반관광객의 984달러보다 2.4배나 높게 나타날 만큼 컨벤션 산업의 경제적 파급 효과는 크게 두드러진다.

이 때문에 각국 정부와 지방 도시들은 21세기형 고부가가치 업종인 컨벤션 산업에 너도나도 뛰어들고 있다. 일례로 세계 최대의 도박 천국인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경우 새로운 도시성장 동력으로 컨벤션 산업을 집중 육성, 세계적인 컨벤션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지역총생산 비중에서도 컨벤션 산업이 도박 산업을 이미 제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지방자치단체들도 2000년대 이후 컨벤션 산업 육성에 소매를 걷어 붙였다. 제조업 기반이 수도권에 비해 취약한 터에 컨벤션 산업을 키워 산업구조를 고도화하는 한편 도시 브랜드를 널리 알려 관광 수입을 올리겠다는 도시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다.

이에 따라 부산 벡스코(2001년), 대구 엑스코(2001년), 제주 국제컨벤션센터(2003년), 경기 고양 킨텍스(2005년),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2005년), 경남 창원컨벤션센터(2005년) 등이 잇달아 문을 열며 서울 코엑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아울러 대규모 국제행사의 국내 유치에 걸림돌로 작용했던 대형 컨벤션 시설 부족 현상도 크게 해소됐다.

하지만 이 같은 컨벤션 시설의 양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국내 컨벤션 산업의 질적 발전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엄청난 재원을 쏟아 부어 시설만 번듯하게 갖춰 놓았을 뿐 국제행사 유치 실적은 한심한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외견상으로 7개 컨벤션센터의 가동률은 크게 나쁘지 않다. 30% 선에 그치고 있는 김대중컨벤션센터를 제외하면 50~70%의 시설 가동률을 나타내고 있는 것. 컨벤션 업계에서는 행사 개최 전후 기간 등을 제외하면 연중 60% 이상의 가동률이면 선전한다고 평가한다.

평균 가동률 60%, 대부분 내국인 행사

문제는 행사의 질이다. 당초 국제행사와 대규모 산업전시회 등을 유치한다는 명분으로 건립된 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되는 행사 가운데 그런 취지에 부합하는 행사는 손에 꼽을 정도라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실제 대규모 컨벤션센터 가운데 국제행사 개최 비율이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곳이 여럿이다. 한국의 대표적 컨벤션센터이자 가동률이 가장 높은 서울 코엑스마저도 행사 숫자만 많았지 국제행사 비율은 2%도 안 되는 실정이다.

한 컨벤션기획업체 관계자는 “국제 규모의 컨벤션센터가 유치하는 행사 대부분이 일반 직장 모임이나 가족 행사 등에 불과한 건 우스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컨벤션센터들은 수익 극대화를 위해 시설을 계속 가동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그나마 적자를 면한 곳은 2006년 기준 2곳에 불과하다.

국내에 유치한 대규모 국제회의 참석자 가운데 외국인 비율은 극히 적다는 것도 ‘외화내빈’의 사례로 지적된다. 한 관계자에 따르면 2006년 국내에서 개최된 국제회의에 참석한 사람은 약 600만 명에 달했지만 실제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찾은 외국인은 10만 명을 겨우 웃돈다는 추산이다. 겉은 국제행사이지만 속은 내국인의 잔치였던 셈이다.

특히 지방 컨벤션센터의 경우 서울, 수도권에 비해 숙박시설과 교통 접근성, 관광 프로그램 등이 크게 떨어져 국제행사 유치에는 역부족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그나마 사정이 낫다는 서울의 경우도 호텔 객실 숫자가 2만여 개에 불과해 1만 명 이상 참여하는 국제행사를 유치하기에는 버겁다. 이러다 보니 지방에선 자치단체까지 나서 지원사격을 해도 워낙 인프라가 부족해 행사 유치에 실패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대규모 컨벤션센터 건립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현재 대전과 인천 송도에 컨벤션센터가 지어지고 있고 경기 고양 킨텍스와 대구 엑스코는 제2 전시장 건설을 추진 중이다. 컨벤션 산업 과열에 따른 시설 공급 과잉이 크게 우려되는 대목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컨벤션센터 건립 붐을 다소 경계하면서도 산업 특성상 시설의 우선 확보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는 입장이다. 대규모 행사를 유치하려 해도 공간이 없으면 신청조차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실한 시장조사 없이 외형 확장에만 몰두하는 컨벤션 산업 육성은 심각한 거품과 함께 국가자원 낭비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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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