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근 중 운전자금 비중 70% 이상, 부동산·주식투자 전용 사례도

“주택담보 가계대출을 묶어 놓으니까 어쩔 수 없이 중소기업 대출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대기업들이야 돈을 많이 쌓아둬 은행을 찾지도 않고….”(모 시중은행 과장)

“회사 운영경비 마련도 빠듯한 실정인데 부동산, 주식 투자를 한다고요? 하루하루 회사 꾸려가기도 벅찬 중소기업인들 중에 그럴 사람들이 많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지방 건설자재업체 사장)

최근 중소기업 대출이 가파르게 늘어나는 현상을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은행들이 대출 문턱을 낮춰 기업활동 지원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있는가 하면 중소기업으로의 과도한 대출 쏠림 현상이 여신 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은행권의 중소기업 대출은 올해 들어 두드러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올 1월부터 4월까지 중기 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 대비 무려 22조 4,000억원이나 늘었다.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이 최근 몇년 사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사진은 중소기업들이 밀집해있는 인천 남동공단

최근 2년 동안의 수치와 비교하면 올해 중소기업 대출 증가세가 얼마나 가파른지 더욱 뚜렷하게 알 수 있다. 2005년의 경우 전년 말 대비 증가액은 12조 8,000억원으로 증가율은 5.2%, 2006년에는 전년 말 대비 45조 3,000억원 증가해 17.6%의 증가율을 나타냈다. 각각 월 평균 증가액은 1조 700억원과 3조 7,800억원이었다.

■ 은행들 중소기업 대출에 '올인'

이에 비해 올해 들어 중소기업 대출은 지난 4월까지 전년 말 대비 7.4% 증가했다. 이 추세가 이어진다면 연말쯤에는 전년 말 대비 22% 가량 대출 잔액이 늘어난다는 계산이다. 월 평균 증가액도 5조 6,000억원에 달한다.

중소기업 대출이 갑작스레 급상승 곡선을 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에서는 설비투자 증가 등으로 인한 자금수요 증대에다 은행들의 대출 경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11ㆍ3 부동산 대책에 따라 주택담보 대출 수요가 크게 줄어들면서 은행들이 중소기업 대출에 올인하고 있는 영향이 크다는 지적이다.

중요한 것은 대출 급증이라는 현상보다 대출 자금의 최종 수요처가 어디냐 하는 점과 경제전반에 미치는 효과가 어떻게 나타나느냐 하는 점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적잖이 엇갈리고 있다.

중소기업연구원 오상훈 전문위원은 최근의 중소기업 대출 증가세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쪽이다.

그는 얼마 전 내놓은 ‘최근 중소기업대출 확대 원인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은행의) 대출 태도 전환에 따른 ‘문턱 하락’ 효과와 경기 상승과 맞물린 (자금) 실수요 증가가 뒷받침돼” 중소기업 대출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오 위원에 따르면 정부의 주택담보대출 규제로 인해 은행들은 유동자금 해소 및 대안적 마케팅 차원에서 중소기업 대출을 늘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통상 은행으로부터 필요자금의 75% 이하를 조달하는 게 최대치였으나 최근의 대출 유동성 확대에 따라 파급효과(spillover effect)를 누리고 있다.

즉 은행의 유동성이 넘치면서 그동안 중소기업들이 부족함을 느꼈던 필요자금에 대해서도 대출이 원활하게 흘러 들어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오 위원은 이 때문에 최근 중소기업 대출 증가 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르게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경기 상승에 따른 자금 실수요 증가도 대출 확대의 주요 배경으로 꼽았다. 지난해 상반기부터 중소기업의 수출 및 생산 증가율이 완만하게 개선되는 추세여서 설비투자 자금 등의 수요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소기업 대출 급증을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와 관련, 한국금융연구원 강종만 선임연구위원은 지난달 11일자 보고서에서 최근 크게 늘어난 중소기업 대출이 기업 경쟁력 제고에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데다 은행에는 건전성 악화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특히 한국은행 산업대출 동향 지표의 움직임을 주목했다. 이에 따르면 올 1분기 제조업의 전 분기 대비 사업 대출금 증가율은 4.0%였던 반면 건설업 및 부동산업의 증가율은 각각 9.6%, 7.9%로 나타났다. 즉 실제 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제조업 대출보다 부동산 경기에 민감한 업종으로 대출이 훨씬 많이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 생산성 향상 위한 시설투자 적어

아울러 산업 대출금 중에서 운전자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72%에 달한 반면 시설자금 비중은 28%에 불과했다. 즉 대출 자금이 인건비, 원자재 구입비 등의 소모성 경비인 운전자금으로 대부분 충당됐을 뿐, 생산성 향상 등을 위한 시설투자에는 상대적으로 매우 적게 사용됐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와 관련, 유력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중소기업 대출을 심사할 때는 업체 현장 실사도 하지만 실제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는 일일이 파악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운전자금의 경우 일단 대출한 뒤에는 ‘용처 불문’이라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중소기업 대출 자금이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 등 엉뚱한 용도로 전용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다소 주춤한 부동산 시장보다 최근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는 주식 시장에 상당량의 대출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에 대해 강종만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2003년 은행의 중소기업대출 증가는 연체율 상승으로 이어졌으며 이후 여신심사가 강화되면서 중소기업의 자금난이 발생하는 부작용을 초래한 바 있다”며 “은행들은 자산규모 확대를 위한 대출경쟁을 지양하고 중소기업의 생산적인 부문에 대한 지원을 확대함으로써 중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대출금리 인상은행 잠재부실 우려도

최근 중소기업 대출 급증은 금리 인상이라는 또 다른 불똥도 튀기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8일 발표한 ‘5월중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 동향’에 따르면 지난 5월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금리(신규 취급액 기준)는 연 6.60%로 2002년 5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한은 측은 은행들이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는 과정에서 신용도가 낮은 기업에게까지 대출 범위를 넓힌 까닭에 금리가 올라간 것으로 분석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중소기업 대출 금리가 가계대출 등 여타 대출 금리의 연쇄인상을 촉발하는 것은 물론 은행의 잠재 부실을 키울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