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대사관에 언론사 특파원까지… 비즈니스 마케팅 등 현실과 똑같은 '제2의 삶'

닷컴 열풍이 한창이던 2000년 11월. 채팅 사이트 세이클럽(www.sayclub.co.kr)은 ‘아바타’ 유료화를 공식 발표하고 서비스에 들어갔다. 아바타(Avatar)는 인터넷에서 나를 표현하는 가상 캐릭터.

이 가상 캐릭터에 입힐 티셔츠, 청바지 등 옷가지와 안경, 귀걸이, 목걸이 등 장신구 등을 100원에서 최고 4,500원의 가격에 팔겠다고 한 것이다.

공식 발표에 앞서 세이클럽이 마련한 기자간담회장. 아바타 장신구 판매를 위해 사이트 내에 상품몰을 마련했다는 회사측의 설명에 기자들의 반응은 뜨악했다.

‘그런 걸 누가 사!’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의례적인 서비스 소개 정도의 기사들이 다음날 신문지면을 장식했다. 시장의 반응도 비슷했다. “닷컴 열풍이라더니 이제 별의별 모델들을 만들어 내는구만.” 이런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런 시큰둥했던 시선들은 불과 한 달 만에 놀란 토끼눈으로 바뀌었다.

서비스 한 달 만에 캐릭터 장신구 판매액이 3억원을 돌파했다. 50일 만에 5억원으로 증가하더니 이후 승승장구, 서비스 개시 1년 만에 거의 100억원에 육박하는 판매고를 일궈냈다.

현재 대부분의 게임 사이트나 인터넷 서비스 사이트에서 아바타 비즈니스를 흔히 볼 수 있게 된 것도 세이클럽이 선보였던 ‘당신의 아바타에 장신구를 달아주세요’라는 기상천외한 유료모델의 대히트 덕분이었다.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모델이 사실은 엄청난 파괴력의 서비스 폭탄이었던 것이다.

■ 2003년 미국 린든랩에서 서비스 시작

당시 인터넷 선진국 미국에서도 한국의 아바타 비즈니스의 폭발적인 성공은 흥미진진한 뉴스였다. 미국 기업의 국내지사에 근무하던 한 임원은 “미국 본사에서도 아주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며 자세한 보고를 해달라고 한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아바타의 등장은 미국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이 아바타에 옷을 입히고 장신구를 달아주면서 돈을 벌고 있다는 것이 그들로서는 너무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던 모양이다.

한국의 아바타 비즈니스의 성공에 자극을 받은 것일까. 2003년 미국의 린든랩이라는 곳에서 ‘세컨드라이프(Second Life)’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가상의 나’를 넘어 ‘가상의 세계’를 창조해낸 것이다.

이후 2005년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한 세컨드라이프 서비스(www.secondlife.com)는 엄청난 관심을 불러 일으키며 전 세계를 ‘제2의 삶’ 열풍에 휩싸이게 한다.

세컨드라이프는 한마디로 '3차원 가상 세계'다. 가상의 내가 있고, 집이 있고, 마을이 있다. 기업이 있고 은행도 있다. 화폐도 존재하고 물론 상거래도 일어난다. 가상의 공간이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도 아니다.

‘린든달러’라는 이 세계의 화폐는 현실 세계의 화폐로 교환된다. 2007년 6월 현재 환율이 270대 1이다. 린덱스라는 환전소에서 1 린든달러를 미화 1달러로 환전할 수 있다.

각국 정부가 세컨드라이프에 대사관을 짓고 있고, 기업들은 이곳에 세컨드라이프 지사를 설립하고 있다. 가상의 세계에서 현실의 비즈니스 마케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기업들은 이곳에서 정기적으로 회의를 열고 있고, 어떤 기업은 실제 직원을 뽑는데, 세컨드라이프 내 사무실에서 면접을 보고 뽑기도 한다.

현재 세컨드라이프의 주민은 약 700만 명. 인구는 계속 증가 추세다. 우리나라 주민도 벌써 5만여 명에 이르렀다.

놀라운 일은 계속된다. 언론사 가운데 <로이터>가 처음으로 세컨드라이프에 지사를 내고 기자 1명을 아예 상주시켰다. 이 기자는 세컨드라이프 곳곳을 누비고 다니면서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만 취재해 소개하는 세컨드라이프 특파원인 셈이다.

<와이어드>같은 IT 전문매체도 주재원과 세컨드 라이프 지국을 두고 있으며 <월스트리트저널>이나 <뉴욕타임즈> 등 굵직한 매체들도 다 들어와 있다. 기자회견 장소도 따로 있다.

■ 활발한 비즈니스로 갑부도 탄생

세컨드라이프에서는 비즈니스도 뜨겁다. 델컴퓨터는 이곳에서 주문을 받아 조립컴퓨터를 판다. 세컨드 라이프에 들어오고 싶은 기업들을 위한 전문 컨설팅 회사도 있다.

이들을 '디벨로퍼'라고 부르는데, 기획부터 제작, 사후관리와 세컨드 라이프 내 홍보 마케팅까지 전과정을 대행한다. 국내에서도 애시드 크레비즈(Acid Crebiz)라는 에이전시가 세컨드 라이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최고 갑부도 있다. 주민 가운데 앤쉬 청(Anshe Chung)이란 이름의 이용자는 서비스 초창기부터 부동산 개발을 해서 100만 달러 이상을 벌었다. 말 그대로 돈을 투자해 땅을 산 다음 잘 꾸며서 비싼 값에 되파는 식이다.

이 사람은 지난해 <비즈니스 위크> 표지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물론 실제 사진이 아닌 아바타로.

2000년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아바타 비즈니스가 나만의 가상 캐릭터를 기반으로 했다면, 세컨드라이프는 가상의 세상을 만들어냈다. 아바타의 몸치장을 위해 디지털 장신구를 판매하던 것을 넘어 세컨드라이프는 주민들에게 땅을 판다.

가상의 세계에서 내가 머물 공간을 파는 것이다. 이렇게 가상의 땅 장사를 통해 린든랩은 160여 명의 직원이 3년 연속 흑자를 내고 있다고 한다.

린든달러를 미화로 환전해주는 환전수수료도 수익이긴 하지만, 땅 장사가 수익의 80%를 차지하는 알짜다. 봉이 김선달이 혀를 내두르고 갈 법하다.

세컨드라이프가 최근 한국어 서비스를 시작했다. 한국계(?) 주민들이 늘어나면서 한국어로도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다. 세컨드라이프의 주민이 되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회원가입 절차에 따라 가입만 하면 된다. 가입이 되면 자신의 아바타가 자동으로 생성된다. 이후에는 그곳에서 집을 짓고, 사람을 만나고 여행을 하면 된다. 물건을 만들어 팔아도 된다. 물론 범법행위는 안 된다. 경찰을 만나게 될 것이다.

1999년 국내에도 비슷한 서비스가 있었다. 3차원 가상게임도 많다. 하지만, 세컨드라이프만큼의 위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세컨드라이프는 3차원 공간만 제공한다.

하늘과 땅, 그리고 컨텐츠를 만드는 도구. 그 안에서 필요한 컨텐츠(집, 사무실, 기타 모든 것)는 모두 주민들이 직접 만든다. 게임같은 삶, 삶같은 게임에 이용자들이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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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범 블로터닷넷 대표블로터 ssanba@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