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는 석유의 시대"… 2015년 1,600조원 거대시장 전망 나와GE·지멘스 등 선진국 기업들 집중 투자국내 물 산업 세계적 변화 흐름 동참 못해… 정부 육성책 냈지만 상수도 민영화 등 논란

물은 자연에 널려 있다. 흔하다. 그래서 귀한 줄을 모른다. 하지만 목이 타 들어갈 정도로 말라보면 물이 얼마나 소중한지, 필요한지를 그제서야 사람들은 깨닫는다. 물은 공기와 마찬가지로 인류의 생존에 직결돼 있다.

물의 가치가 전세계적으로 점차 높아지고 있다. 지구온난화와 인구증가, 도시화 및 산업화의 가속화로 물 부족 현상이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요는 느는데 공급은 제한적이어서 가치가 상승하는 것이다.

유엔은 2004년 ‘세계 물 보고서’에서 물 부족을 겪는 세계 인구가 현재의 10억명에서 2025년에는 30억명, 2050년에는 50억명에 이를 것이라는 끔찍하고 암울한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이 같은 물 환경 변화에 따라 세계 각국은 정부, 기업 할 것 없이 물 전쟁에 뛰어들고 있다. 깨끗한 물을 확보하고 공급하는 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은 물 산업의 엄청난 성장성을 주목해 “20세기가 석유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물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세계 물 산업의 규모가 2003년 기준 약 830조원에서 매년 5% 가량 커져 2015년에는 연간 1,600조원에 달하는 거대시장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선진국 기업들은 일찌감치 시장 선점을 위해 물 전쟁에 뛰어들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최근 내놓은 ‘세계 물 산업의 구조변화와 시사점’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유수의 제조기업 GE와 지멘스는 2000년 이후 대형 인수합병(M&A)을 통해 물 산업에 신규 진입했다.

GE는 산업용 수(水)처리 설비와 기기 부문, 지멘스는 수처리 장비 부문에 사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들은 절묘한 타이밍과 앞선 경쟁력으로 진입하자마자 물 산업의 주도 기업으로 떠올랐다.

아울러 유럽계 기업인 베올리아, 수에즈 등 기존 선두 주자들은 재빠른 변신을 추진하고 있다. 물 관련 제조업에서 철수한 뒤 핵심역량을 확보하고 있는 상하수도 서비스, 산업용 수처리 서비스 등에 주력하고 있는 것.

이 같은 선진 물 기업의 발 빠른 움직임과 함께 물 서비스 시장을 둘러싼 국제적인 환경 및 제도의 변화도 관심의 대상이다.

현재 물 서비스 시장은 개방화, 국제화의 추세를 타고 있는데, 특히 세계무역기구(WTO)나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한 시장 개방 압력이 점증하고 있다. 또한 상하수도 서비스에 대한 국제표준화 작업(ISO/TC224)이 진척되면서 국제적인 표준의 적용 시점도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 '아리수 홍보단'이 서울 청계천에서 외국인들에게 서울수돗물로 만든 '아리수'의 안전성과 우수성을 알리고 있다. 최흥수 기자.

하지만 국내의 물 산업은 아직 세계적인 변화 흐름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물 관련 제조 기업은 담수플랜트 건설 분야의 세계 1위 기업인 두산중공업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며, 서비스 분야 역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의 공공 부문에서 여전히 전담하고 있다.

이런 국내 현실과 관련, 삼성경제연구소는 “상하수도 분야에서 최소한의 규모의 경제와 국제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제도 개혁과 정책 지원이 시급하다”며 “전체 물 순환 과정에 걸쳐 통합된 물 서비스 솔루션을 저가에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을 조속히 길러야 한다”고 방향을 제시했다.

세계적인 물 환경 변화에 맞춰 정부도 물 산업 육성에 적극 나선다는 계획을 얼마 전 발표했다.

환경부, 건설교통부, 산업자원부 등 물 산업 관련부처는 경제정책조정회의를 거쳐 7월 16일 ‘물산업 육성 5개년 세부추진계획’을 확정, 발표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앞으로 범정부적인 지원책을 마련해 상하수도 서비스, 하ㆍ폐수 처리, 해수 담수화 등 물 관련 산업을 미래전략 산업의 하나로 집중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세부 계획으로는 현재 160여 개 지방자치단체에 나눠져 운영되는 상하수도 사업을 30개 정도의 유역권역으로 광역화하는 한편 사업체의 공사화 혹은 민영화를 유도한다는 게 눈에 띈다.

정부는 상하수도 사업의 영세성을 극복하고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현재 지방자치단체와 수자원공사에게만 주어지는 수도사업자의 지위가 앞으로는 민간기업에게도 부여된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의 물 산업 육성 계획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우선 정부의 이번 발표가 외관상 물 산업 육성을 표방하고 있지만 결국 상하수도 요금을 인상하기 위한 정지작업의 성격이 짙다고 보는 시각이다. 실제 정부는 생산 원가의 82.8% 정도 되는 상하수도 요금을 원가와 비슷한 수준으로 단계적으로 올린다는 방침을 밝혔다. 시점은 2012년까지다.

민주노동당은 이번 정부 방침을 “명백한 상수도 민영화 전략”이라고 규정하고 “현재의 비효율적인 상수도 운영은 민간기업의 참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관리감독 부실, 중복투자 등 정부 물 정책의 실패가 원인”이라며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민노당은 수돗물 음용률 1%, 농어촌 상수도 보급률 37%, 상하수도 시설 가동률 50% 등의 초라한 수치를 정책 실패의 근거로 제시했다.

현재 민간기업으로부터 물을 공급받는 세계 인구는 9% 정도다. 문제는 물 서비스를 민영화한 상당수 국가가 부작용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점이다. 민노당에 따르면 수도 민영화의 폐단은 주로 가격 인상과 수질 불신에 집중되고 있다.

프랑스는 수도요금이 150% 올랐으며, 우루과이의 경우는 물값이 무려 10배나 뛰었다고 한다. 영국처럼 오히려 수질저하로 고민하는 나라도 있다. 민영화의 부작용을 절감한 스페인, 아르헨티나 등은 민간기업과의 계약을 파기하고 다시 수도를 국영화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도 수도 민영화를 하게 되면 이 같은 외국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하고 있다. 정부 방침처럼 수도요금 통제권 등을 지방자치단체가 행사한다 하더라도, 민간기업에 인프라가 넘어가는 순간 주도권을 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 전쟁은 불가피한 미래다. 어떤 나라든 물 확보 대책을 서둘러 세워야 할 때다. 하지만 모든 인구의 삶이 직결된 물을 단순히 산업적 시각으로만 볼 수는 없다. 물은 하늘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내려준 보편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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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