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어줘 감사" 임원에게 깍듯한 인사… 지·덕·예 3박자의 용병술, 인재 사로잡아골프 함께 치고 와인동굴로 초대해 선물까지… 환대받은 직원·손님들 '구회장 팬' 변신
누가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다름 아닌 재벌 회장이 임직원에게 건네는 감사의 말이다. 바로 구본무 LG그룹 회장.
구 회장에게서 이런 얘기를 처음 듣게 되는 임원은 그 순간 머리 속이 잠시 혼란스러워진다. 총수, 그것도 다름아닌 오너총수의 입에서 나오는 말로는 그 언사가 너무 정중해서 혹시 다른 의도가 있지 않나 의심마저 든다.
하지만 이내 한 번 더 되새겨 보면 그런 극진함에서 느껴지는 ‘깊은 뜻’, 다시 말해 회장의 경영마인드를 깨닫고서는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재계의 대기업 임원들 사이에서는 마치 ‘부럽다는 듯’ 자주 오가는 대화 소재 중 하나이기도 하다.
LG그룹 구씨 일가의 여러 경영진 중에서도 구본무 회장은 가장 출중한 경영 마인드를 가진 것으로도 이름 높다. 기업이 나가야 할 전략과 지략을 갖추면서도 휘하 ‘장수’들의 마음을 얻는 능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세평에서다.
말과 행동에서 드러나는 그만의 특출한 ‘용병술’은 경영자로서 구 회장이 지ㆍ덕ㆍ예 3박자를 고루 갖췄다는 찬사를 받기에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구본무 회장은 그 자신의 취미와 기호까지도 이런 용병술의 도구로 활용한다. 골프와 와인.
지난 해 초 LG텔레콤 사장으로 재직 중이던 남용 사장이 구 회장과 주말 골프에 나선다는 얘기가 재계에 들렸다. 이어서 나온 얘기는 ‘남용 사장이 LG데이콤 사장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소문.
구 회장이 중요한 인사나 결정을 앞두고는 주요 임원들과 골프 회동을 갖는다는 ‘통계적’ 경험에서다. 결과적으로 관측은 빗나갔지만, 그런 소문이 날 정도로 구 회장의 ‘필드경영’은 재계에서 유명하다.
구 회장은 평소에도 임원들과 골프라운딩을 종종 하는데, 이는 임원 개개인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그런 시간을 통해 얻게 되는 개개인의 특성과 자질 파악은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필드에서 ‘평가’를 받게 되는 임원들로서는 한편 부담스러운 시간이지만, 구 회장은 동반라운딩하는 임원들의 긴장을 자연스럽게 풀어 주기로도 유명하다.
총수 앞이라면 대개 주눅들게 마련인데, 구 회장은 ‘가벼운 말 몇 마디’만으로 분위기를 확 풀어주는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 때문에 “회장과 골프를 하면 오히려 실력이 제대로 나온다’고 임원들이 얘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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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보기보다 트리플이 낫다.” 구 회장이 임원들과의 라운딩에서 자주 강조하는 골프철학이다. 난코스일수록 러프에 빠질까, OB날까 염려해 소심한 샷을 하기보다는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공략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필드에 나가기 전 연습장에서 충분히 연습을 해야 한다”, “라운딩할 때는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임원들에게 기업경영에서 기본기와 승부근성을 요구하는 우회적 표현이다.
와인을 좋아하는 구 회장은 LG그룹이 갖고 있는 곤지암CC에서 가까운 곤지암 리조트에 대형 카브(와인저장창고)를 지을 정도로 와인 문화에도 깊은 조예가 있다. 골프를 함께 친 임원이나 손님들을 이곳에 초대해 와인이나 김치까지 차 트렁크에 담아 선물로 보내는 정성과 배려를 받은 이들은 모두 구 회장의 팬이 되고야 만다.
골프나 와인이 좋아 그저 즐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여가시간조차도 자신의 경영철학과 커뮤니케이션의 전파채널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구 회장은 평범한 인식 수준을 뛰어 넘는다.
구 회장은 올 초 실적주의에 입각한 인사를 과감히 단행했다. 그리고 결과는 ‘대 만족’. 3대 주력기업이라 할 수 있는 전자-화학-LCD의 3분기 실적이 호조로 나타나면서 이들 기업은 지난 해의 부진을 씻고 ‘부활의 노래’를 불렀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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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식차장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