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국내 증시서 외인 순매수일 주가상승률 대폭 감소폭등장서 단물 빨아먹은 외국 자본 다른 투자처로 유출국내 펀드 열풍 따른 기관들 자금력 확대도 완충재 역할

‘오마하의 현인’이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에는 과연 마법의 힘이 서려 있는 듯했다.

세계적인 가치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10월 25일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불과 반나절의 짧은 시간 동안 체류했지만 그는 자신의 명성을 유감없이 증명하고 돌아갔다.

워런 버핏은 버크셔해서웨이의 계열사인 대구텍을 방문한 자리에서 한국경제에 대한 낙관론을 펼쳤다. 특히 “한국 증시의 주가가 최근 많이 올랐지만 여전히 저평가돼 있으며 앞으로 10년 동안은 계속 성장할 것”이라는 그의 발언은 전날 큰 폭 하락한 코스피 지수를 40포인트 이상 반등세로 끌어올렸다. 그야말로 ‘워런 버핏 효과’에 다름 아니었다.

이 같은 워런 버핏 효과는 한국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이 갖는 영향력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지난 25일 대구텍을 방문한 워런버핏(오른쪽)이 많은 취재진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국 증시는 1990년대 초 1,000포인트 시대를 열고 올해 마침내 2,000포인트 시대의 막을 올렸다. 그 기간 동안 외국인은 때로는 주가 상승을 이끌기도 하고 때로는 주가 하락을 부채질하기도 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외국인이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워 한국 증시의 방향타를 좌지우지하는 ‘키 플레이어’ 구실을 해왔다는 점이다.

우리나라가 증시를 외국인에 처음 개방한 것은 1992년이다. 하지만 완전 개방은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본시장을 몽땅 열었던 1998년의 일이다. 그러니 올해가 외국인이 국내 증시에 본격 상륙한 지 10년째 되는 해인 셈이다.

최근 한국은행이 내놓은 ‘외국인 주식투자자금 유출입 요인 분석’이라는 제목의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 자금의 국내 증시 유입 및 유출액은 증시 완전개방 이후 매년 큰 폭의 증가세를 지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1998년만 하더라도 각각 128억 달러, 99억 달러에 그쳤던 외국인 주식투자자금 유입액과 유출액은 올해 상반기에만 각각 1,144억 달러, 1,173억 달러를 기록했다. 연 평균 증가율은 각각 32.6%, 33.7%에 달한다.

이 같은 외국인 자금 유출입 규모는 전체 자본 유출입액 대비 비중이 55%를 넘을 뿐 아니라 총외환 유출입액 대비 비중도 27%에 이를 만큼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매우 크다.

이에 따라 외국인 투자자들의 움직임이 국내 주가 결정에 미치는 요인이 커지고 국내외 주식시장 통합도가 높아지는 등 외국인 주식투자자금 유출입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증대됐다는 게 한은의 분석이다.

실제 1999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 동안의 주가 흐름과 외국인 매매 동향 사이의 상관관계를 살펴 보면 외국인의 국내 증시에 대한 영향력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기간 외국인 순매수일의 주가 상승률은 연 평균 0.5%로 기관투자자의 0.4%를 웃돌았으며, 외국인 순매도일의 주가 하락률 역시 0.5%로 기관투자자의 0.3%를 상회했다.

아울러 국내 종합주가지수와 미국의 나스닥 및 다우존스 지수와의 상관관계도 2000년대 들어 눈에 띄게 긴밀해졌다. 한은의 분석에 따르면 국내 주가지수와 나스닥 지수의 ‘상관계수’는 1995~1997년 –0.17에서 1999~2006년 0.72로 높아졌다. 또 다우존스 지수와의 상관계수 역시 같은 기간 –0.27에서 0.61로 크게 상승했다.

즉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미국 증시와 별 연관성 없이 움직이던 국내 증시가 2000년대 들어 함께 움직이는 이른바 동조화(커플링)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최근 몇 년 사이 외국인 자금의 영향력이 감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 외국인 순매수일의 주가 상승률은 2001년 0.8%에 달했으나 2003년 0.5%, 2005년 0.3%로 줄어든 데 이어 지난해에는 0.1%까지 내려앉았다.

또한 외국인 순매도일의 주가 하락률도 2001년 –0.7%나 됐지만 지난해에는 0%를 기록했다. 다시 말하면 외국인이 손을 털고 나가는 날에도 국내 주가지수는 추락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만큼 국내 증시 내에 외국인의 급격한 행보에 따른 충격을 제어할 수 있는 완충재가 생겼다는 뜻이 아닐까. 실제 증시 전문가들은 3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펀드 열풍으로 시중자금이 눈덩이처럼 몰리면서 이제 국내 증시도 웬만한 외풍에는 크게 흔들리지 않는 정도의 체력을 갖췄다고 평가한다.

한 투자증권사 펀드매니저는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 여파로 외국인들이 빠져나가던 얼마 전에도 국내 증시는 예상만큼 큰 충격을 받지 않았고 오히려 펀드 자금이 주축이 돼 주가를 회복했다”며 과거와는 달라진 국내 증시의 모습을 설명했다.

하지만 1998년 이후 대규모 순유입 추세를 보여오던 외국인 자금이 2005년을 기점으로 순유출로 돌아섰다는 점은 그냥 간과하기 곤란한 새로운 현상이라는 지적이다.

한은에 따르면 외국인 자금은 2005년 39억 달러 순유출을 기록한 뒤 2006년에는 무려 162억 달러로 그 규모가 폭증했다. 이에 대해 한은은 국내 주가상승률 확대로 외국인들이 증가한 투자수익을 실현한 게 가장 큰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외국인의 국내 주식 보유비중이 국제 평균 29.8%를 훨씬 넘는 37.3%(2007년 3월 기준)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에 사실상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의 순유입 기조는 종식됐다는 게 한은측의 설명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중국과 인도 등을 비롯한 매력적인 신흥시장이 2000년대 이후 속속 등장하면서 한국이 가졌던 대표적 신흥시장의 메리트가 상대적으로 희석된 점도 외국인 자금 순유출의 주요 배경으로 꼽는다.

말하자면 단물을 충분히 빨아먹은 만큼 다른 투자처를 찾아 자연스럽게 떠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실의 조사에 따르면 1992년 이후 외국인이 국내 증시에서 벌어간 돈은 무려 323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 의원은 “외자 만능론이 부른 심각한 규모의 국부 유출도 문제지만 외국인의 국내 금융자산 가운데 유동성이 높은 주식 비중이 절반을 넘는다”며 “주가가 오르면 외국인이 회수해 갈 돈도 그만큼 많아져 단기 대외지급 능력을 악화시킬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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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