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쿠부치 사막에 600헥타르 생태원 조성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 임직원, 건조한 땅서 잘 견디는 포플러 등 식수방풍림 수준 넘어선 황사 방지 첨병… '한중 미래숲 가꾸기' 활성화 한몫

사막으로 들어서자 매서운 바람이 얼굴을 얼얼하게 만들었다. 10월 31일 중국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쿠부치(庫布齋) 사막의 칼바람은 매서웠다.

10월 하순이지만 벌써 영하 4도까지 내려왔다. 겨울로 접어든 것이다. 사막 특유의 모래바람은 눈을 뜨고 있기조차 힘들게 했다. 현지 주민들이 ‘죽음의 땅’이라고 부르는 곳.

이날 오후 쿠부치 사막의 한쪽 구석에서 자연의 냉혹함에 맞서며 생태를 복원시키려는 작은 노력이 시작됐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비롯한 대한항공 임직원 70여 명이 쿠부치 사막 내 600ha(180만평)를 녹색 생태원으로 만들기 위해 힘차게 땅을 팠다.

곱은 손으로 딱딱해지기 시작한 사막에 깊이 70~100㎝의 구덩이를 파고, 건조지대에서 잘 견디는 사막버드나무(沙柳)와 포플러를 심었다. 나무 막대기 같은 포플러 묘목을 심고 물을 주는 정성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한국으로 날아오는 황사를 막겠다는 일념으로 그 최전선에서 한 그루 두 그루 심으면서 이들의 이마에 어느덧 송글송글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이날 대한항공이 식수한 지역은 한중문화청소년협회 미래숲(한중미래숲ㆍ대표 권병현 전 주중대사)이 조성할 예정인 1만 6,000ha 규모의 쿠부치 사막 녹색 생태원의 일부이다.

대한항공은 생태원 조성사업에 처음 참여한 기업이다. 대한항공은 모두 6억 원을 들여 향후 5년간 180만그루를 심을 계획이다. 동진(東進)하는 사막화를 막기 위해 쿠부치 사막의 동쪽 끝 자락에 위치한 대한항공 생태림은 사막화 방지의 첨병이라 할 수 있다.

조양호(오른쪽) 한진그룹 회장이 막내딸 조현민 대한항공 과장과 함께 쿠부치 사막에서 나무를 심고 있다.

모래 바람을 맞으며 나무를 심은 조양호 회장은 “한국으로 날아오는 황사의 40%가 네이멍구 사막에서 온다”며 “황사를 원천 봉쇄하는 데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사막화의 심각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대한항공은 2004년부터 몽골 바가노르 지역에도 숲을 조성 중이며, 이산화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친 환경 기종(항공기)을 적극 도입하는 친 환경 경영을 추진해오고 있다. 조 회장은 “다른 건 몰라도 환경문제에서만은 국경이 없다”며 “황사에 지속적인 관심을 쏟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 이종희 대한항공 사장 등 주요 임직원이 총망라된 데서도 조 회장의 열정을 읽을 수 있었다.

대한항공 직원들은 포플러 묘목을 심은 뒤 자신의 이름을 적은 표지를 달고 뭔가 해냈다는 흐뭇한 표정들이었다. 지미라 대한항공 객실승무부 과장은 “넓고 막막한 사막에 나무를 심어 생태환경을 복원한다는 게 힘든 도전이라는 것을 실감한다”며 “하지만 한 그루 한 그루 심어 나가면 자연도 받아 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이 행사에 함께 참여한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은 “이전에 심었던 나무들이 조금씩 자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사막화 방지가 진전되고 있음을 느낀다”며 “이 사업은 갈증 날 때 물을 마시면 금방 해갈되는 것처럼 속히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사업이 아니어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 회장은 “사막을 사람이 살 수 있게 만드는 이 사업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개발사업”이라고 강조했다. 한중미래숲 이사이기도 한 장 회장은 2006년 10월 녹색장성 사업이 개시된 이래 이번을 포함해 4차례나 쿠부치 사막을 직접 찾으며 사업을 적극 후원하고 있다.

이날 식수 행사 참가자들은 200년 전 만해도 광활한 이곳 쿠부치 사막 대부분이 양들이 풀을 뜯던 초원이었다는 현지 주민들의 설명을 듣고는 놀랐다.

베이징(北京)에서 서쪽으로 2,000㎞ 떨어진 쿠부치 사막은 몽골어로 활시위 모양의 사막이라는 뜻이다. 면적은 남한의 5분의 1 정도인 1만 8,600㎢이며 모래 사막이 61%이고 나머지는 자갈 또는 흙먼지로 이뤄져 있다.

쿠부치 사막은 주변의 사막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 대책이 절실하다. 30년 전만해도 곳곳에 초원이 남아있었지만 급속한 사막화로 초원은 자취를 감추었다. 중국 정부는 1990년대 초반부터 식수 사업을 벌여 지금까지 3만 그루를 심었지만 역부족이다.

장재구(왼쪽) 한국일보 회장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대한항공 생태림 기념비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쿠부치 등 네이멍구 사막의 황사는 봄철 편서풍이 불면 하루 만에 한국에 도착한다. 한반도와 중국 동부의 3억 인구에 막대한 피해를 끼친다. 한국의 황사 피해액만도 매년 7조 원에 이른다.

대한항공의 참여로 새로운 녹색장성 사업의 활성화 전기를 맞은 한중미래숲은 2006년부터 이곳에 150만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는 식수사업을 벌여 올 5월 산림청 및 SK 방풍림, 7월 2007년 미스코리아 후보 방풍림 등을 조성했다.

이날 행사는 종전 식수사업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쿠부치 사막 동쪽 끝 남북을 가로지르는 3,587ha(남북 길이 28㎞, 동서 폭 3~8㎞) 규모의 사막에 단순히 방풍림만을 조성해온 한중미래숲이 이날을 계기로 사막을 생태공원으로 탈바꿈시키는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황사방지 방풍림 조성 차원을 뛰어넘어 사막의 생태를 초원과 숲으로 복원시키는 종합적인 프로젝트로 전환된 것이다.

이를 위해 한중미래숲은 사막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1만 6,000ha의 면적을 추가로 확보했다. 한중미래숲은 향후 5년간 최소 500만 그루 이상의 나무를 이곳에 심을 작정이다.

권병현 대표는 “이제 사막화에 역습을 가하는 작업이 개시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조 회장과 권 대표 등은 이날 행사를 마무리하면서 4륜 구동 차량을 직접 타고 생태원 예정지인 사막 한가운데를 둘러보며 굳은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한국기업의 중국 내 환경사업은 기업 이미지 제고와 영업 여건에도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가까운 후춘화(胡春華) 공청단 제1서기는 11월 1일 한중미래숲과 쿠부치 사막 생태원 프로젝트 사업을 확정하면서 조 회장, 장 회장 등과 사막화 방지 등에 관한 의견을 나누었고 차오웨이저우(曹衛洲) 전인대 부비서장도 인민대회당에서 공식 오찬을 주최하면서 이 사업을 격려했다.

쿠부치사막(네이멍구자치구 다라터치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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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섭 베이징 특파원 young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