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100엔숍' 다이소산업에 20년간 6만여 종 제품 공급값싸고 품질좋은 생활용품 팔아 '티끌 모아 태산' 이룩"물건만 좋다면 어디든 좋다" 지구 30바퀴 발품… 국내시장 개척 10년만에 전국 380개 매장 설립

“천원이 가치 있다.” “천원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억대의 돈도 싱겁게 여겨지는 ‘거품 시대’에 이런 말을 하면 웬 뚱딴지 같은 소리냐 하는 타박을 받기 딱 좋을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 지금 주머니에 단돈 1,000원이 들어 있다면 그것으로 소비할 수 있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될까. 가장 대중적인 건강식품인 우유 두 개를 사서 나눠 먹기에도 빠듯할 뿐더러, 버스나 지하철로 어디를 가고 싶어도 가까운 거리의 편도(片道) 요금밖에 되지 않는 돈이 바로 1,000원이다.

그런데도 분명 1,000원이 가치 있으며 나아가 1,000원으로 행복을 느낄 수도 있다고 확신에 찬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 주인공은 국내의 대표적인 균일가 생활용품 전문유통업체 다이소아성산업(이하 다이소)의 모기업인 한일맨파워 박정부 대표다.

“다른 유통매장에서 만원씩 주고 파는 제품을 우리 매장에서는 천원에 살 수 있어요. 품질이나 디자인 측면에서 똑같은 제품인데 말이죠. 싼 것은 무조건 나쁘다고 보는 통념은 잘못된 겁니다. 다이소를 모르는 사람은 ‘생활의 둔치’가 아닐까요.”

박 대표의 이런 말은 자기 제품에 대한 단순한 자화자찬이 아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고 합리적인 것으로 정평이 난 일본 소비자들로부터 지난 20년 동안 제품에 대한 검증을 받았다.

다이소 매장에서 판매되는 제품들은 ‘100엔숍’의 대명사로 불리는 일본 최대 균일가 유통업체 다이소(大創)산업의 제품과 동일한 품질을 가졌다. 한일맨파워가 바로 다이소산업에 제품을 납품하는 최대 공급업체이기 때문이다.

한일맨파워는 다이소산업에 연간 5억 개가 넘는 제품을 납품하고 있다. 1억2,000만 인구의 일본인이 1인당 평균 4개 이상의 한일맨파워 제품을 매년 구입해 사용한다는 계산이다.

이는 수출 실적으로도 뚜렷이 나타난다. 한일맨파워는 최근 매년 1,500억 원 이상의 제품을 다이소산업에 공급해 오고 있다. 다이소산업과 거래한 지난 20년 동안의 총 수출액은 무려 1조 원이 넘는다. 그야말로 ‘티끌’을 모아 ‘태산’을 쌓아 올린 셈이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박 대표는 지난 2002년 무역의 날에 철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는 다이소 제품에 대한 긍지와 애착이 남다르다. 단지 말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즐겨 애용한다. “직접 다이소 제품을 사용하느냐”고 묻자 주저 없이 윗도리에서 펜과 수첩을 꺼내며 “이게 모두 다이소”라고 맞받아쳤다.

그뿐이 아니다. 그가 신은 양말, 기자 앞에 놓인 찻잔, 집무실 안의 웬만한 사무용품 등이 모두 다이소 제품이었다. 직원들이 쓰는 각종 용품도 마찬가지였다. “집에서도 제가 판매하는 물건을 많이 씁니다. 주방 휴지와 장갑, 행주, 부직포 걸레, 발 매트 등 없는 게 없거든요. 안사람도 아주 만족하며 사용하지요.”

자기 제품에 대해 어지간한 사랑과 신뢰가 없으면 이럴 수 없을 터. 아닌 게 아니라 그는 모든 제품 아이템을 기획, 개발 단계부터 꼼꼼히 챙긴다. 다이소가 싼값에도 품질을 유지하는 비결 중 하나다. 박 대표 스스로는 품질관리기사 1급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한일맨파워가 지금껏 일본 다이소산업에 공급해온 품목은 무려 6만 가지에 달한다고 한다. ‘상품 소싱’의 대가 박 대표는 그간 자신의 손을 거쳐간 제품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6만 종의 상품을 모두 머리에 담고 있다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어떤 제품을 보면 우리 거다, 우리가 했던 거다, 금세 알아챌 수 있습니다. 머리 속에 각 제품마다의 특징이 자연스레 저장돼 있거든요.”

과장이나 허풍이 아닌 듯했다. 사람은 어딘가에 몰두하게 되면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은가. 하물며 가격 싸고 품질 좋은 제품이 있다면 지구촌 어디라도 찾아 다니는 박 대표의 열정을 감안하면 충분히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박 대표는 연 평균 20여 회 이상 해외 출장을 떠나는데 지금까지 항공편을 이용한 거리가 지구 30바퀴에 맞먹을 정도다.

그가 이처럼 발품을 부지런히 판 덕택에 한일맨파워가 제품을 조달하는 거래선은 전세계 28개국, 2,000여 제조업체에 이른다. 한국과 중국, 동남아지역의 비중이 높은 편이지만 일본, 유럽, 미주지역에서도 물건을 가져온다. 그런 까닭에 다이소 매장의 단골 중에는 ‘메이드 인 프랑스’ ‘메이드 인 이탈리아’ 등 산업선진국 제품을 거저 얻는 즐거움을 아는 고객도 제법 많다고 한다. ‘숨은 보물 찾기’의 재미라고 할까.

박 대표는 일본 시장에서 먼저 성공을 이뤘지만 한국 소비자들로부터도 인정받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1997년 아성산업 매장(아스코이븐프라자) 1호점을 열었으니 국내 시장을 개척한 지도 올해로 만 10년이 됐다.

특히 일본 다이소산업과 손잡고 합작법인 다이소아성산업을 세운 뒤 매장 상호를 다이소로 바꾼 2001년부터 본격적인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매출액 규모로 보면 2005년 790억 원, 2006년 1,050억 원에 이어 올해 1,500억~1,600억 원을 예상할 만큼 최근 성장세는 눈부시다. 매장 숫자도 올 10월 현재 전국에 걸쳐 380개에 이른다.

하지만 그 동안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싼 게 비지떡’이란 옛말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국민들의 허세가 낀 소비심리를 뚫어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내 사업 초창기에는 매장 앞에서 행인들이 ‘야야, 천원짜리 물건을 뭐 하러 둘러보냐, 쪽 팔린다’며 수군대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요. 그뿐이 아닙니다. 천원짜리 판다고 하니까 다른 사업가들이 저를 ‘천원짜리’로 보더군요. 뭐, 바보처럼 산다는 뜻이었겠지.”

그러나 고진감래라고 하지 않았던가. 인내와 정성으로 다이소 매장의 뿌리를 내려 온 결과, 이제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중산층 거주지역에서도 다이소 매장은 고객들로 적잖이 붐빈다.

“한국 소비자들의 의식이나 소비 패턴도 조금씩 합리적인 방향으로 바뀌어 나가는 것 같습니다. 또 다이소 매장을 고객들이 많이 찾아주는 건 결국 제품에 깃들인 정성을 인정해준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그런 데서 요즘 일을 하는 보람을 많이 느낍니다.”

박 대표는 ‘바르고 정직하고 성실하자’는 것을 경영의 제1원칙으로 삼고 있다. 임직원들에게도 “우리는 정직한 기업이다”라는 점을 늘 주지시킨다. 참 좋은 말이지만 요즘처럼 약삭빠른 세상에는 너무 우직한 느낌도 든다.

그 때문인지 놀랍게도 다이소의 매출액 중에서 순이익은 1%가 채 되지 않는다. 1,000원짜리 제품을 하나 팔면 겨우 10원을 남긴다는 것이다. 하긴 그 가격에 품질수준을 맞추려면 이윤을 내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박 대표는 왜 사업을 하는 것일까. 사람은 모두 돈을 벌려는 욕심으로 사업을 하는데 말이다. 그는 이렇게 답한다. “돈에 대한 욕심이 없냐구요. 물론 욕심이 없으면 사업을 못 하죠.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마진을 보고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죠. 일을 하다 보면, 일에 대한 열정으로 가다 보면 돈은 언젠가 벌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박 대표가 딱 한 가지 욕심을 내비쳤다. 언제나 그의 머리 속을 온통 채우고 있는 화두이기도 하다. 그것은 좋은 상권에 더욱 많은 매장을 출점시켜 보다 널리 다이소의 합리적인 소비생활을 전파하는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터무니없이 치솟은 땅값과 임대비용, 권리금 등이 출점 전략에 큰 장벽이기는 하지만 그는 멈춰서지 않을 것 같다. 1,000원이라는 가격과 적정한 품질의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 수만 가지 묘안을 짜내 왔던 그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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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