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속 인터넷 이용한 진화된 TV… 고화질 쌍방향 서비스 최대 무기법안 통과로 시장형성 본격화 예상… IPTV 서비스'불꽃 경쟁' 불가피

통신업계와 방송업계가 벌일 대결전의 서막이 마침내 올랐다. 그 격전장은 통신과 방송의 기술적 속성이 만나는 경계 지점인 IPTV(Internet Protocol TVㆍ인터넷TV) 서비스 시장이다.

이른바 통신ㆍ방송 융합(컨버전스)시대에 두 진영의 제휴 혹은 대결은 필연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3년 전 출범한 DMB(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가 통신과 방송의 ‘악수’라면 IPTV는 양보할 수 없는 ‘팔씨름’에 가깝다.

이는 IPTV가 통신과 방송의 기능이 융합된 새로운 서비스이지만, 기술적 장벽이 사라지는 추세인 까닭에 두 진영 모두 패권을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멀지 않은 미래에 통신과 방송이 하나의 플랫폼으로 합쳐질 가능성이 높아 미리 확실한 교두보를 마련하지 않으면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국회 방송통신특별위원회는 지난 20일 법안심사소위원회와 전체회의를 잇달아 열고 IPTV 법안인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사업법안’(가칭)을 의결했다. 이 법안은 올 국회 회기 내에 처리, 공포되면 3개월 후부터 시행된다.

이로써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의 ‘규제관할권 다툼’으로 3년 이상 난항을 거듭해온 IPTV 법제화는 특별한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셈이다. 그 동안 방송위와 정통부는 IPTV가 방송 서비스냐 통신 서비스냐를 놓고 사사건건 대립해 왔었다.

하지만 IPTV 법제화에 정부 부처보다 훨씬 신경을 곤두세웠던 것은 다름아닌 직접 이해당사자인 통신 및 방송업계다. 관련 법령이 어떻게 정해지느냐에 따라 업계의 판도가 크게 출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진영의 첨예한 관심 속에 모습을 드러낸 IPTV 법안은 일단 통신업계에 유리한 쪽으로 마련됐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무엇보다 기간통신사업자에게 단일 면허로 전국에 걸쳐 IPTV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이 주목된다.

또한 법안은 기간통신사업자의 자회사 분리를 강제하지 않고, 다만 전국적으로 77개로 나뉘어진 케이블TV 방송권역에서 최대 시장점유율을 전체 유료방송의 3분의1로 제한했다.

이 같은 핵심조항은 사실상 국내 최대 유선통신사업자인 KT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 때문에 IPTV와 경쟁관계인 케이블TV업계도 단단히 화가 났다.

이와 관련, 한국케이블TV방송국협의회(SO협의회)는 “(IPTV 법안이) 동일 서비스에 대한 동일 규제 원칙이 전혀 지켜지지 않았으며, 결론적으로 KT만을 위한 특혜 법안”이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SO협의회의 주장은 디지털케이블TV와 IPTV가 내용상 거의 동일한 서비스라는 점에서 설득력을 갖고 있다는 지적이다. 즉 IPTV 법안이 ‘이름’만 다르고 ‘실질’은 똑같은 서비스에 대해 차별적인 대우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케이블TV방송사업자(SO)들은 인수합병 등을 통한 대형화를 지향하고 있지만 방송권역 및 시장점유율에 대해 엄격한 규제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당연히 볼멘소리가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셈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국회가 수 년을 질질 끌어온 IPTV 법안을 이번 정권 임기 내에 어떻게든 매듭지으려 서두르다 보니 졸속 법안이 됐다는 지적과 함께 거대 통신사업자인 KT의 영향력에 휘둘린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이처럼 IPTV가 첨예한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만큼 IPTV가 갖는 잠재력이 크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특히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라는 거대한 흐름에 비춰 볼 때 향후 엄청난 수요 창출이 예상된다.

LG경제연구원 이영수 연구원에 따르면 IPTV의 수요 창출은 두 가지 측면에서 매우 낙관적이다. 우선 인터넷 등장 이후 소비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만 선택해 보는 쌍방향 서비스에 갈수록 익숙해져 가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소비자들이 융합형 서비스의 편리성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대목이다. 즉 초고속인터넷의 대중화로 인터넷, 전화, 방송 등 각각의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제공받고자 하는 욕구가 증대했다는 것이다.

현재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의 실시간 재전송을 제외한 서비스를 실시 중인 ‘프리(Pre)IPTV’ 시장의 고객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데서도 이런 흐름은 충분히 감지된다.

통신업계에 따르면 KT의 ‘메가TV’와 하나로텔레콤의 ‘하나TV’ 가입자를 모두 합치면 현재 프리IPTV 가입자는 거의 1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하나TV의 경우 지난 7월 50만여 명, 8월 54만여 명, 9월 59만여 명, 10월 66만여 명 등으로 꾸준한 증가 추세를 나타내고 있으며, KT도 지난 6월 5만5,000여 명, 7월 6만5,000여 명, 8월 7만3,000여 명, 9월 14만7,000여 명, 10월 23만여 명을 기록하는 등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워밍업’ 수준의 IPTV 서비스가 이 정도라면 다양한 서비스가 구현되는 본격 IPTV 시대는 훨씬 낙관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전망에 따르면 IPTV 서비스는 출범 후 5년이 지나면 생산유발 효과 12조9,000억원, 고용유발 효과 7만3,000명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낳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시장의 수요 못지않게 통신 및 방송업계의 전략적인 판단도 IPTV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동력이 되고 있다. 특히 통신업계의 야망이 더 크고 적극적이다.

현재 국내 초고속인터넷 보급률은 80% 안팎에 달한다. 단순하게 말해 국민 열 명 가운데 여덟 명 가량이 초고속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초고속인터넷 인프라를 보유한 통신사업자 입장에서는 기존 설비를 활용한 새로운 부가서비스 사업을 통해 매출확대를 노리는 게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렇지 않아도 국내 유선통신 시장은 거의 포화상태에 이르러 성장잠재력이 크게 떨어진 상황이다.

또한 통신업계의 IPTV 시장 진출은 한편으로는 케이블TV사업자들의 통신시장 영역 잠식에 대한 맞대응의 성격도 띤다는 분석이다. 초고속인터넷 보급 덕택에 최근 케이블TV사업자들은 통신사업을 새로운 수익원으로 만들어나가고 있다. 결국 초고속인터넷이라는 같은 무기를 갖고 통신업계와 방송업계가 건곤일척의 혈투를 벌이게 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상파 방송사들의 선택이 향후 IPTV 시장의 향배를 결정지을 중대 변수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상파 방송사는 시청률 기준으로 국내 방송 콘텐츠 시장의 80% 안팎을 점유하고 있는 방송 콘텐츠의 주력 생산기지다. 때문에 만약 지상파 방송사가 콘텐츠 제공을 거부하면 통신업계의 IPTV 가입자 유치는 큰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 시점에서는 회사규모가 비교적 작은 케이블TV업계가 통신업계와 맞서고 있는 상황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방송업계와 통신업계의 전면적인 기싸움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와 관련, 삼성경제연구소 이성호 수석연구원은 한 보고서에서 향후 IPTV 시장에서는 네트워크 기반 사업자(통신업계)의 콘텐츠 산업 지배 가능성 때문에 양자간 대립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결국 통신과 방송, 두 산업간의 타협과 양보가 이뤄지지 않으면 IPTV라는 새로운 융합 미디어는 각 가정에 뿌리를 내리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IPTV- 디지털케이블TV의 다른점과 공통점

통신 진영의 IPTV와 방송 진영의 디지털 케이블TV는 출신은 다르지만 여러 모로 닮았다.

IPTV는 가정에 연결된 초고속인터넷을 통해 방송 프로그램 등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최근 대용량 파일의 고속전송이 가능해지면서 PC로 방송을 볼 수도 있지만, IPTV는 초고속인터넷 망에 연결된 셋톱박스를 통해 직접 TV와 연결해 시청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미 홍콩, 유럽, 미국 등지에서는 상용 서비스가 확산 중이다.

반면 디지털 케이블TV는 기존의 아날로그 케이블TV를 디지털 기술로 전환한 방송이다. HD(High Definition)급 고화질과 고음질 방송은 물론 아날로그 방송에서는 불가능했던 쌍방향 서비스도 제공할 수 있는 등 한층 업그레이드된 케이블TV다.

주목할 것은 방송 송출 인프라가 각각 인터넷 망과 케이블 망으로 서로 다르지만 가입자는 똑같은 ‘TV 방송’을 본다는 점이다. 또한 고화질, 고음질, 주문형 비디오, T-커머스, 쌍방향 서비스 등 제공하는 서비스도 비슷해 시청자 입장에서는 차이를 느낄 수가 없다.

케이블TV업계에서는 막대한 재원을 들여 수 년 전부터 디지털 케이블TV로의 전환 작업을 진행 중인데, 바로 이 때문에 통신업계의 IPTV 진출을 놓고 밥그릇 싸움을 벌이게 된 것이다.

LG경제연구원 이영수 연구원에 따르면 현 단계에서 기술적 안정성이나 콘텐츠 확보, 다채널 및 고화질 서비스 측면 등에서는 디지털 케이블TV가 우세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IPTV가 일정 정도 보급되고 나면 판도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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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