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의 골격 '중창' 제조업체… 전세계 고급스포츠화 수요 10% 공급현금결제 원칙… IMF때 거래업체들 소재 공급 '보은'이익 30% 종업원에 투자… 근무환경 특급호텔 수준

세계의 고급 스포츠화 열 켤레 중 한 켤레에는 성신신소재(이하 성신)의 제품이 들어가 있다. 테니스 요정 샤라포바의 테니스화에도 이 회사 제품이 사용됐다.

성신은 중창 제조 전문업체다. 중창은 신발 밑창의 바로 윗부분으로 발바닥이 닿는 곳이다. 밑창이 미끄럼 방지 역할을 한다면 중창은 외부의 충격을 흡수하고 발바닥을 편안하게 하며 갑피(중창을 제외한 신발의 윗부분)가 쭈그러들지 않게 하는 신발의 골격이자 근육이다.

현재 전세계 고급 스포츠화 시장 규모는 연 4억~5억 켤레에 이른다. 이 가운데 10% 이상인 6,000만 켤레가 성신의 중창을 사용한다. 특수화를 포함하면 성신의 중창 매출 규모는 연간 1억 켤레에 이른다.

성신의 전체 임직원은 5,000여명, 수출액은 연간 1억 달러에 이른다. 눈길을 끄는 것은 국내 임직원이 연구개발과 마케팅 전문가 등 57명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나머지는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중국 등 4개국의 5개 공장에 분산돼 있다.

이 회사를 이끄는 임병문 회장은 첫 인상이 매우 차분하고 성실해 보인다. 또 지나칠(?) 만큼 예의가 바르고 상대에 대한 배려도 깊다. 필자를 마중하기 위해 공항까지 차를 보내는가 하면 식사에 대해서도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그는 화승화학에 10년쯤 근무하다가 독립해 지금의 성신을 만들었다. 회사를 차린 계기는 대기업 상사에 다니던 친구의 한 마디 말이었다. 어느 날 그 친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부터 엄청난 양의 신발용 특수고무 주문을 받았는데 이를 만들 업체를 찾지 못했다”는 푸념을 했다.

임 회장은 그 말에 신발 강국인 한국에서 그 정도도 만들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전국을 뒤져 특수고무 만들 곳을 찾았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직접 조그만 회사를 설립해 6개월을 고생한 끝에 특수고무 개발에 성공한다. 그 직후 곧바로 30만 켤레의 주문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생산능력은 1만 켤레에 불과했다.

현재 ‘신발도시’ 부산에 신발산업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대부분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로 공장을 옮겨갔다. 하지만 성신은 성공적으로 살아 남았다. 바로 기술혁신 때문이다.

기존의 프레스 공정은 EVA(에틸렌 바이닐 아세테이트) 원료를 발포시킨 후 발 모양에 맞게 재단한다. 이어 재단된 원료를 금형에 넣고 프레스를 가하면 위치에 따라 두께가 달라진 중창이 완성된다.

이 공정은 20단계의 작업이 필요하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또 재단 과정에서 50∼60%의 원료 손실도 발생한다.

반면 임 회장이 개발한 사출식 공정은 특별히 제작된 금형 안에 원료를 분사한 후 그 속에서 발포를 시킨다. 발포를 하면 부피 변화가 심하기 때문에 원료의 배합비율, 양, 프레스 온도가 정확하지 않으면 불량이 나기 쉽다. 하지만 이 공정은 3단계에 불과하고 시간도 2∼3분밖에 안 걸리며 원료의 손실이 거의 없다. 임 회장은 사출성형 공법으로 공정을 3개로 줄이고 생산성을 100배 이상 높였다. 한마디로 혁명이었다.

임 회장은 회사 경영에서 이른바 ‘4:3:3원칙’을 지킨다. 이익의 40%는 재투자하고, 30%는 종업원, 30%는 주주에게 돌린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직원만족을 위해 애쓰며 최고의 시설, 최고의 복지를 제공하고 있다. 한 예로 쾌적한 근무환경을 위해 회의실, 구내식당, 복도, 화장실 등은 거의 특급호텔 수준으로 꾸며 놓았다. 해외 공장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직원복지에 많은 투자를 하는 데는 그럴 만한 사연이 있다. 그가 처음 공장을 지은 부산 사상구 삼락동 일대는 비만 내리면 물난리가 나는 상습침수 지역이었다.

폭우가 내리던 어느 날 회사에 도착해 보니 간부 사원들은 없는데 갓 입사한 현장직원 한 명이 공장을 치우고 있었다. 경남 밀양에서 출퇴근하는 이 직원은 회사가 걱정돼 새벽 기차로 구포역에 도착한 뒤 낙동강 둑을 따라 회사까지 걸어왔다는 것이다. 임 회장은 그 순간 자신보다 더 회사를 사랑하는 직원을 위해 어떻게든 보답해야겠다고 결심한다.

그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1990년대 초반부터 부산의 신발업체들은 줄줄이 도산하면서 매출이 30~40% 정도 떨어졌다. 눈앞이 깜깜했다. 원재료 업체, 최종 신발업체는 모두 거인이다. 중간에 끼인 성신은 누구보다 어려운 입장이었다. 원재료는 현금으로 사는데 납품 대금은 어음으로 받았던 것이다.

그나마 업체들이 어려워지면서 수금도 잘 안 되기 일쑤였다. 어떤 때는 영업보다 수금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빼앗기기도 했다. 경제적, 시간적으로 손실이 엄청났다.

그는 이때 ‘중대결심’을 했다. 사정이 어렵더라도 물품대금은 매달 현금으로 송금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처럼 거래업체와의 신뢰를 쌓기 위한 노력은 IMF 외환위기 때 진가를 발휘했다.

신발 소재는 석유관련 제품이라서 당시에는 환율상승으로 자고 나면 값이 올라 돈을 주고도 재료를 구할 수 없었다. 바로 그때 대기업에도 물건을 주지 않던 거래업체들이 임 회장에게는 물건을 공급했다. 그만큼 신뢰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진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임 회장이 오늘날의 성공을 거둔 것은 화승 시절의 경험 덕분이다. 그는 화승에서 관리, 자재, 기술, 외주, 생산관리 등 다양한 업무를 맡았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통해 시야를 넓혔다.

임 회장의 화두 가운데 하나는 이른바 ‘지속가능 경영’이다. “경영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 멈추는 순간 쓰러진다.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페달을 밟아야 하고 기업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운전을 잘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외국에 공장을 지은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92년 그는 중국을 방문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인건비가 100배 이상 차이가 나는 국가와 경쟁한다는 것은 무의미하게 생각됐던 것이다.

임 회장은 외국에 진출할 때 합작 방식을 택했다. 현지공장 건립에 전액을 투자하지 않고 자신은 50~70%의 지분만을 가진 채 현지 기업인과 합작투자를 한 것이다. 각종 인허가와 인력관리 등은 현지 기업인이 담당하고 기술개발과 마케팅은 성신이 맡는 식이었다.

성신은 중창이 주력사업이지만 서서히 그 비중을 바꾸고 있다. 현재 매출구조는 부품소재 제조 70%, 자체 브랜드 신발 18%, ‘하바이아나스’ 등 해외 유명제품 유통 12%다. 중간재, 완제품 제조, 유통 등으로 분산투자를 하는 것이다. 부품소재도 신발에서부터 차량과 선박의 내ㆍ외장재, 의료용품, 헬멧과 생활용품 등으로 확대하고 있다.

무게가 기존 제품의 5분의1에 불과한 헬스전용 신발인 ‘런온’을 비롯해 ‘듀플렉스’ ‘보솜’ 등 자체 브랜드의 시장 점유율도 높여가고 있다. 또한 미래 신수종 사업으로 대체에너지인 바이오에탄올 사업도 구상하고 있다. 이를 위해 브라질 기업과 구체적인 논의도 진행하고 있다.

임 회장은 젊을 때 마라톤을 열심히 했다. 경영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매우 젊어 보인다. 뿐만 아니라 그는 책도 열심히 읽는다. 계속 살아 남기 위한 방법은 ‘평생학습’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좋은 책이 있으면 사서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요즘에는 문화 분야로 관심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 덕분에 오스트리아 명예영사도 겸하게 됐다. 소득이 높아질수록 문화가 중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임 회장의 지속가능 경영철학을 기반으로 성신이 계속 뻗어나갈 것을 기대해 본다.

■ 한근태 약력

한스컨설팅 대표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환경재단 운영위원

환경경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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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