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시작한 MIT·UC버클리가 선발주자… 국내서도 고려대 올 4월 동참우수학생 유치 위한 마케팅 측면 "좋아하는 일을 해야 성공이 찾아와요"

시공테크는 독특한 회사다. 설명하기 쉽지 않다. 각종 박물관, 과학관, 전시관, 테마파크의 전시공간을 만들고 특수영상을 제작한다. 국립생물자원관, 서울역사박물관, 제주국제평화센터, 행정중심도시홍보관, 포스코역사관, 국립중앙과학관천체관, 공룡전시관 같은 곳이 이 회사의 작품이다. 그 동안 만든 전시공간이 700여 곳에 이른다.

하지만 전시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적인 이벤트업체 피코그룹과 제휴해 7년째 각종 콘텐츠의 데이터베이스화를 진행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영국 BBC 등 국내외 방송사와 함께 교육 콘텐츠 사업을 벌이기 위해서다. 이미 300만 장 이상의 사진자료를 토대로 디지털 지식정보 창고를 구축하고 있다.

시공테크는 현재 전시에서 70%, 테마파크와 콘텐츠 사업에서 30%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데 앞으로 후자의 비중을 높여갈 예정이다. 특히 최근 유치가 확정된 여수박람회는 시공테크가 한 단계 더 점프하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2006년 매출은 607억 원, 순이익은 50억 원이다. 올해는 800억 원 정도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또한 확정된 수주액이 무려 1,600억 원에 이른다. 물론 여수박람회로 인한 부분은 반영되지 않았다.

필자가 박기석 시공테크 회장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최고경영자과정 교수를 하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는 처음부터 범상치 않았다.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별로 말은 하지 않지만 고수의 느낌을 주었다. 우연한 기회에 회사 이야기를 하는데 정말 독특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언젠가 인터뷰를 꼭 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결국 어렵게 허락을 얻어냈다.

박 회장은 1948년 전남 순천 출생이다. 우리 나이로 예순이다. 세 살 때 아버지를 잃었고, 그래서 아버지 얼굴조차 기억을 못한다. 가난했지만 그 자신은 가난한 기억보다는 잘 웃고 행복했다고 생각한다. 다른 성공한 사람들처럼 그 역시 타고나길 긍정적인 사람이다.

관심 많았던 전시이벤트 회사 창립 첫해 63빌딩 레이저쇼 빅히트
이듬 해부터 찾아온 6년연속 적자… 자신감 하나로 난관 뚫어
창조의 핵심은 지식과 정보… 여수박람회는 제2도약 찬스

그는 고교 졸업 후 11년 만에 대학교(고려대)를 졸업했다. 방황, 재수, 군복무, 휴학을 한 때문이다. 그런 것을 보면 젊은 시절의 방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는 책을 읽고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이 취미다. 작가를 꿈꾸기도 했었다. 지금의 일을 선택하게 된 것도 바로 엄청난 독서와 시간 날 때마다 상상하는 버릇 때문이다.

박 회장은 적극적이고 시대흐름을 잘 읽는 사람이다. 첫 직장인 율산에 입사하자마자 사우디로 발령을 받아 거기서 알루미늄 영업을 시작했다. 아무런 지식과 연고도 없는 그는 차가 많이 다니는 곳에 서 있다가 알루미늄을 실은 차를 보면 무조건 쫓아가는 식으로 일을 성사시켰다. 하루에 750km를 쫓아간 적도 있었다.

무모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적극적인 성격이다. 하지만 얼마 후 그 회사는 부도가 난다. 그는 1년간 방황하다가 중동에 건축자재를 파는 중계무역을 시작하는데 이 일을 통해 제법 큰 돈을 벌게 된다. 하지만 중동 경기가 식으면서 그 일을 그만뒀다.

성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자동적으로 찾아온다. 박 회장도 그런 경우다. 그는 중계무역을 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발견하게 됐다. 중계무역은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사업이다. 특히 주말에는 할 일이 없으니 더욱 많은 곳을 구경하며 돌아다녔다. 디즈니랜드, 유니버설스튜디오 같은 세계적인 테마파크에서부터 박물관, 과학관 등 안 가본 곳이 없다.

그는 박물관에 갈 때마다 특별한 호기심이 자라났다. 어떻게 저런 것을 만들었을까, 저런 것을 만들면 재미가 있을 텐데, 소득이 높아지면 우리나라에도 저런 산업이 될 텐데,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런 발상 끝에 마침내 1988년 시공테크를 세웠다.

위기가 없는 사업은 없다. 낭만적인 생각으로 회사를 만들어 멋지게 시작했지만 사업이란 것이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업종 자체가 부침이 심했다.

88서울올림픽 때 그는 스타가 되었다. 63빌딩을 스크린으로 삼아 레이저쇼를 국내 처음으로 시도했고 텔레비전에서도 이를 생중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림픽이 끝나자 일거리가 없었다. 89년 매출액은 4억 원이었는데 기자재 구입에만 5억 원이 들었다. 적자 폭이 너무 컸다. 이후로도 6년간 적자 행진을 이어갔다.

실망과 피곤함이 그를 덮쳤다. 하지만 이 사업은 반드시 된다, 될 수밖에 없다, 하는 확신은 버리지 않았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될 때까지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업에는 이런 확신이 정말 필요하다. 그는 필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부동산도 팔고 집도 팔았다.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다. 사업은 늘 선(先)투자를 필요로 한다. 또한 인내를 필요로 한다.

요즘 이른바 ‘창조경영’이 화두다. 하지만 말만 그럴싸할 뿐, 의미가 무엇인지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는 애매모호하다. 필자의 생각에 시공테크는 창조경영의 원조가 아닐까 싶다. 하는 일마다 매번 다르고, 남들이 한번도 한 적이 없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 업(業)은 창조가 생명입니다. 창조는 모방에서 옵니다. 모방을 위해서는 많이 보고, 듣고, 읽고, 경험해야 합니다. 창조의 핵심은 지식과 정보입니다.” 창조에 대한 박 회장의 철학이다.

창조란 것은 가만히 있는데 전광석화처럼 떠오르는 그 무엇이 아니다. 수많은 지식이 화학반응을 해서 어느 순간 ‘스파크’를 일으켜야 탄생한다. 그래서 그는 엄청난 양의 책과 잡지를 본다. 직원들의 창의력을 위해 회사의 도서구입비에도 제한을 두지 않는다. 뭐든지 신기한 것이 있으면 사야 한다.

창조의 또 다른 뿌리는 기술이다. 박 회장은 기술을 중시한다. 창조성도 기술이 뒷받침하지 못하면 공염불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흔해졌지만 회사 이름에 한국 최초로 ‘테크’란 단어를 붙인 것도 기술을 중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는 “전시ㆍ문화 관련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력과 이를 구현할 수 있는 것은 기술”이라고 강조한다. 박 회장의 철학 덕분에 시공테크가 보유한 특허 등 지적재산권은 243건에 이른다.

그는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성격적으로 완벽주의자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사업적으로는 완벽주의자가 아닌 사람이 문제가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때문에 품질을 매우 중시한다. 회사 이익과 프로젝트의 품질 가운데 중요한 것을 고르라면 서슴없이 품질을 선택한다. 이화여대 자연사박물관 프로젝트가 좋은 사례다. 박 회장은 적은 예산 때문에 원하는 품질을 만들 수 없자 2억 원을 더 들여 좋은 평가를 받았다. 물론 손실은 불가피했다.

자신의 사업에 대한 그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그래서 회사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홍보를 하지 않는다. 기업설명회를 한 적도 없단다.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이렇게 대답한다. “이 업계에서는 누가 뭐래도 1등입니다. 1등을 하면 재미가 있어요. 굳이 알릴 필요가 없지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실입니다. 남들이 알아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만족이 더 중요합니다.”

돈을 쫓는 사람에게 돈은 오지 않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돈이 몰린다. 돈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은 작은 위기도 심각하게 생각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큰 위기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다. 박 회장을 인터뷰하면서 든 생각이다. 시공테크를 통해 한국의 전시산업이 세계를 평정하는 날을 꿈꾸어 본다.

■ 한근태 약력

한스컨설팅 대표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환경재단 운영위원

환경경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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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