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막판 1·2위차 더 벌리는 '꽃가루 현상'

여론조사 방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어떤 식으로 질문하느냐’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직접적인 질문을 던지기 보다는 간접적인 질문을 통해 여론을 측정한다고 한다.

가령, 어떤 자동차나 담배를 좋아하는지 물어봄으로써 답변자의 성향을 파악한다는 것인데, 이는 많은 축적된 데이터와 분석 노하우가 있어야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여론조사는 아직 여러 기법을 활용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한 상태다. 예를 들어서 김밥과 볶음밥 선호도에 대한 여론조사를 할 때 “당신은 볶음밥보다 김밥을 좋아하십니까? (예/아니오)”라고 물을 수도 있고, “당신은 볶음밥과 김밥 중 어떤 것을 더 자주 드십니까? (볶음밥/김밥)”라고 물을 수도 있다.

언뜻 같은 질문인 것 같지만, 그 결과는 크게 다르게 나타난다. 심지어는 볶음밥과 김밥의 위치를 바꾸기만 하더라도 응답의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다.

우리나라 여론조사기관의 경우 이러한 차이에 따른 여러 기법을 합당하게 활용하기는커녕 당장 신뢰성조차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의도된 결과를 얻기 위해 하나하나의 단어를 조작하는 경우도 상상해 볼 수 있다.

우연히 여론조사 전화를 받는 경우에 그들의 문구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심하게 변형된 질문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 여론조사는 응답자가 여러 이유로 답을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에 선택할 수 있는 답변항목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 여론조사에서 흔히 응답률이 극단적으로 낮은 이유 중 하나는 모호한 질문과 선택지의 제한성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선거에서 출구조사가 허용된 것은 얼마 안 됐다. 지난 97년 대선에서 처음 이뤄졌는데 당시 선거법 때문에 제때에 결과발표가 이뤄지지는 못했지만 상당히 정확하게 선거결과가 예측됐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자신감을 갖게 된 여론조사기관들은 2002년 대선에서 더 많은 표본을 대상으로 출구조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선거당일 출구조사 결과 발표는 선거법에 의해 금지돼 좌절됐고, 그 결과도 크게 빗나갔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지율 차이가 미세한데다 여론조사 기법이 성숙하지 못했던 것이 그 원인이다

왜 대선후보들은 여론조사의 지지율 변화에 일희일비하는가? 여론조사 결과가 곧바로 선거 결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뜻 생각할 때는 여론조사 결과에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같이 여론조사를 오래 전부터 해왔던 나라에서조차도 후보들은 여론조사 결과에 일희일비한다.

왜 그럴까? 스포츠 경기를 보면 대부분 경기는 우세한 쪽과 열세인 쪽으로 나뉜다. 특별히 응원하는 선수가 없던 관중의 경우 경기가 시작될 때는 어느 쪽도 응원하지 않다가 경기 막바지가 다가오면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 진다.

첫째 부류는 이기고 있는 편을 응원하고, 둘째 부류는 지고 있는 편을 응원한다. 이때 이기고 있는 팀과 지고 있는 팀을 응원하는 비율은 상황과 관중의 성향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6:4 정도로 이기고 있는 팀을 응원하는 관중이 많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선거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데 선거 막판까지 존재하던 부동층이 1위를 하는 후보와 2위를 하는 후보를 대략 6:4 정도로 지지하게 되는 현상이라고 한다.

이를 꽃가루 현상이라고 하는데 1위와 2위의 차이를 더 크게 벌리는 효과로 작용한다고 한다. 여론조사가 실질적인 영향력은 전혀 없지만 스포츠 경기 도중의 점수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선거 막판에 다다르면 지지하는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유권자들을 한쪽으로 몰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후보들은 아주 조금의 차이라도 여론조사 결과 1위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 결과에 일희일비한다. 선거법상 투표일이 임박해서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지 못하도록 금지되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사실 여론조사의 기법에 따라 결과가 맞거나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여론조사를 조작하거나 악용하려는 사람들이 항상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론조사는 엄연히 과학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여론조사가 ‘과학’으로 대접받기 위해서는 조사기관의 깊은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고, 여론조사에 관련된 내용이 모두 공개되어 조사 자체의 신뢰성이 쌓여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도 많은 기관과 정당에서 여론조사를 실시해 결과를 발표했지만 표본추출과정과 질문 등에 대한 기본적인 조사방법조차 밝히는 곳이 없다. 이런 부분에서 공신력을 확보하지 않은 기관에서 발표한 조사결과는 일단 의심해 보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한다.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황춘성 may@minicactu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