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시장주의·친기업주의·작은 정부 추진과정서 '자기모순' 빠져경제수석 부활등 '크고 강한 정부'… 통신료 인하 반시장주의·포퓰리즘출총제 폐지는 친재벌주의로 비난… 대운하 강행 개발 드라이브 연상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한나라당은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줄곧 “경제를 살리겠다”는 구호로 국민의 마음을 파고든 끝에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 당선인 진영의 경제를 살리겠다는 슬로건은 참여정부가 실정(失政)을 펼쳐 경제가 죽었다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참여정부의 반(反)시장, 반(反)기업적 경제정책과 규제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 당선인과 차기 정부가 내세우는 정책기조는 친(親)시장주의, 친(親)기업주의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시장의 자율성을 중시하고 재정투자를 가급적이면 자제하는 ‘작은 정부’론도 같은 연장선상이다. 이런 기조에는 참여정부와 대립각을 세울수록 박수를 받는 분위기도 상당 부분 작용했다.

이 당선인은 지난달 28일 당선 후 첫 번째 외부활동으로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찾았다.

그 자리에서 그는 재벌 총수들에게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요청하면서 “지난 10년간 반시장적, 반기업적 정서로 기업이 편치 않았다. 앞으로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일은 없을 것이며 기업이 실질적으로 투자할 만하다고 느끼게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차기 정부는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friendly)한 정부를 만들겠다는 게 핵심”이라며 “나는 친기업적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할 수 있다”고 공언까지 했다.

물론 시장과 기업이 활성화하면 일자리가 늘어나고 경제가 살아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정부가 이를 북돋우는 것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당연한 의무다.

문제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통해 점차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이른바 ‘MB노믹스’의 정체성이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어떤 정책은 오히려 반시장적인 모습을 띠고, 또 어떤 정책은 친기업을 넘어 노골적인 친재벌 지향을 드러내는 등 중심과 균형을 잡지 못하고 오락가락하는 게 단적인 예다.

지난 연말 서울 삼청동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열린 인수위 첫 워크샵에서 이명박 당선인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부부처 축소개편을 추진하는 와중에 청와대 경제수석 제도를 부활시키고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를 통합해 기획재정부를 신설하기로 결정한 것은 작은 정부는커녕 오히려 ‘크고 강한 정부’를 목표로 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외견상 경제수석은 청와대가 경제정책을 효율적으로 총괄 조정할 수 있게 하고, 기획재정부 역시 경제부처 통합으로 행정 및 정책 효율화를 기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운용에 따라서는 청와대가 경제수석-기획재정부 라인을 통해 시장에 강한 입김을 불어넣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통상적으로 작은 정부는 정부조직과 공무원의 규모뿐 아니라 정부의 권력이 민간과 시장에 얼마나 미치는가 하는 측면을 함께 따져봐야 한다는 게 행정학자들의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차기 정부 조직개편안과 관련해 인수위 핵심 관계자들을 주목하기도 한다. 특히 사공일 국가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청와대 경제수석과 재무부 장관을 역임했고 강만수 경제1분과 간사도 재정경제원 차관을 지낸 까닭에 이명박 정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하는 ‘관치경제’로 회귀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없지 않다.

실제 통신료(휴대폰 요금) 인하를 둘러싼 논란은 벌써부터 ‘관치’ 시비를 낳고 있다. 대선 당시 통신서비스 요금 20% 인하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이 당선인은 현재 인수위를 통해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강구 중이다. 이를 위해 인수위에서는 이미 통신업계와 정보통신부 관계자들을 불러 요금인하 문제를 의논했다.

물론 국내 이동통신 요금은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비싸다는 지적이 심심찮게 제기돼 왔다.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휴대폰 과다요금 문제가 도마에 자주 올랐다. 하지만 시장경쟁이 아닌 정부정책으로 통신료 인하를 사실상 강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마케팅 비용상승으로 이익률이 줄어든 데다 지난해 망내 할인과 문자메시지 요금인하 등으로 여론을 상당 부분 반영한 터에 더 이상 인하하는 것은 무리”라며 “말로만 규제 완화를 외치지 말고 업계 자율에 맡겼으면 하는 게 솔직한 바람”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서민 주요생활비 절감’을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던 이 당선인 진영의 발상 자체가 애초부터 반시장적이었다는 지적을 제기하고 있다. 720만 명에 달하는 신용불량자 대사면 공약 역시 마찬가지다.

금융 소외계층의 고충을 덜어주고 경제적인 재기를 돕는다는 명분과는 달리, 신불자 사면은 금융기관의 신용평가 기능 상실과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 만연 등 시장을 왜곡하는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 당선인의 경제정책은 시장경제 원리보다는 오히려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훨씬 가깝다는 날 선 비판이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다.

서민 생계비 중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휴대폰요금 인하를 추진하는 인수위에 대해 통신업계는 반발하고 있다.

한 민간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차기 정부의 전반적인 정책기조를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몇몇 정책은 시장주의에 정면으로 배치할 뿐더러 단기간에 뭔가를 보여주려는 실적주의, 성과주의에 지나치게 연연하는 듯하다”고 꼬집었다.

기업활동을 제약하는 각종 규제를 대거 풀겠다며 거침없는 친기업 노선을 표방한 이 당선인의 행보에도 우려가 적지 않다. 시장경제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투명하고 공정한 ‘게임의 룰’이 전제돼야 하는데, 스스로 약속한 규제 완화라는 굴레에 갇혀 자칫 시장질서가 흐트러지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투자 활성화라는 명분 아래 거의 기정사실로 굳어진 출자총액제한제 폐지와 금산분리 완화 정책이 그런 예다. 사실 이 두 가지 문제는 오랫동안 재벌들이 풀어줄 것을 요구해온 그들의 숙원이지만 국가경제 전체적으로 득보다 실이 많다는 우려 때문에 금단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출총제를 폐지하면 7개 재벌그룹의 25개 계열사가 투자 규제에서 벗어나 다른 계열사 출자에 대해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게 된다. 문제는 출총제가 한국경제의 고질병 중 하나인 재벌에 의한 경제력집중 현상을 고쳐나가기 위해 마련됐던 제도라는 점이다.

외환위기로 뜨거운 맛을 봤던 재벌들은 김대중 정부 당시 강력한 구조조정 정책에 따라 부실 계열사를 매각하는 등 몸집을 크게 줄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경영안정을 되찾고 주력사업에서 막대한 이익을 남기게 되자 다시 슬그머니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해 지금은 거의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거나 훨씬 더 큰 덩치를 갖고 있다.

이런 마당에 이 당선인이 친기업 행보를 보이자 재벌들은 한 발 더 나아가 대기업집단 지정제도 폐지와 아울러 순환출자금지 등 대체입법도 하지 말아달라는 요구까지 하고 나섰다.

이와 관련, 경쟁 당국인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당선인 진영으로 쏟아지는 재벌들의 규제 완화 요구에 난감한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기업집단 지정제도의 경우 재벌 규제의 출발점인데, 이를 폐지하면 사실상 재벌을 규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출총제 폐지 역시 마찬가지다. 적절한 대안을 마련하지 않고 출총제를 폐지하면 재벌들의 문어발 확장과 부실화를 막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시민단체 등에서는 이 당선인 진영의 친기업적 규제 완화 정책이 결과적으로 재벌만 이롭게 할 뿐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얼마 전 성명을 발표하고 “외환위기 이후 재벌개혁을 위해 도입된 여러 법ㆍ제도적 장치들이 이명박 당선인 측에 의해 폐지 또는 무력화되는 지극히 우려스러운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며 “재벌개혁의 시계를 외환위기 이전으로 되돌리는 퇴행의 경제정책을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공세를 펼쳤다.

민주노동당은 아예 이 당선인의 친기업 정책을 친재벌 정책으로 규정했다. 기업규제를 완화해 투자 활성화를 유도한다는 그럴싸한 포장을 했지만 사실상 친재벌 노선을 천명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대선 과정에서 이명박 당선인의 손을 들어줬던 한국노총의 기류도 심상치 않다. 한국노총 내부에서는 이 당선인이 친기업, 친재벌 ‘과속행보’를 보이면서도 노동정책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자 “배신당한 거 아니냐”는 의구심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이 당선인의 최대 공약인 한반도대운하 개발 사업에 대한 논란도 점차 거세지고 있다. 이 당선인이 반대 여론을 의식해 “모든 절차를 밟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강행 의지 자체는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대운하 프로젝트를 전형적인 대규모 경기부양 국책사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차기 정부가 일자리 창출과 경제성장률 제고를 위한 핵심카드로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대목도 역시 이 당선인이 내세우는 시장주의와는 정면 배치되며, 오히려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개발 드라이브가 연상된다는 지적이 많다.

대선에서 패배한 주요 정당들도 총선을 앞두고 대운하 사업에 대한 집중 공세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국 주도권 향배의 변수가 될 수도 있다. 정권 출범 전부터 오락가락 행보에다 따가운 외부 비판에 직면한 ‘MB노믹스’가 과연 순항할 수 있을까. 결국 키는 이 당선인이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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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