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츠증권 김기범 사장 '근거없는 낙관주의자'의 놀라운 위기 돌파 능력"마음 비우고 최선 다하는 게 성공의 비결"

메리츠증권은 현재 업계에서 중간 정도 규모의 회사지만 꿈은 다부지다. 2007년 5월 CEO로 취임한 김기범(52) 사장이 2010년까지 업계 7위권에 진입하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마스터플랜도 확실하다. 먼저 체력을 다진 다음 증권사 인수합병에 뛰어들겠다는 것이다. 1년간은 수익성 확보를 통해 몸을 튼튼히 하고, 다음에는 파생상품 운용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메리츠의 특화된 부문을 강화할 계획이다. 형제 회사인 메리츠종금 내 투자은행(IB) 및 금융상품 판매 부문을 증권에 통합해 시너지를 낼 계획도 갖고 있다. 무조건 덩치를 키우기보다는 IB, 국제부문과 법인영업 등에서 차별화로 승부를 걸 생각이다.

그래서인지 금융시장에 쓰나미를 몰고 올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 시행도 반긴다. 이런 변화가 위기가 될 수 있지만 성장의 계기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취임 6개월 만에 470억 원의 세전이익을 내는 등 벌써 좋은 성과도 보이고 있다.

국내 7위 증권사로의 도약이란 비전이 지금으로서는 다소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그를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김 사장의 과거 행적을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그는 메리츠증권에 오기 전 6년간 메리츠종금(옛 한불종금) 대표를 맡았다. 종합금융사는 한때 꿈의 직장이었지만 외환위기 이후 몇 개를 제외하고는 거의 사라졌을 만큼 변화의 폭풍을 맞았다. 그가 취임했을 때 회사는 만년 적자 상태였다. 돌파구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 새로운 사업을 위해서는 프랑스 파트너 회사의 승인을 받아야 했는데 이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사건건 발목을 잡혔다.

직원들도 변화를 싫어했다.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사업을 벌이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신규사업을 위한 직원 채용까지 반대했다. 직원들 사정도 딱하긴 했다.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사주 구입을 위해 회사 융자를 받았는데 주가가 폭락하면서 갚을 방법이 없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최악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김 사장은 적자 회사를 2년 만에 흑자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비전을 제시하고 직원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부실채권을 정리하고 사업모델을 재정비했다. 자산운용과 인수합병, 해외자금 조달 등 수수료 수입이 가능한 사업을 확대해 수익구조를 개선한 끝에 알짜회사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그를 보면 사람의 말이 얼마나 큰 힘을 가졌는지를 알 수 있다. 특히 부모의 말이 자식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그는 ‘근거 없는 낙관주의자’란 별명을 갖고 있는데, 이게 성공의 중요한 이유다. 둥근 해가 떠오르는 태몽을 꾸고 박 사장을 낳은 어머니는 늘 그에게 “너는 잘 될 거야”란 말을 했다고 한다. 그 덕에 그는 어릴 때부터 긍정적이고 자신감에 넘쳤다.

이런 긍정성은 여러 번의 위기에서 빛을 발했다. 대우증권 런던지사장으로 근무할 때 러시아가 파산했다. 그 때문에 한 은행으로부터 레버리지(지렛대 효과)를 일으켜 판매한 펀드에 문제가 생겼다. 투자를 의뢰한 파트너가 오리발을 내밀어 1억 달러 가까운 돈을 물어줄지도 모를 위기가 발생한 것. 보통 사람 같으면 하늘이 노래질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모든 일이 잘 될 거라는 특유의 마음가짐 때문이었다. 침착하게 증거를 수집하고 변호사 자문을 받았다. 이를 근거로 협상을 하면서 돈을 받아내 오히려 회사에 기여를 했다. 위기는 위기라고 생각할 때가 정말 위기다. 낙관주의자 앞에서 위기는 힘을 쓰지 못하는 법이다.

필자는 김 사장이 한불종금 대표이던 시절 그 회사를 교육하면서 몇 달간 그를 볼 기회가 있었다. 당시 상황은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늘 밝았다. 그것이 궁금해 이유를 물어봤다. 그의 답변이다. “저는 일 자체를 즐깁니다. 아무리 심각해도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힘들수록 링 밖에서 링 안에 있는 나를 보려고 합니다. 그러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입니다. 힘들수록 한 발짝 떨어져 상황을 봐야 합니다.”

그는 문제해결 방식에 대해서도 특별한 생각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문제점과 현상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정확하게 파헤쳐진 문제점은 반은 해결된 거나 다름없습니다. 당시 가장 큰 문제는 선수들이 다들 링 밖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얻어맞더라도 링 안으로 들어와야 하는데 링 밖에 있으니 무슨 성과를 낼 수 있겠습니까? 저는 직원들을 링 안으로 끌고 들어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의 경영철학은 ‘최선을 다하자, 마음을 비우자’이다. “거창한 비전이나 계획보다는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 일이란 것이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잖아요.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좋은 일이 일어나고 새로운 기회가 생기더군요.”

자신의 철학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자기 역량에 맞는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300의 역량을 가진 사람이 100의 일을 하면 힘이 빠집니다. 나른해지지요. 500의 일을 하면 욕심이 생깁니다. 힘이 들어가지요. 뭐든지 힘이 들어가면 좋은 성과가 나오지 않지요. 자기 그릇에 맞는 일을 하면 마음을 비우게 되고 거기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3,000의 성과도 나올 수 있지요.” 마치 철학자 같은 생각이다.

그는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와튼스쿨)에서 공부했고 씨티은행에서 6년간 일했다. 또 대우증권 런던지사장으로 3년간 근무했고 헝가리 대우은행에서 4년 반 일했다. 한불종금이란 한국-프랑스 합작회사에서는 5년 이상 근무했다. 그래서인지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과 어울려 일하는 데는 완전 ‘선수’다. 그만큼 유연하고 부드럽다.

“외국 사람들과 일을 하려면 철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헝가리 사람들은 잔업이란 것을 안 합니다. 일은 밀렸는데 ‘칼퇴근’을 하기에 처음에는 섭섭했지요. 그런데 이들은 오후 4시 반에 아이들을 탁아소에서 찾아와야 하고 6시까지는 장을 봐야 하더군요. 이 시간을 놓치면 탁아소도 문을 닫고 장도 볼 수 없는 사정이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 이해하고 거기에 맞출 수밖에요.”

떳떳함도 그가 내세우는 큰 무기다. “제가 떳떳해야 직원들 앞에서 자신 있게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위기가 닥쳐도 극복할 수 있지요. 한불종금 사장으로 가서 처음 한 일이 바로 골프장 회원권을 모두 내다판 것이었습니다. 회사가 죽을 지경인데 골프 회원권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 같은 떳떳함, 당당함은 투명한 경영원칙과도 직결된다. “회사 안의 투명하지 못한 비자금 같은 것도 다 꺼내 공개했습니다. 결제를 받다 원칙대로 하지 않은 사실도 발견했습니다. 감독기관이 알면 벌금을 물어야 하는 사안인데 미리 자수를 하라고 했지요. 직원들은 의아해 하더군요. 하지만 무엇보다 금융기관은 투명성과 건전성이 중요합니다. 그게 무너지면 모든 게 사상누각이 되기 십상입니다.”

한국은 뒤떨어진 금융산업 때문에 외환위기를 겪었다. 돈도 잃고 정신적인 아픔도 겪었다. 하지만 그 때의 고통을 교훈 삼아 금융산업 경쟁력을 빠르게 높여가고 있다. 앞으로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메리츠증권은 그 변화의 선봉에 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2010년께 국내 7위 증권사가 되겠다는 김 사장의 포부가 이뤄지기를 기대해 본다.

■ 한근태 약력

한스컨설팅 대표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환경재단 운영위원

환경경영연구소 소장

<저작권자 ⓒ 한국미디어네트워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