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원유·비금속·농작물 등 가격 연일 사상 최고치달러가치 하락으로 투기세력들 대거 몰려추락하는 주식시장서 빠져나간 돈도 가세국제 원자재 값 폭등 언제까지…수급불안까지 겹쳐 당분간 오름세 지속될듯

과거에는 돌 잔칫집에 초대받으면 으레 아기에게 금반지를 선물하였다.

그래서 돌잔치를 끝낸 아이는 열 손가락마다 주렁주렁 금반지를 끼고 있는 진풍경도 연출되었던 터. 요즘에는 이런 모습을 보기 어렵다. 금반지의 가격이 워낙 비싸기 때문이다. 2년 전만 하더라도 금 3.75그램의 소비자 가격이 7만원 언저리였으나 지금은 껑충 뛰어올라 13만6천원에 이른다.

작년 말에 비하여서도 10% 이상 올랐다. 돌잔치에 선물하려고 선뜻 금반지를 사기에는 부담이 느껴지는 가격임에는 분명하다. 더구나 국제 금값은 연일 상승세를 거듭하고 있으니 지금의 가격이 끝이 아니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국제 유가는 심리적 저항선으로 간주되던 배럴당 100달러 수준마저 훌쩍 뛰어넘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되는 4월물 서부 텍사스 중질유(WTI)는 지난주 초 배럴당 103.95달러까지 올랐다.

과거 1980년의 1차 오일쇼크 당시 국제유가는 배럴당 38달러까지 치솟았던 터. 그것을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지금의 달러 가치로 환산하면 103.76달러가 된다. 그러니 최근의 국제유가는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더라도 역대 최고치를 넘었다.

100달러라는 심리적 저항선도 넘어선 데다 최고기록까지 경신하였으니, 국제 유가는 “신천지”를 달리고 있는 셈. 어디까지 오름세가 이어질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금값은 어느새 온스 당 1,000달러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국제 유가와는 달리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금의 가격은 아직 역대 최고기록에 미치지 못한다. 과거 국제금값의 최고수준은 1980년, 1차 오일쇼크로 인하여 인플레이션 우려가 강하였을 때 기록된 온스 당 850달러이다.

이를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현재 달러가치로 환산하면 2,300달러에 이른다. 국제 금값은 최근에 많이 올랐지만, 그래도 과거의 최고기록과는 한참이나 차이가 있다. 오를 여지는 더 있다는 뜻이 된다.

오르고 있는 것은 국제유가나 혹은 금이 전부가 아니다. 백금 가격은 온스 당 2,245달러까지 오르면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고, 은도 최근에 온스 당 20.61달러까지 치솟으면서 1980년 이후 최고기록을 넘어섰다. 구리도 신기록을 달성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 외에도 콩, 옥수수, 밀 등의 곡물가격도 연일 사상최고치를 넘어서고 있다.

대체 왜 이렇게 국제 원자재 가격이 치솟고 있는 것일까? 우선은 달러의 가치가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의 부동산 가격거품이 꺼지면서 금융기관의 서브 프라임 대출이 줄줄이 부실화되었고, 이것이 금융시장과 경기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결국 미국의 중앙은행은 금융시장의 신용위기와 경기침체를 서둘러 막는다는 구실로 달러 금리를 연속으로 인하하였다. 더구나 현재 달러의 기준금리는 3% 수준이지만 더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번 달, 그리고 다음 달에 있을 미 연방준비위원회 정례회의에서 달러 금리를 또 내리는 것은 거의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이는 달러의 매력을 낮추는 요인이 되고 그 결과 달러는 연일 약세이다.

예컨대 최근 외환시장에서 달러의 환율은 1유로=1.52달러를 넘어섰다. 결국 1999년에 유로화가 등장한 이후 달러는 유로화에 대하여 가장 낮은 수준으로 가치가 떨어진 셈이다. 달러화의 가치가 하락하고 투자수단으로서 매력이 낮아지면서 국제 투기자본은 달러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그리고 투기세력이 몰려간 곳이 바로 원유, 금, 구리 혹은 설탕 같은 국제 원자재 시장이다.

둘째로 주식시장이 하락하여도 원자재 가격은 오른다. 투자 자본으로서는 어딘가 수익을 창출해야 할 투자수단이 필요하다. 작년 10월 이후, 전 세계의 주식시장은 뚜렷한 하락국면이다.

미국의 경기가 둔화되고 기업의 실적이 악화되면서 다우지수 등 미국의 주가가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으며, 유럽이나 일본 등 선진국 증시 혹은 우리나라, 중국 등의 이머징 마켓도 똑같이 약세 국면이다.

결국 주식시장 하락을 견디지 못하고 빠져나온 자금이 국제 원자재 시장으로 몰린 것이다. 최근에는 각국의 외환보유고를 바탕으로 하는 국부펀드까지 원자재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원자재 가격이 워낙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고 수익률도 좋으므로 너도나도 참여하는 양상이다. 그리고 이는 필연적으로 가격 상승을 유발한다.

셋째로, 국제 원자재 시장에서 수급이 악화된 측면도 원자재 가격의 상승을 부채질하였다. 국제 유가의 경우는 OPEC의 원유의 생산 확대를 꺼리면서 가격 상승을 촉발하였다.

아울러 미국과 이란과의 긴장 상태, 나이지리아의 정정불안으로 인한 원유 공급중단 우려 등도 국제유가를 치솟게 만드는 이유였다. 거기에다 금, 백금, 구리 등의 금속은 수요가 늘어난다고 할지라도 공급이 따르지 못한다. 수요가 많아도 광산에서 무한정 금속을 채굴할 수는 없는 노릇.

결국 수요에 비하여 공급이 뒷받침할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 가격은 오르기 마련이다. 옥수수, 밀 등의 농산물도 마찬가지이다. 온난화 현상 등 날씨의 부조화로 농산물의 생산이 순조롭지 못하더라도 수요는 꾸준하기 마련이다. 거꾸로 말하여 수요가 늘더라도 농산물의 생산을 순식간에 늘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원자재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

바야흐로 국제 원자재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데다 앞으로도 상승세가 더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달러 약세에다 투기세력의 가세, 거기에다 수급불안까지 겹쳤으니 좀처럼 상승추세가 돌아설 것 같지 않다.

그리고 이는 고스란히 물가에 부담을 주는 요인이 되고 있다. 국제 밀과 옥수수의 가격 상승으로 원가부담을 견디지 못하자 결국 라면, 자장면, 과자류의 가격이 오른 것이 대표적이다.

작년 말부터 우리나라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정부의 억제목표인 3.5% 선을 거듭 넘어섰다. 통계청에 따르면 2월중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에 비하여 3.6% 올랐다.

소비자물가는 작년 10월에 3.0% 오른 이후 11월 3.5%, 12월 3.6%, 1월 3.9% 등으로 오름세를 계속하고 있다. 정부도 나름대로 대책을 강구하려고 애쓰고 있으나, 워낙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원가압력이 거세어서 근본적으로 물가 상승부담을 억제할만한 뾰쪽한 대책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인플레이션 부담은 가중될 공산이 높다.

근착 월스트리트 저널은 유가상승에 부담을 느낀 나머지 미국의 휘발유 소비가 16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고 전하고 있다. 그동안 석유를 펑펑 쓰던 미국인들도 이제는 자가용 대신에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대형차보다는 소형차를 이용하고, 교통비를 아끼기 위하여 직장 근처로 이사하는 경향도 나타난다고 한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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