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매도·국내 경제 펀더멘털 악화 등으로 원달러 환율 급상승외환딜러들 가치하락 계속 전망… 1달러=1,000원 시대 올 수 있다

우리나라가 IMF 금융위기를 겪기 전에만 하더라도 환율은 800원 언저리였다. 그러다가 IMF 금융위기의 와중에 환율은 크게 치솟았다.

이전처럼 800원만 있으면 1달러를 살 수 있었던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 되어버렸고, 2,000원은 있어야 겨우 1달러를 사들일 수 있었으니 그만큼 원화의 가치가 하락하였던 것이다.

이후 IMF 금융위기의 질곡에서 우리나라가 서서히 벗어나면서, 달러의 환율도 조금씩 내렸고, 급기야 작년에는 900원선마저 무너지는 상황도 벌어졌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는 환율의 추세가 작년과는 도무지 다르다. 달러 환율은 야금야금 오르더니 950원대에는 완벽하게 안착한 양상이다. 추세로 보아도 상승 흐름이 이어질 공산도 크다.

외환 딜러들 사이에는 심지어 올해 안에 환율이 1달러=1,000원까지 치솟을지 모른다는 견해도 나온다. 우리나라의 원화 가치가 더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하지만 환율 메커니즘의 내용을 약간만 깊숙하게 들여다보면 금세 이상한 현상이 발견된다.

왜냐하면 글로벌 외환시장에서는 달러의 가치가 내내 하락세이기 때문이다. 달러는 엔화에 대하여 이제 100엔 근처로까지 내려섰으며, 유로는 달러에 대하여 1.55 달러까지 치솟았다. 달러는 웬만한 국제 통화에 대하여서는 죄다 약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으니 속된 말로 “달러의 굴욕”이라고까지 부를 만하다. 사정이 이 지경이 된 것은 금리 때문.

서브 프라임 부실로 인한 금융시장의 신용경색, 또 경기 부진을 벗어나기 위하여 미국의 정책당국이 지속적으로 달러 금리를 인하하였고, 그것이 글로벌 시장에서 달러약세 현상이 나타난 주된 원인이다.

버냉키 미 연방준비위원회 의장은 지난 2월에는 열흘사이에 달러 금리를 무려 1.25%나 급하게 내려 기준금리 수준을 3%로 낮추어버렸는데, 이런 급격한 금리 인하 정책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당장 이번 주 3월18일로 예정된 금융시장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할 예정이다. 더구나 금융시장에서는 달러금리가 소폭 인하되는 것이 아니라 단번에 1%나 인하될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현재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조만간 달러의 수익률이 크게 낮아질 것이라는 말이 된다. 달러의 매력이 낮아지는 것은 당연하고, 이는 달러 약세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원화는 이처럼 힘없는 달러에 대하여서도 오히려 더 약세를 나타내고 있다. 달러는 왜 유난히 우리나라 원화에 대하여서만은 강세일까? 이유가 무엇일까?

시장의 관심이 높은 만큼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나라에서 달러 환율이 거꾸로 상승하고 있는 양상을 언급하였다. 한국은행은 달러가 강세인 이유를 두 가지로 해석한다.

한 은행직원이 100달러짜리 지폐를 세고 있다.

첫째로는 경상수지 적자가 환율이 오르는 주된 이유라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경상수지는 작년 12월(8억1천만 달러)과 올해 1월(26억 달러)에 연속하여 적자를 기록했다. 특히 1월의 경상수지 적자규모는 1997년 1월에 기록한 31억 3천만 달러의 적자 이후 최대 규모이다.

그런데다 한국은행은 2월에도 경상수지가 적자를 나타낼 공산이 매우 높다고 예상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연속하여 3개월 경상수지가 적자가 되는 셈. 이는 고스란히 외환시장에서 달러 강세, 원화 약세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국은행은 환율 상승의 두 번째 이유로 외국인들이 우리 증시에서 주식 매도를 늘리고 있는 현상을 들고 있다. 외국인들은 올해 들어 내내 우리 증시에서 매도로 일관하여 1월 이후 11조6천억 원(약 123억 달러)어치의 주식을 팔았다.

외국인들이 주식을 매각한 대금을 원화로 보유하지 않고 달러로 환전할 경우, 달러 매수 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과거 주식시장이 상승세일 때에는 주가가 오르면 환율이 하락하는 모습을 나타내었다.

외국인들이 우리 증시에 투자하기 위하여 달러를 원화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많았고, 그것이 환율 하락압력으로 작용하였던 것. 그런데 최근에는 거꾸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우리나라 증시에서 내내 매도로만 일관하고 있으니 환율로서는 상승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겠다.

그런데 외환시장에서는 이 같은 한국은행의 “공식적인” 설명 외에도 환율이 오를 이유가 더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경제의 펀더멘털이 나빠지고 있는 것이 주된 관심사이다.

과거 IMF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환율이 한때 2,000원까지 치솟았듯이, 이번에도 우리나라의 국가 경제상황이 상당히 악화되고 있으며, 그것이 환율 상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의견이다. 국제유가는 상승행진을 이어가고 있고, 동이나 아연 같은 원자재에다 밀 등 곡물의 급등세도 진행 중이다.

국제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우리나라의 수입물가 부담으로 이어지고, 결국 물가상승, 원화의 구매력 하락으로 연결된다. 최근 소비자 물가지수도 연이어 한국은행의 관리목표인 3.5%를 넘어 오르고 있기에 이 같은 분석은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또한 원화의 절상률이 과도하였기에 지금은 “원위치”를 찾아가고 있는 과정이라는 시각도 있다. 국제수지 적자와 엔론 사태 등으로 인하여 미 달러화가 본격적으로 하락추세로 접어든 2001년부터 작년 말까지 우리나라의 원화는 달러에 대하여 무려 40% 이상 평가 절상되었다.

반면 우리나라의 무역 경쟁국인 일본 엔화는 21% 절상되는데 그쳤고, 중국의 위안화는 15%, 그리고 대만의 타이완 달러는 10% 밖에 절상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달러에 대하여 강세를 보이고 있는 여타 아시안 국가의 통화와는 달리 지금 우리나라의 원화는 달러에 대하여 약세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과거 공직에 있으면서 환율 정책에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였던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과 최중경 차관이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을 지휘탑에 오른 것도 시장에서 원화가 약세를 보이는 이유로 손꼽힌다.

이런저런 요인들을 다 종합할 때, 올해는 작년처럼 환율이 하락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오를 공산이 높다. 1달러=1,000원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로되, 환율의 상승세는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다.

환율이 상승하면 수출업체들의 수익성은 나아지니 좋을 것이다. 하지만 거꾸로 환율이 오르면 국제 유가가 들먹이지 않더라도 당장 기름 값에 인상압력을 주는 등 마이너스 효과도 적지 않다. 당국으로서는 한 쪽만을 보고 환율 정책을 결정할 수도 없으니 항상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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