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초에 언론에 신종 병역기피 방법이 보도되어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신체 특정 부분에 힘을 주게 되면 순간적으로 혈압이 올라가게 되는데 이런 수법을 이용해서 신체검사에서 “비정상” 판정을 받아 현역 입영 대상자에서 빠진 사람들이 적발되었다.

당시 경찰이 4급 판정을 받고 공익근무요원 대상인 22살 김 모씨의 혈압을 재보았더니, 138에 85로 정상이었다. 하지만, 괄약근과 이두박근에 힘을 주고 다시 측정했더니 164에 113, 최고 혈압이 30가량 높은 것으로 측정되었다.

경찰 조사 결과 12명이 이런 수법으로 원인을 알 수 없는 이른바 ‘본태성 고혈압’ 판정을 받고 현역 입영을 피한 것으로 밝혀졌고, 병무청은 이런 병역기피를 막기 위해 신체검사에서 본태성 고혈압 판정자들에게는 추가로 ‘근전도 검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현대에는 기술의 발달로 기계로 측정한 수치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측정을 할 때는 측정 방법에 대한 표준을 따라야 한다. 그를 통해 측정대상들에게 동일한 조건을 만들어 주어 공평하게 평가해야 한다. 위의 경우는, 대상자들이 '안정'된 상태에서 혈압을 측정해야 한다는 지침이 있는데, 일부 사람들이 교묘하게 특정 부위에 힘을 주어 '불안정'한 상태로 만들어서 혈압 수치를 높인 것이다.

정상인이 비정상인으로 판정받을 수 있게 된다. 지침이 지켜지지 않은 상태에서 수치가 얻어진다면, 그를 근거로 한 이후의 판정은 공신력을 잃게 된다.

비슷한 예로 육상 경기를 생각해보자. 공식 육상 대회를 할 때 기상 조건을 측정하여 풍속이 과도할 경우에는(현재의 공식 기준으로는 선수의 등 뒤에서 달리는 방향으로 측정된 평균 풍속이 초속 2m를 초과할 경우에는) 정상적으로 대회를 진행하여 시상도 하지만, 기록만은 공식기록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다른 대회의 기록과 형평성 차원의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런 원칙이 적용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경기조건이 좋은 곳에서 실시된 기록들만이 세계 기록의 1등에서 10등을 모두 차지할 것이다. 그러면 세계기록을 관리하는 의미가 없어진다. 공평한 수치가 나오도록 하려면, 측정대상의 조건을 공평하게 관리해야 한다.

음주운전을 단속하는 경찰은 ‘주취(酒醉) 운전 단속지침 및 음주측정기 사용관리지침’을 지켜야 한다. '지침'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같은 음주운전을 해도 어떤 사람은 나쁜 조건에서 측정되어 면허 취소가 되고 또 다른 사람은 정지 또는 그보다 낮은 처분을 받을 수 있다. 그러면 법의 공평성에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런데 업무에 바쁘다보면 간혹 경찰이 지침을 지키지 못할 수 있다.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어느 음주운전자가 ‘경찰이 입안을 헹구게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소송을 내고, 재판부는 운전자의 손을 들어 주었다는 기사가 가끔 신문에 보도된다.

수치로 결정하는 사건들이 점점 많아지는 현대인들은 기계가 만들어내는 측정수치에 대한 맹신을 버려야 한다. 이제까지 본 것처럼 측정수치는 '측정표준'이 공평하게 적용되었을 때만 공정성을 가진다. 그래서, 측정수치로 판정하기 전에 먼저 수치가 공평하게 측정되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최제호, (주)디포커스 상무, "통계의 미학" 저자

■ 최제호 약력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계산통계학과 졸업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계산통계학과 통계학 석사 및 박사

<통계의 미학> 저자, (현) (주)디포커스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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